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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빌미 몽니' 중국에 냉가슴 앓는 한국여자골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

중국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하이난에서 KLPGA와 중국여자골프협회가 공동 주관한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대회 중계방송 제작을 맡은 중국 CCTV는 우승자 김해림(28)의 얼굴 정면을 한 번도 비추지 않았다.

심지어 우승 퍼트 순간도 김해림의 발만 화면에 나왔다.

김해림은 중계방송에서 '얼굴 없는 챔피언'이 됐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불쾌감을 이런 식으로 드러낸 것이 뻔했다.

롯데 후원을 받는 김해림은 모자 정면에 롯데 로고를 달고 뛴다.

롯데 로고를 TV 화면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CCTV가 제작한 화면을 받아 국내에 중계한 SBS 골프 고덕호 해설위원은 "이런 화면은 처음 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일회성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중계방송 사건 이후 중국여자골프협회에 강한 항의의 뜻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중국여자골프협회도 유감을 표시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양국 여자골프는 더할 나위 없이 관계가 좋다.

교류도 매우 활발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중국여자프로골프협회와 공동으로 연간 3차례 투어 대회를 주관한다.

공동 주관이라고 해도 타이틀 스폰서는 한국 기업이고 한국 선수가 상위권을 석권해 한국 대회나 다름없다.

중국은 대회 장소를 제공하면서 한국의 골프 대회 운영 기법과 세계적 수준에 이른 한국 선수들의 기량을 배운다.

심지어 중국 여자골프 국가대표 코치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회원인 박희정(37)과 양영아(39)가 맡고 있다.

박희정 혼자 하다 올해 들어 양영아가 합류했다.

중국여자프로골프협회와 중국골프협회 관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감사의 뜻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한국과 한국 선수를 좋아한다.

중국의 간판 펑산산은 한국 선수와 한국어로 대화할 만큼 한국 선수들과 친하다.

3월30일부터 이틀 동안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코스 답사를 다녀온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점검단은 중국 측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면담한 중국 쪽 인사들은 한국 선수들의 안전은 절대 보장한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중계방송 '얼굴 없는 챔피언' 사태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롯데가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 펑산산을 비롯한 중국 선수들이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여자골프협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었다.

이 소식을 전한 미국 골프채널은 "중국 선수들의 롯데 챔피언십 불참은 양국 간 정치적 긴장이 원인"이라는 중국 골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로선 "안심하라"거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중국 쪽 약속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오는 7월 중국 웨이하이에서 열리는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이 걱정이다.

롯데 후원 선수가 선전한다면 TV 중계 화면에서 사라지는 사태가 또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롯데는 김해림 뿐 아니라 장수연(23), 김지현(26), 하민송(22), 이소영(20) 등 정상급 선수 여럿을 후원한다.

롯데 로고를 모자에 단 선수가 우승 경쟁을 벌일 가능성은 아주 높다는 뜻이다.

중계 화면 노출을 떠나 이들 롯데 소속 선수들의 안전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기간에 롯데 후원 선수들은 현지 시내에 나갈 때는 롯데 로고가 달린 모자나 의류는 착용하지 않은 게 좋다는 권고를 받았다.

연말에 열리는 현대차 중국여자오픈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 후원을 받는 김효주(22)가 작년에 우승한 대회다.

2006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열려 한국과 중국 간 골프 교류의 상징이 됐다.

"왜 중국 가서 대회를 여느냐"는 눈총까지 받게 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의 고민은 그렇다고 중국과 교류 협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김남진 사무국장은 "중국 측 협회 인사와 선수들을 만나보면 늘 겸손하고 상냥하다. 그리고 한국에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면서 "어쩌면 그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일단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되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이 정치적 현안을 빌미로 부리는 몽니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공연히 사태를 더 키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당당한 자세로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치과 무관한 스포츠 분야가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한국과 중국의 여자골프 교류와 협력 관계가 이런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지 관심사가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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