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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 꿈은 100세 대통령' 어느 독재자의 끝없는 탐욕

[월드리포트] '내 꿈은 100세 대통령' 어느 독재자의 끝없는 탐욕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7.02.24 14:15 수정 2017.02.24 15: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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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짐바브웨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세계 3대 폭포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를 떠올리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사실 짐바브웨가 어디 붙어있는 지 모르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저도 잠시 후에 언급할 ‘그 분’을 알기 전까지는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을 어릴 적 사회과부도를 넘기다 한 번 볼까 말까한 그런 나라였습니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바로 위에, 살짝 오른쪽에 붙은 나랍니다. 붙었다고 하지만 땅 크기는 한반도의 1.7배로 적지 않는 나랍니다. 이 나라는 각종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가운데 가장 늦게 독립한 나라 (1980년), 연간 인플레이션 최고 기록 (공식적으로 2억 3천만 %, 실제로는 4억 % 라고 합니다.), 세계 최고단위의 지폐발행 (무려 100조 – 100,000,000,000,000 : 한때 우리나라에게 장난 삼아 세뱃돈에 얹어서 줬다는 그 돈, 한 장으로는 버스도 못 탄다는 그 돈입니다.), 무려 80%나 되는 실업률 (일자리를 가질지언정 평균 국민 소득이 하루 1달러입니다.) 이런 경이적인 기록도 감히 범접을 할 수 없는, 짐바브웨를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기록의 사나이가 있습니다. 
37년째 집권중인 93살의 현역 최고령 독재자 ‘무가베’ ● 현역 최장수 독재자 ‘무가베’

‘로버트 가브리엘 무가베’ 란 사나이. 짐바브웨의 대통령입니다. 집권기간만 37년, 올해 93세로 현역 최고령 독재자입니다. 이 분이 유명세를 타는 건 백성은 다 굶어 죽을 지 언정 생일파티만큼은 두바이 국왕 못지 않게 초호화판으로 하신다는 겁니다. ‘금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옥쟁반에 담긴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玉盤佳淆萬姓膏)’ 춘향가에 나오는 변사또의 생일잔치를 두고 한 말인데, 바로 이 분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이 분이 생일마다 신기원을 여는데 2월 21일 93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당일은 저택에서 가족과 측근만 모아놓고 가볍게 축하파티를 가졌고, 2월 25일에 온 국민 앞에서 ‘제대로’된 생일 잔치를 연다고 합니다. 지난해 생일상엔 코끼리 요리가 올라왔는데 올해는 뭐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무가베는 서방에서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 별칭도 얻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외식업체는 무가베를 비꼬는 광고를 만들어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제목이 ‘마지막 남은 독재자’인데 무가베가 카다피와 마오쩌둥, 이디 아민 같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독재자들을 떠나보내고 쓸쓸히 혼자서 저녁을 준비한다는 내용인데 웃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출처 : 유튜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악명을 떨치는 지 저도 이 참에 공부하는 셈치고 무가베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 영국의 마지막 식민지 로디지아

짐바브웨의 영국 식민지 시절 이름은 로디지아 입니다. 짐바브웨는 1851년 영국의 한 선교사에게 빅토리아 폭포가 발견되면서 세계에 알려집니다. 때묻지 않는 땅엔 당연히 풍부한 천연자원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었으니 신사를 표방하면서도 제국주의에서 2등이 되는 걸 수치로 안 영국이 짐바브웨를 그대로 놓아 둘 리 없었겠죠. 바로 식민지로 만든 뒤 수탈에 들어갑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들어서 짐바브웨 주변 영국 식민지들이 하나 둘 독립합니다. 말라위와 잠비아 보스와나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짐바브웨 지역만 로디지아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잡아둡니다. 다이아몬드가 솔솔하게 나오는 곳이었거든요. 1970년에 들어서면서 로디지아의 흑인해방 운동은 본궤도에 오르면서 독립투쟁은 정점에 달합니다. 무장게릴라 투쟁도 벌이고 시위선동과 계몽운동도 동반합니다. 여기서 백인 지배에 저항하던 흑인운동을 이끌던 투사중에 한 명이 ‘무가베’입니다. 

