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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제의 '미인도'를 직접 본 뒤…

[취재파일] 문제의 '미인도'를 직접 본 뒤…

권란 기자 jiin@sbs.co.kr

작성 2017.03.11 14:50 수정 2017.03.11 18: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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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지금까지 '미스터리'에 쌓인 작품이 있다. 바로 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이다.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유족 측의 문제 제기로 검찰 수사까지 이뤄졌고,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에도 여전히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유족 측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 수 없다고 항고했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미인도'를 공개할 계획을 밝히자 '공개 불가'를 주장하고 있다. 
‘미인도’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휴대전화 신호도 터지지 않는다.현재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미인도'를 직접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1991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술계 인사 몇몇과 감정위원들이 봤고, 천 화백도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 뒤에야 작품을 보았다고 한다. 천 화백은 그 이후에도 '위작' 의견을 굽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서 최근 검찰 수사를 진행하면서 '미인도'를 본 사람이 늘었다. 증인으로 신청된 미술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했던 '위작 작가' 권춘식 씨도 이번에 처음으로 실물을 보았다. 권 씨는 실물을 본 뒤 애초의 본인의 주장을 엎고 "'미인도'는 따라 그릴 수 없는 '수작'"이라고 말을 바꿨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브리핑 때 공개된 ‘미인도’ 실물가로, 세로 각각 30cm도 되지 않는 작은 작품. 보통 4호라고 불리는 크기에 불가한 이 작은 그림이 도대체 뭐기에 한국 미술계를 뒤흔드는 것인가. 도대체 진실은 뭐기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견이 이렇게 갈릴 수가 있는 것일까. 천경자 화백 전문가도, 그림 감정 전문가도 아니지만, 그동안 사건의 흐름을 봐오면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요청을 했고, 수장고에 들어가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사진과 동영상 촬영은 불가했고 그냥 육안으로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대중 공개에 앞서 '귀중한 기회'를 얻게되긴 했지만, 사실 그림 전문가가 아닌지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검찰 수사 이후 '관계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실물을 접할 수 있었던 만큼 그 느낌만큼만이라도 남겨보고자 한다.

수장고 안은 싸늘했다. 휴대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담당 학예사가 '미인도'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화면에서, 지면에서, 하도 많이 본 그림이라 형태 자체가 새로울 건 없었다. 다만 동산방화랑에서 제작했다고 하는 액자는 '좀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예사는 그림을 벽에 세우고 조명을 비추며 보여줬다. 그림은 언뜻 봤을 때와는 달리 반짝반짝 빛이 났다. 천 화백은 그림을 그릴 때 '석채'라는 안료를 사용한다. 돌을 갈아 색깔을 넣은 안료이다. 석채로 채색을 할 때에는 아교물에 섞는다. 종이에 달라붙는 접착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연 암석을 갈아넣은 석채를 사용했기에, 돌에서 나오는 특유의 반짝임이 있다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미인도'의 제작연도로 알려진 시점은 77년, 당시만 해도 석채를 쓸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구하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워낙 고가이기도 했다. 천 화백도 일본 교토의 3대째 내려오는 물감집에서 석채를 구입해 사용했다. 또한, 석채를 사용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전문적인 교육은 물론, 많은 연습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미술관 측은 이를 근거로 "천 화백이 아니면 누가 그렸겠느냐"는 입장이다. 

석채를 덧칠해서 그려서인지, 그림에서는 질감이 뚜렷하게 보였다. 조명의 움직임에 따라 두툼한 부분과 얇은 부분의 구분이 확실했다. '여러 번 덧칠'하는 건 천 화백의 특징이라고 미술관 측은 강조했지만, 사실 마음 먹고 천 화백의 그림을 따라그리기로 했다면 그런 특징은 당연히 연구하고 본따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쇄본만 보다가 실물을 보고 살짝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은 얼굴의 음영이다. 인쇄본을 봤을 때에는 코와 인중의 음영이 너무 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은 모르지만, 다른 천 화백에 작품에 비해 진하고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물에서는 이 부분이 그리 짙어보이지 않았다. 인중 부분은 거의 생각보다 옅은 색감이었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여전히 머리카락은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너무 '뭉텅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쇄본처럼 새카맣지는 않고, 갈색 빛이 감돌았지만, 천 화백이 주로 그렸던 물결 무늬의 머리카락에 비해 '성의없는 표현'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술관 측은 이에 대해 '오른쪽 머리카락 부분을 보면 살짝 물결무늬가 보인다'며 '더 덧칠을 하려다 만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아래 위로 나눴을 때 아랫부분에는 작은 점 같은 것들이 꽤 여러 개 눈에 띄었다. 미술관 측은 '곰팡이처럼 보인다'고 설명을 했다. 그동안 '진위 논란'에 치여서 보관에 소홀했던 건 아닌가. 미술관 측은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석채는 아교와 배합해 채색을 하는데, 아교의 원료가 동물성 물질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천 화백의 다른 70년대 작품에서도 동일한 곰팡이가 발견된다"며 '진품'이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전달했다. 

문제의 작품을 본 느낌은 이 정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림을 보고 나니 더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작가는 끝없이 '위작'이라 주장했고, 미술계 인사들은 '진품'이라 주장하고 있다. 오죽 답답했으니 그림을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이 "하늘에 가서 천 화백님을 만나뵙고 여쭙고 싶다"였다. 

천 화백은 작고하셨으니, 더 이상 작가의 의견을 들을 기회는 없다. 이제는 '미인도' 진위 논란에서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순서가 남아있다. 바로 실물을 공개하고 공론화의 장을 여는 것이다. 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보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마치 유족 측과 미술관 측의 싸움으로만 비춰져 미술계에 대한 이미지만 더 구기지 않았던가. 감정에 치우친 싸움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건전한 논의가 이뤄졌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오는 4월 이 문제의 '미인도'를 전시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미술관 측의 공개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저작권법 위반 등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미술관 측은 이런 반대 의견을 고려해, '천경자 작'이 아니라 '작가 미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누구의 작품이건, 일단 누구든 볼 수 있게 되고, 어떤 의견이든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음 좋겠다. 그리고 그 의견들이 모여 진실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었음 좋겠다. 전시에 한 달 앞서 실물을 본 '일반인'으로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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