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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희정을 위한 변명

[취재파일] 안희정을 위한 변명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 '선의 발언'이 없었다 해도, 대연정이 아닌 대개혁을 내세웠다 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안희정이 민주당 경선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전제조건은 <문재인이 없었다면> 정도가 아닐까! 이번 판은 그냥 그런 것이다. 문 후보를 탓할 것도 없다. 더 오래, 더 잘 준비한 것을 인정하면 된다. 조직도 강하고,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앞서 있었으니 사실 안희정이 문재인을 이길 방법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안희정은 주목 받았다. 동시에 공격 당했다. 과연 그 공격과 비판은 합당했던 것일까? 어차피 떨어졌으니 마음 편하게 얘기해보자. 치솟던 안희정의 지지율을 고꾸라지게 만든 '선의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당시 강연 내용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잠시 멈춤, 객석 웃음 박수)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우리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의 위해서 좋은 정치하시려고 그랬습니다. (관객 웃음) 근데 그게 뜻대로 안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재단, 미르재단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인 대기업들의 많은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올림픽을 잘 치루고 싶어 하는 마음일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해도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애초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경청의 의미였다. 다만, 선의로 시작했다고 받아들여도 그 과정에서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다. 물론 예시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 (추후 이 부분은 사과했다. 뒤늦게) 하지만 선의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로서 나온 게 아니고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안희정
대연정도 마찬가지다.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힘을 합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적폐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것이냐"는 선명한 공세에 묻혔다. 특히 대연정 발언 이후 선의 발언까지 나오자 '안희정에 대한 의구심'만 증폭됐다. 보수표를 얻기 위한 우클릭 전략이란 평가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대연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적폐 청산’이나 ‘대개혁’ 대신 진보진영에서 욕먹을 게 뻔한 카드를 들고 나온 게 신선했다.

하지만 안희정은 이 새로운 시도를 구체적 그림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였다. 선의발언 직후, 그는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에 나와 한참을 헤맸다. 시청자들이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할 무렵 안희정은 반문했다. "제 말이 어렵습니까?" 사실 어렵다. 기자도 그의 말을 이해하려면 한참 걸릴 때가 많았다. 왜 나의 진심을 몰라 주냐고 말하기보다 그 진심을 잘 전달해 쉽게 이해 시키는 게 대중 정치인의 능력이라면 그는 부족하다.

또 다른 날, 기자들과의 대화. 

"연정을 하겠다고 하면 어떤 국가 개혁과제로 할지 물어보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무원칙하게 야합하는 거라고 저를 공격했습니다."

다른 후보의 공세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순서는 누가 정한 것인가. 상대 후보가, 또는 국민이 그 순서로 따라와 줄 거라는 생각은 거의 틀린다. 집 나간 고등학생에게 어른들이 먼저 하는 말은 "너 집 나가서 뭐 하려고 했어?" 가 아니라 "너 미쳤어? 빨리 안 들어와!"인 것과 비슷하다. 적을 단칼에 물리치겠다는 시원한 말 대신 적이라도 손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안희정의 말은 결국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패배의 장점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희정은 패배 다음날 기자 회견에서 후회는 없다고 말하면서 두려움이란 단어를 꺼냈다. 자신이 느낀 두려움, 사람들이 느낀 두려움을 동시에 말한 것 같았다.
 
"새로운 시대에 도전한다는 두려움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다수의 생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이슈에 대해서 충분히 뒷감당할 만큼의 실력을 준비 못했다는 자책이 있습니다."

패배를 쿨하게 인정하고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내일이란 광장에서도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물론 그건 오롯이 민주주주의 정치인, 안희정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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