무가베는 1924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투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도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또 이름 중간에 ‘가브리엘’이 들어가듯이 신앙심이 깊은 천주교신자였다고 합니다. 엄격한 종교식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천주교 계열 사범학교를 다녔고 교사 자격을 딴 뒤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남아공과 탄자니아 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영국 런던대를 통신과정으로 독학해 석사를 받았습니다. 옥스퍼드에서도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무가베는 잠비아와 가나 등지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때까지만도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학식이 높은 하지만 평범한 선생님이었습니다.

● 엘리트 교사에서 독립투사로

그러던 중 1960년 주변국의 독립을 바라본 무가베도 흑인 저항운동에 뛰어듭니다. 36살이었으니 정치입문 치고는 좀 늦은 편이죠. 민주투사, 독립투사라면 한 번은 겪게 되는 옥고도 치릅니다. 1964년 과격한 언행을 빌미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는데 형기가 끝나갈 무렵 그의 형량은 갑자기 9년 더 늡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10년을 세월을 보냅니다. 수감중에 3살 난 아들이 전염병으로 숨졌는데 가석방을 받지 못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릴라 무장투쟁 당시 무가베옥중에서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합’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면서 명실상부한 흑인저항운동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 무가베는 국외에 머물며 게릴라전을 이끌면서 짐바브웨 독립에 앞장섭니다. 여기까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흑인저항운동의 동지로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만델라는 나중에 무가베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영국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1979년 식민지 해방을 결정하고 국명도 로디지아에서 짐바브웨로 바꿉니다. 이듬해 1980년 짐바브웨는 역사적인 총선을 치렀고, 소수 백인정권의 방해에도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합이 다수당이 됩니다, 무가베는 총선운동기간에 수류탄 공격과 매설 폭탄의 암살 시도를 넘기며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에 오르며 정권을 거머쥡니다. 이후 1987년 총리제에서 대통령제로 헌법을 개정한 뒤 제 2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쭉~ 지금까지 직업이 대통령이란 말처럼 권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임기응변 정책, 주저앉는 경제

1980년 무가베가 총리가 되고 나서 다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까지 짐바브웨 경제는 표면적으로 그럭저럭 버텨갔습니다. 매년 2.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건 가속화되는 인구증가로 생긴 요인이지 실제 국민들의 수입은 갈수록 뒷걸음질 쳤습니다. 무가베는 이런 가운데서 사회주의 제도를 들이밀었습니다. (북한하고도 아주 친한 인물입니다.) 사유재산을 제한하면서 오히려 돈 가진 사업가들이 나라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짐바브웨의 정권은 흑인에게 넘어갔지만 경제권은 여전히 소수 백인 사업가에 독점되고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이런 밀어부치기는 역효과만 낳았습니다.

결국 1990년대 짐바브웨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났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고나니 국고에 217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무가베의 말은 짐바브웨의 경제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졌는지 말해줍니다. 가난했다 권력을 쥐면서 부패에 눈을 뜬 정부관리, 광물 같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 빈약한 경제구조, 여기에 계속되는 가뭄으로 짐바브웨 경제는 풍전등화에 놓입니다. 당연히 국민의 불만은 권력자를 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정적 숙청과 반대파 구타, 암살 같은 온갖 비열한 방법을 써가며 정권을 유지한다해도 어쨌든 국민투표에서 이겨야 권좌를 지킬 수 있습니다. 국민적 인기를 유지해야 하는 무가베는 평소 주장하던 사회주의 관념을 위기탈출의 묘수로 써먹습니다.

2000년에 사유재산 제한으로 불만 가득한 백인에게 핵폭탄급 비수를 꽂습니다. ‘백인 토지 몰수’입니다. 토지개혁이란 명분으로 백인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한 푼의 보상금 없이’ 몰수해 흑인들에게 나눠줘 버린 겁니다. 물론 식민지시절 땅을 착취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백인이야 할 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백인에게서 제 값을 주고 땅을 산 백인 이민자들은 그야말로 ‘착취’를 당한 셈입니다. 그래도 유권자인 흑인에게선 대환영을 받았겠죠. 

