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청소년 유혹하는 '가향담배'…규제 안하나 못하나?

송인호 기자 songster@sbs.co.kr

작성 2017.03.12 10:17 수정 2017.03.12 11: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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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흡연자에게는 담배 연기는 역겹기 마련입니다. 생으로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고역이지만 흡연자가 내뿜는 연기를 마시는 간접흡연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만약 담배 연기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면 어떨까요? 실제 그런 담배가 시중에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담배 필터 부분에 각종 향을 첨가한 캡슐 담배가 그것입니다. 캡슐 담배는 가향담배(향을 첨가한 담배의 총칭)의 일종으로 담배를 피우다 작은 알갱이를 깨물어 터뜨리면 독특한 향을 맛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캡슐담배들질병관리본부가 공주대 신호상 교수팀에 의뢰해 캡슐 속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시판 캡슐 담배 29종, 33종 캡슐 성분에서 128종의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대부분 맛과 향을 내는 가향성분들이었습니다. 모든 캡슐에서 멘톨성분이 나왔고, 로즈메리, 오렌지, 페퍼멘트, 천연 꽃 향, 소나무 향, 청포도 향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캡슐을 터뜨려 냄새를 맡아보니 향이 너무 청량하고 상큼해서 계속 맡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캡슐에서 몸에 해로운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설탕 같은 감미료의 경우 연소되면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아세트알데히드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 캡슐담배가 담배를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2014년 기준 전국 대학가에서 캡슐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평균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40세 이상보다 18~24세의 청소년이 멘톨이 포함된 가향담배를 사용할 가능성이 2~3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겹지 않고 담배를 피우면서 다양한 향기를 맛볼 수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실제 캡슐 담배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취재진이 인터뷰한 결과 멘톨은 청량감이 강해 기분 전환에 좋고 각종 향이 불쾌한 냄새를 없애준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젊은 여성들도 즐겨 피우기도 합니다.
흡연자담배회사들이 지금과 같은 가향캡슐을 개발한 건 2000년대 초반입니다. 특히 기존의 흡연자보다는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신규 흡연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개발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필립모리스사는 18~34세 사이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좋아할 만한 향이 무엇인지 실험까지 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2009년에 이미 ‘가향담배가 아동과 젊은 성인층을 흡연자가 되도록 만드는 관문’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담배회사들이 각종 규제로 줄어드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층을 타킷으로 고안해낸 고도의 전술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캡슐 담배를 포함한 가향담배의 점유율이 최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향담배라고해서 특별히 비싸지도 않습니다. 국내 캡슐 담배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2.3%에서 2015년엔 15%까지 급증했습니다. 3년 사이에 점유율이 6.5배나 뛴 겁니다.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가향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기존 흡연자보다는 젊은층이 많이 찾았을 걸로 추정됩니다.

담배도 기호식품이니 향을 첨가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맛과 향을 첨가한 가향담배는 일반담배보다 더 해로울 수 있습니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담배 연기 속에 있는 80종 이상의 발암물질, 400종 이상의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데, 가향담배는 이런 물질을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경고합니다. 연기에서 좋은 향이 나면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되고, 담배 연기가 순조롭게 몸 안으로 깊이 들어가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또 간접흡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향기로운 맛이 나면 옆에 있는 비흡연자도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된다는 겁니다.
캡슐담배의 캡슐선진국들은 이미 담배회사의 꼼수를 간파하고 가향담배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과일이나 사탕류의 향을 머금은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있고 미국도 2009년부터 멘톨을 제외하고 특정 향을 함유한 담배의 제조와 마케팅, 판매를 일체 금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멘톨까지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2016년부터 필터와 종이에 향을 첨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캡슐 사용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2010년부터 멘톨을 제외한 가향물질 함유 제품의 판매를 일체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 정부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이제야 가향담배를 규제할 근거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질병관리본부가 가향 캡슐 성분을 처음으로 분석한 것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가향담배가 젊은 층을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제대로 된 조사연구도 아직 없는 실정입니다. 담배판매 자체를 금하지 않는 한 담뱃값 인상이나 혐오 그림 삽입 등의 규제책만으로는 흡연율을 떨어뜨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규제하지 않고 그대로 놔둘 것이냐? 그것도 답은 아닙니다. 담배가 미치는 위해성과 건강보험 재정 손실이 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청소년들이 쉽게 담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가향담배만큼은 세계적 추세에 맞춰 강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명연 의원실에서 '가향담배의 전면 금지' 법안을 준비중입니다. 정부의 뒷북 규제에 앞서 국회가 나서서 가향담배 규제를 추진하는 건 환영할 만 합니다. 

<참고자료>
*담배 내 캡슐 가향성분 분석 결과 (보건복지부, 2017년1월)
*가향담배란? 그 위해성 및 규제방안 (건강증진개발원, 2017년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