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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동영상 '세로 본능' 깨웠다

모바일 시대 '수직으로 찍고 보기' 늘어…"사람들 스마트폰 옆으로 돌려서 보지 않아"

스마트폰, 동영상 '세로 본능' 깨웠다
#1.

피처폰 시절인 2004년 삼성전자 가로본능 폰.

화면을 가로로 돌려 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히트했다.

가로로 매달리는 사람 광고는 패러디되며 화제가 됐다.

#2.

스마트폰을 세로, 즉 수직으로 들고 찍은 동영상을 꼬집은 '세로 동영상 증후군'(Vertical Video Syndrome)이라는 영상물이 2012년 유튜브에 올라왔다.

글러브앤드부츠의 이 풍자물은 가로 스크린에서 세로 동영상을 보면 양옆의 공간이 보기 흉하게 검게 나온다면서 "카메라를 잘못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영화, TV, 컴퓨터와 사람의 눈은 모두 수평적(horizontal)"이므로 "세로 동영상은 안 된다고 말하라"는 메시지로 지금까지 800만건 가까운 조회 수를 올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로 동영상은 나이 많은 부모 세대나 아마추어가 찍는 것으로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비디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전 세계 이용자가 10억명 넘는 유튜브의 동영상 시청은 절반 넘게 모바일 기기에서 온다.

2015년 유튜브에 올라온 세로 동영상은 50% 급증했다.

벤처캐피털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KPCB)의 파트너 메리 미커는 2015년 인터넷 트렌드 발표를 통해 미국에서 TV를 포함한 전체 동영상 시청 시간 가운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세로로 들기에 적합한 기기가 29%를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2010년 5%에서 5년 만에 거의 6배로 늘어났다.

뉴욕타임스의 동영상 프로듀서였던 미디어 컨설턴트 제나 바라캇은 조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영상을 크게 보려고 스마트폰을 옆으로 돌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계속 가로로 들거나 가로 화면으로 보려고 반복적으로 90도 회전시키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미생'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 윤태호 씨도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편리한 것을 원하는 대중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전했다.

그는 많은 독자가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을 못 견뎌 한다"고 말했다.

영상을 만들 때도 세로로는 즉각적으로 할 수 있지만, 가로로 돌려서 구도를 다시 잡고 찍으려면 상당히 번거롭다.

세로 동영상 비판자들은 인간의 시야가 수직보다 수평으로 더 넓다고 하지만 옹호론자들은 작은 모바일 기기 화면에서는 수직이라도 문제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손은 수직 형태의 물체를 잡기에 적합하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책 모양도 수직인 이유다.

사람들이 스마트폰 이용 시간의 94%를 세로로 들고 있다는 2014년 조사 결과도 있었다.

수직 구도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기 좋아 인물(portrait) 모드라고도 불린다.

개인 동영상이 넘치는 시대에 사람의 얼굴과 몸에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기의 걸음마에는 세로 동영상이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세로 동영상 바람을 일으킨 것은 24시간 뒤 사라지는 이미지나 동영상으로 미국 젊은층에서 인기를 끈 소셜미디어 스냅챗이다.

1억6천만명이 매일 열어보는 스냅챗은 스마트폰 앱에 철저히 집중해 모바일 이용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려고 가로가 아닌 세로 동영상을 표준으로 정했다.

스냅챗은 유튜브를 통해 "이용자들은 모바일 동영상을 볼 때 절대로 수평으로 돌리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자연적 리듬을 깨기를 원하지 않아 세로로 보거나 촬영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로가 멋진 것은 가로보다 더 나아서가 아니라 본질에서 모바일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냅챗은 세로 동영상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다고 말한다.

스냅챗의 디스커버 섹션에서는 CNN과 데일리메일,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이 맞춤형 세로 이미지나 비디오를 붙인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세로 광고를 끝까지 보는 비율은 가로 형태의 9배나 됐다.