무가베는 이것도 모자라 외국자본이 소유한 짐바브웨 기업 주식의 절반을 강제로 국가에 양도하라고 명령합니다. 반발하면 그냥 체포해버렸습니다. 외국투자 자본이 빠르게 짐바브웨를 빠져나갔습니다. 돈이 없는 기업은 망할 수 밖에 없겠죠. 줄도산이 이어졌습니다. 이미 백인 농장이 붕괴되면서 농업기반도 사라졌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투자자본도 끊겼습니다. 나라 살림할 돈도 바닥났습니다. 어쨀까요? 무가베의 아이디어는 ‘돈은 없으면 또 찍으면 된다’였습니다. 당연히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겠죠. 

 버스비도 안 되는 100조짜리 지폐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말이 있습니다. 연간이 아닌 ‘한 달’ 물가상승률이 50%가 넘어가 통제범위를 넘어간 상황을 뜻합니다. 2006년 무가베가 엄청난 돈을 찍어내면서 2008년 짐바브웨는 새로운 세계 기록을 달성합니다. ‘연간 물가상승률 2억 3100만 % 달성’, 지난해 승용차를 샀던 돈으로 올해는 계란 한 판 못 산다는 말입니다. 미화 1달러에 ‘3경 500조’( 35,000,000,000,000,000 = 35뒤에 0이 15개나 붙어야 합니다. )짐바브웨 달러였으니 얼마나 사태가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달러를 냈더니 잔돈을 저렇게 주더라.’ ‘장을 보기 위해선 저런 수레에 돈을 쌓아서 밀고 다녀야 하더라.’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은 짐바브웨판 ‘막장경제’의 단면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짐바브웨 돈결국 짐바브웨는 2015년 자국 화폐 사용을 포기했습니다. 나랏돈이 없는 나라가 된 겁니다. 

국민의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해 가뭄까지 겹치면서 짐바브웨 국민의 4분의 1인 3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놓였고, 2만 마리의 가축이 가뭄으로 굶어 죽었습니다. 실업률은 90%에 육박하는 상황이고 국민의 대다수가 하루 1달러 정도만 벌며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 생일상에 ‘코끼리’까지

무가베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독재와 반대파 숙청 그런 게 아니라 생일파티입니다. 공원이나 골프장을 통째로 빌려서 수만 명이 참가하는 그의 생일파티에선 해마다 '믿거나 말거나'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09년 85세 생일에는 모에&샹동 샴페인 2000병, 조니 워커 500병을 내놨습니다. 이건 맛보기였습니다. 2013년 89세 생일 때는 정확히 ‘89kg’짜리 초대형 생일 케이크가 등장합니다. 더 기가 찬 건 해마다 내놓는 생일케이크의 무게도 한 살씩 먹는 나이만큼 1kg씩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엔 5백만 달러짜리 동상을 기념제작 했는데 북한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2015년 생일파티가 압권이었습니다. 그가 차려놓은 생일상에는 아기 코끼리와 들소, 임팔라, 흑담비 같은 야생동물이 도축돼 올려졌습니다. 지역 유지들은 무가베에게 사자머리를 잘라 선물했다고 합니다. 매년 무가베의 생일잔치에 드는 돈이 적게는 우리돈 10억원에서 25억원에 달합니다. 무가베는 오는 25일 또 한번 기념비적 생일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에서 열리는 이번 생일잔치 비용만 역대 최고인 28억 7천만원을 썼다고 짐바브웨의 집권당이 발표했습니다. 지지자, 지지기업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충당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걸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국민의 90%가 기근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병원이나 학교에 대한 투자가 더 시급하다는 반론이 있지만 무가베가 귀담아 들리리는 없겠죠. 올해는 93개의 풍선을 하늘에 날릴 것이라고 합니다. ‘탐관오리’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무가베 생일케이크 ● 그 남편에 그 아내 

무가베의 재산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별장이 한 번 공개됐는데 욕실만 25개로 우리돈 290억원을 들여 완공했다고 합니다. 궁전 수준인데 인테리어 가격만 수백만 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중동의 예술가가 1년동안 별장 천정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무가베는 이런 별장이 5개가 있습니다. 이게 2008년까지 기록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겠죠. 2011년 해외여행에서 쓴 돈만 200억원이 넘었다고 현지 신문이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짐바브웨 대통령의 연봉은 우리돈 6천만원이라고 합니다. 

