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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잠깐 앉았다고 불만 접수…'앉을 권리' 박탈당한 노동자들

[리포트+] 잠깐 앉았다고 불만 접수…'앉을 권리' 박탈당한 노동자들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가 있습니다. 바로 '일부 서비스직 노동자에게 마련된 의자'입니다.

백화점, 마트, 편의점, 커피숍 등에서 근무하는 일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앉을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의자가 없는 게 아닙니다. 사업장들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라 근로자들이 앉을 의자를 비치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의자는 '쓸 수 없는 '투명의자'라는 겁니다.

■ 앉고 서고가 서비스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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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대할 때 서서 응대하는 게 공손해 보인다'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은 서비스 노동자들을 종일 서서 일하게 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를 강제하기도 합니다. 각 사업장에서 서비스 교육 등을 통해 '업무시간에 앉으면 안 된다'고 아예 못 박는 겁니다.

근무자세가 곧 업무태도 등의 인사평가로 직결되다 보니, 근로자들은 앉아서 일하는 건 꿈도 못 꿉니다.

실제 잠깐 앉았다가 '건방지다'는 손님들의 항의를 받았다는 근로자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대놓고 강제하지 않아도 이런 고객 불만이라도 접수될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근로자들은 점심시간과 잠깐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7,8시간을 서서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앉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말이죠.

때문에 서비스직 근로자들은 발바닥이나 허리 등의 고질적인 질병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전국 대형마트 근로자 1,23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타납니다.

무려 70.8%(788명)가 요통이나 어깨 결림 등 근골격계 질환을, 그리고 32.4%(312명)가 발바닥 통증인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 앉을 권리 규정 있어도 '권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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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직 근로자들의 앉을 권리에 대한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8년에도 노동·여성 단체들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를 주장하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사업주가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 80조 의자의 비치)을 신설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습니다. 이 조항은 근로자들의 앉을 권리를 사업주가 '의무'로서 보장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권고'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일부 사업장에 직원들이 '사용할 수 없는' 의자가 생긴 겁니다. 또한 사용 가능한 의자더라도, 그 사용빈도는 극히 적은 게 현실입니다.

■ 제도 보완과 함께 소비자 인식 개선 필요

사업주들의 인식에 변화가 없는 게 가장 문제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근로자의 업무 환경 개선에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배경에는 일부 고객들이 보내는 차가운 '시선'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앉아서 일하는 직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객이 여전히 많다는 겁니다.

고객에게 신경도 쓰지 않아 불쾌할 정도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 바탕엔 이른바 '갑질'로 이어질 수 있는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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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고통이 덜어지면 서비스의 질도 나아질 것'이라 말합니다. '앉을 권리'의 보장은 이런 변화의 시작이지 않을까요?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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