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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각기동대, 그 화려한 '쉘' 안에 '고스트'는 없다

[취재파일] 공각기동대, 그 화려한 '쉘' 안에 '고스트'는 없다
화제작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이 영화를 기다려온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원작의 명성 때문입니다. 영화는 1989년 발표된 시로 마사무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이 만화와 관련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6년 뒤 발표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입니다.

1995년 작 ‘공각기동대’는 개봉과 함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이 이야기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이후 등장한 다양한 SF 영화들도 '공각기동대'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뤽 베송의 1997년 작 ‘제5 원소’와 워쇼스키 자매의 1999년 작 ‘매트릭스’도 그런 결과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원작 애니메이션은 사이버펑크 SF의 고전이 됐고, 이런 작품의 실사화는 그 자체로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영화가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스타 캐스팅에 있습니다. 한때는 스칼렛 요한슨, 지금은 스칼릿 조핸슨(Scarlett Johansson)으로 불리는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여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대를 키웠습니다. 감독 루퍼트 샌더스(Rupert Sanders)에 대해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할리우드의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이 투입되는 작품인 만큼 20여 년 만의 실사화는 영화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
원작의 배경은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흐릿해진 2029년. 공각기동대로 불리는 특수부대 소속인 주인공 ‘쿠사나기’는 큰 사고 후 뇌의 일부와 육체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입니다. 돈을 주고 팔다리나 장기, 뇌의 일부를 기계로 바꿔 기능을 향상시키는 게 일반화된 시대이지만, 육체의 모든 부분과 뇌의 상당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쿠사나기는 그래서 최첨단 기술이 반영된 특별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함은 ‘정체성’의 문제를 낳고, 쿠사나기의 문제 의식은 미지의 해커 ‘인형사’를 만나며 극대화됩니다. 비밀 외교와 조작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에서 출발했지만, 네트워크상에서 정보의 ‘확장’과 자기 ‘보호’를 통해 일종의 ‘정체성’을 획득한 인형사는 쿠사나기와의 융합을 원하고, 결말은 쿠사나기와 인형사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95년 작 애니메이션은 당시로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혁신적인 영상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가와이 겐지의 음악은 영화의 감각적인 면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인형사가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내용이나 마치 출사표를 연상시키는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는 방대하거든” 같은 새로운 존재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 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
저 또한 기대감을 안고 시사회장을 찾았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던지는 화두는 현재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의 고유함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들은 지난 20여 년 간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져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상태이며, 최근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관련된 사유를 훨씬 더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7년 작 ‘공각기동대’에는 이런 질문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원작 속 쿠사나기에 해당하는 실사 영화의 주인공 ‘메이저(소령)’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고유함에 대한 고뇌는 기억상실이 만든 혼란으로 손쉽게 대체됩니다.

원작에서 쿠사나기 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던 인형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쿠제’라는 인물이 대신 차지합니다. 쿠제는 메이저와 마찬가지로 뇌를 제외한 육체가 기계화 된 사이보그인데, 탐욕스러운 악당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사이보그로 만들어지고 버려졌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공각기동대의 TV 시리즈 등장인물에서 따온 캐릭터라고도 하는데,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짐작이 가시나요? 메이저는 쿠제와의 만남을 계기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찾고, 영화는 기억상실의 장막 속에 가려져 있던 악당과의 한판 대결로 향해갑니다. 감독은 “누군가가 당신의 기억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과연 아직도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데, 글쎄요…

중반 이후 주인공의 내적 혼란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만, 영화를 보는 저의 내적 혼란은 커져 갔습니다. 얼마 전 내한 기자회견에서 “원작이 너무 추상적이고 복잡해,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이야기를 좀 단순화했다.”는 감독의 말이 이런 뜻인지 미처 몰랐기에,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
영화의 전편이 공개되기 전 일부 이미지가 먼저 공개되자 원작의 팬들은 불만과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화이트워싱(미국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의 캐릭터에 무조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행태) 논란도 있었고, 스칼릿 조핸슨이 원작 속 캐릭터에 비해 작고 통통하다든가 미래 도시의 모습이 엉성하다든가 하는 불평도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공각기동대’처럼 수많은 팬을 거느린 원작을 새롭게 만들면서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인데다,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 때 본 영화의 도입부 30여 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영상이었습니다. 원작 속 음울한 색채의 미래 도시는 원색적이고 화려하게 탈바꿈 되고 만화에서나 가능하지 싶었던 인상적인 장면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입고 한층 더 정교하고 세련돼졌는데, 그 변화가 새롭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느꼈고 마음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편을 보고 난 뒤 기대는 안타까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샌더스 감독은 원작이 너무 추상적이고 복잡하다고 했지만, 그 평가에 2017년의 관객들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습니다. 원작은 그가 추상적이고 복잡하다고 평가하며 지워버린 그 점들 때문에 시대를 앞서갔다는 극찬을 받았고, 2017년 기준에는 그런 평가조차 더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20여 년 전 원작이 주는 정도의 지적인 즐거움조차 관객에게 주지 않을 거였다면, 제작진은 애초에 이 원작의 판권을 사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영화의 그 화려하고 세련된 ‘쉘(shell: 껍데기)’ 안에 ‘공각기동대’의 ‘고스트(ghost: 영혼)’가 깃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진: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 제공: 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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