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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술계도 '금한령'? 상하이 유즈미술관 '단색화'전도 "일단 연기"

[취재파일] 미술계도 '금한령'? 상하이 유즈미술관 '단색화'전도 "일단 연기"

권란 기자 jiin@sbs.co.kr

작성 2017.03.07 21:23 수정 2017.03.07 21: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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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한반도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다. 자국민의 한국 관광을 전면 금지하면서, 중국인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비상'이 걸렸다. 열풍이 불었던 한국 드라마의 진출, 한류 스타들의 활동이 모두 가로막힌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중문화만큼 영향이 크지는 않지만, 순수 예술 분야도 '사드 불똥'이 비껴가지는 못하고 있다.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공연이 취소됐고, 발레리나 김지영의 출연도 무산되는 등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중국 문화부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 미술관 등 5개 국공립 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기념 전시'도 없던 일이 되었다. 올 상반기에 열 계획으로, 지난해 초부터 협의를 해왔었는데 "지난해 가을쯤 중국 측이 전시를 같이 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명확하게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드 파문'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유즈미술관 전경사립 미술관들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상하이 유즈미술관도 올해 계획했던 '한국 단색화전'을 '무기한 연기'했다. 유즈미술관 측은 지난해 10월 부디 텍 이사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이 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전시 개최에 적극적인 모습을 모였다. '세계 미술계의 큰 손' 부디 텍 이사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한국의 단색화는 '아시아 철학 운동'"으로, 그 자체가 현대미술"이라며, "와인이 30~40년이 지나 숙성되면 가치가 달라지듯이 단색화도 오랜 시간 숙성되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극찬을 쏟아냈다. 또한, 자신도 "단색화에 매료되어 여러 점을 구입했고, 앞으로도 계속 수집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할 정도였다. 만약 이 전시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중국 최초로 개최되는 '단색화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디 텍 유즈재단 이사장 : 중국계 인도네시아 기업인으로, 세계 미술계 '10대 콜렉터'로 꼽힌다. 그가 소장한 현대미술 작품은 1천여 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유즈미술관 측은 최근 이 전시를 위해 작가와 작품을 연결해주는 국제갤러리 측에 "전시를 연기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유즈 측도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언제로 미루겠다는 기약도 없었다. 국제갤러리 측은 "민감한 시기인 만큼 논란을 피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취소 통보'는 아니었다며,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짐작건대, 미술관 측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중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성남아트센터 측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쓰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국 작가 13인을 소개하는 '쓰촨발(四川發)'이라는 전시를 시작으로, 올해는 베이징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중국 작가 2인을 소개하는 '페킹발(北京發)'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드 후폭풍'으로 전시 준비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페킹발'에 참여하는 작가는 중국에서도 거물급인 왕화상, 수신핑 2명인데, '사드 후폭풍'으로 이들 작가의 입국과 작품 반입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4월) 전시를 앞두고 다음 주쯤부터 초청장과 작품 통관 과정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평탄하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트센터 측은 "만약 지금 허가가 나더라도, 상황이 나빠지면 전시 개막 임박해서 작가의 한국 방문이나 작품 통관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며, 틀어질 경우를 대비해 대체 전시까지 구상 중이다.  

중국에 진출했던 상업 갤러리 가운데 짐을 싸는 곳도 생겼다. 상하이에 갤러리가 있었던 학고재의 경우, 올 1월 전시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중국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아 철수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어쨌든 아시아 시장을 놓칠 수는 없어 홍콩 쪽으로 옮겨야 할지, 다른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사실 그동안 중국 상하이가 동북아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갤러리들의 진출도 활발했다. 하지만, 중국 미술 시장에서 치솟았던 작품 가격의 거품이 슬슬 꺼지고, 임대료 상승, 작품 가격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다른 나라 갤러리들은 하나둘 철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금한령'까지 불어 닥치자 한국 갤러리들 사이에서는 '더 힘들어질 수 있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달(3월 24일) 정기 홍콩 경매를 앞두고 있는 서울옥션은 "중국의 압박이나 사드의 영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과 홍콩의 분위기가 워낙 다르기도 하거니와, 경매에 참여하는 콜렉터(미술품 수집가)들은 중국 출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중국 본토 콜렉터들은 정치적인 분위기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는 게 옥션 측의 설명이다. 

중국 미술 시장은 전 세계 미술 시장 규모의 1/3을 차지할 정도(아트프라이스 리포트, 2016)로 어마어마하다. 특히 중국의 '큰 손'들은 자국의 작가 작품을 엄청나게 사들였고, 그만큼 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 놓았다. 이런 '배타성' 때문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건 그동안도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최근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는데, 사드로 인한 '금한령'이 내려지면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른 문화 분야처럼 엄청난 타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시아 미술을 넘어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인 만큼, 이런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한국 미술계에도 꽤 큰 타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는 순수예술 분야까지 정치, 외교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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