스냅챗은 2015년 영국 신문사 데일리메일, 광고회사 WPP와 함께 세로 동영상 마케팅 에이전시인 트러플 피그를 만들기도 했다.

데일리메일 북미법인의 존 스타인버그 최고경영자는 "우리 비디오의 100%를 세로로 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이용자가 훨씬 만족하고 끝까지 보는 비율도 높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스냅챗은 최근 디스커버리 채널로부터 5분 안팎의 짧은 세로 동영상을 독점적으로 받기로 제휴했다.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앱인 트위터의 페리스코프도 일찌감치 세로 형태를 추구해왔다.

페리스코프는 세로인 인물(portrait) 모드만 지원하다 가로인 풍경(landscape) 모드를 나중에 추가했다.

정사각형 포맷으로 유명했던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8월 스냅챗의 '스토리'를 베낀 같은 이름의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세로 동영상은 광고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주목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이용자는 4억명으로 스냅챗의 2.5배 정도다.

페이스북이 지난달 모바일 기기에서 세로 동영상을 꽉 찬 화면(풀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한 것도 세로 보기 확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동영상이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자사 앱에서 "비디오 퍼스트" 전략을 펼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셜미디어 외에 세계적 언론사들도 세로 동영상에 베팅하고 있다.

BBC는 몇 달 전부터 '오늘의 비디오'(Videos of the day)라는 꼭지에서 세로로 된 여러 편의 뉴스 동영상을 옆으로 넘기며 볼 수 있게 했다.

BBC는 이에 대해 "스마트폰에 최적화한 형태로 (뉴스 상품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 뉴스의 디지털 트래픽은 60% 넘게 모바일 기기에서 온다.

뉴욕타임스(NYT)의 360도 비디오(The daily 360)는 스마트폰 세로 화면을 꽉 채운다.

텍스트는 가로가 아닌 세로 화면에 맞춰 삽입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칼럼니스트 조애나 스턴이 유용한 IT 팁을 전할 때 세로 형태로 만든 비디오를 많이 올린다.

모바일은 물론이고 PC에서 볼 때도 세로 동영상으로 봐야 한다.

타임은 하루에 6∼8개의 음식 관련 세로 동영상을 만들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스냅챗에서 제공할 예정이다.

스포츠와 영화처럼 가로 화면이 가장 바람직할 것 같은 콘텐츠에도 변화가 있다.

ESPN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농구 등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정사각형 포맷으로도 많이 내보낸다.

양옆이 잘리지만, 세로로 들고 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20세기폭스나 워너브러더스 같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는 모바일에서 에일리언이나 킹콩 같은 영화 후속작의 예고편을 정사각형으로 많이 제공하고 있다.

한국 CJ엔터테인먼트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영화 예고편을 정사각형 화면으로도 올려놨다.

윤인호 CJ E&M 영화사업부문 홍보팀장은 "인물 중심의 화면이 많을 때 가로 화면보다 얼굴을 크게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콘텐츠와 플랫폼에 (포맷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모바일에서 보기에 적합한 세로 형태의 동영상은 점점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뉴욕에서 열리는 트라이베카 영화제에는 스냅챗으로 찍은 2분 이내의 세로 화면 영화를 대상으로 한 '트라이베카 스냅챗 단편'이라는 경쟁부문이 생겼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지난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향후 세로 형태 동영상을 서비스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모바일 TV는 콘텐츠를 보는 주된 방식이 될 것"이라면서 "모바일에 맞는 세로 동영상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우리도 언젠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시대에는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표현 방식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동영상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모바일 이용 비중이 약 70%로 높은 웹툰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미생' 작가 윤태호 씨는 "모바일 화면이 PC보다 작다 보니 (PC 때처럼) 이것저것 다 살리려 하지 않고 주제를 부각하려고 보여줘야 할 것과 생략할 것을 고민한다"면서 "아무래도 인물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사가 많으면 스크롤이 느려져 독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긴 대사는 여러 컷에 나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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