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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朴의 침묵'이 '자기 부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

[취재파일] '朴의 침묵'이 '자기 부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각 정당이 모두 탄핵 결과를 수용하고 분열된 국론을 통합해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지만 박 전 대통령만은 ‘묵묵부답’입니다. 이미 일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갈등의 한 축인 박 전 대통령이 스스로 탄핵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는 게 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이지만 아직까지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 朴 "완전히 엮은 것"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떤 심정인지 정확히 알기란 어렵습니다. 탄핵 후 청와대 비서진과의 회의에서도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과거 박 전 대통령의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어느 정도 추론은 해볼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출입기자단과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범죄 혐의에 대해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서도 없었다.”면서 특검과 언론의 의혹제기는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습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의혹에 대해서는 “저는 정상적으로 보고를 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재판하게 될 텐데 이번만큼은 허위가 완전히 거둬졌으면 한다.” 고 밝혔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의 인식은 1월 말 한 인터넷 TV와의 인터뷰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최순실과 경제적 동일체였다는 의혹이 있었다는 질문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희한하게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검찰이) 엮어도 너무 어거지(억지)로 엮은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 朴, 지금 심정은?

배후설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동안 쭉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카더라’ 하는 얘기가 산더미 같이 덮여 있다. 그 과정에서 오해를 받는 게 속상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내 잘못이 아닌가 받아들인다.”라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면을 흐르는 심정은 하나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억울하다.”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박 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면서 눈물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통령 대국민담화
● 朴, 침묵의 의미…'억울'

침묵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습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그 함의도 다양합니다. 이번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헌재 결정에 대한 소리 없는 항변, 즉 ‘불복’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앞서 예에서도 살펴봤듯이 박 전 대통령이 사법 당국이나 언론의 의혹제기에 억울함을 호소해온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볼 법한 추론입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국민담화를 보면 이런 점을 더욱 뚜렷해집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 2016년 11월 29일 제3차 대국민담화 中에서-

● 朴의 침묵은 자기부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탄핵 반대 진영에서는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기구이다.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헌재가 사법적 요소 이외에 정치적인 고려를 했던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논거로 박 전 대통령의 임기가 조금 더 남아 있었다면 선고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를 십분 인정하더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차 담화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어떤 게 느껴지시나요?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애국심’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영애(박근혜 전 대통령)가 처음 꺼낸 말은 ‘휴전선 (상황)은요?’였다.”라는 일화는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이미지를 잘 대변하는 이야기로 정치권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친박계 주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빗대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이 ‘진심’이라면 현 시점에서의 침묵은 ‘자기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 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억울함을 내세워 나라가 갈등과 분열에 빠지는 것을 방치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 지도자라면 비록 자기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솔직히 탄핵을 되돌릴 방법이 없기도 합니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히고 국민 모두가 화합해 이제 미래로 나아가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또 정말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헌재가 정치적 사법 기구라 정치적 판단으로 선고를 왜곡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앞으로 있을 순수 사법기구인 법원의 재판 절차를 통해 풀어 가면 될 일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국심이 진정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정치구호에 불과했는지 이제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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