무슨 돈이 어디서 나느냐는 뭐 대충 짐작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탐욕이 끝이 없는 분 같은데 2015년엔 돌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이유가 네슬레가 무가베의 아내 그레이스가 가진 농장에서 생산하는 우유의 구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랍니다. 우유를 내다 팔 곳이 끊이자 아예 독자적인 유제품 사업에 나선 겁니다. 짐바브웨 국영방송에선 무가베가 설립한 ‘알파 오메가’란 아이스크림 회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주고 있습니다. 이왕 나왔으니 아내 이야기를 좀 하고 지나가죠. 짐바브웨의 퍼스트레이디 ‘그레이스 무가베’의 나이는 51살입니다. ‘40살 연하’인 셈입니다. 세대를 초월한 사랑 같은데 그 사랑은 불륜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레이스는 원래 짐바브웨 대통령 사무실의 타자직원이었습니다. 무가베의 아내가 병으로 숨진 1996년 그 해에 둘이 결혼을 합니다. 짐바브웨의 영부인이 되고 나서 그레이스가 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 두 달 만에 사회학 박사학위’를 땄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전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무슨 건국 설화를 보는 중 알았습니다.

그레이스는 다양한 별명을 가졌습니다. ‘구찌 그레이스’, ‘검은 이멜다’, 등등. 사치벽이 장난 아닙니다. 2014년 딸의 결혼식에 51억원을 써서 비난을 받았죠. 결혼 20주년 기념 선물로 16억원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했다가 취소하면서 돈세탁 의혹도 받았습니다. 위키리크스는 그레이스가 짐바브웨의 불법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에도 관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레이스는 짐바브웨 집권당의 양대정파중 하나인 여성연맹을 이끌고 있습니다. 무가베가 노쇠할수록 무가베를 조정하는 감독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레이스가 지지자들 앞에서 ‘내가 대통령’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로 무가베의 권력을 이어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짐바브웨가 중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코끼리와 사자 같은 야생동물을 중국으로 팔았다는데 그 꼼수를 그레이스가 내놨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레이스 무가베 ● ‘100세 대통령’까지 뻗은 탐욕

나이 93세, 37년 집권, 권력이며 장수며 누릴 것 다 누려서 더는 욕심 날 게 없을 것 같은 무가베가 내년 대선에도 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니 99살까지 권좌를 누리겠다는 겁니다. 우리나이로 치면 ‘100세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그레이스는 한술 더떠서 “남편이100세가 될 때까지 통치할 수 있도록 특수 휠체어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데, 이렇게 자기 맘대로이니 차라리 종신 대통령을 하던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2015년 91세 생일 때 무가베가 장수 비결을 자랑했는데 “잘 먹지만 배부르지 않게 먹는 것”랍니다. 음식이 당긴다고 배가 부를 때까지는 먹지 말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빠짐없이 산책을 하고 술과 담배로 하지 않고 고기보다 야채를 즐기는 식습관을 가진 게 장수 비결이라고 합니다. 무가베가 만약 차기 대선에도 승리해서 권좌를 지켜가면 아프리카 최고령 독재자의 악명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말라위의 초대 대통령인 헤이스팅스 반다가 96세까지 집권하다 물러난 게 기록입니다. 참고로 국왕을 제외하고 최장기 독재집권은 49년간 1인 독재를 한 쿠바의 피엘 카스트로 입니다. 

무가베가 죽지만 않는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당선될 건 뻔해 보입니다. 무가베를 반대하고 비난하고 그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실종되거나 살해된 사람만 최소 2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2008년 대선에서 무가베가 1차 투표에서 야권인사에 뒤진 뒤 치러진 결선투표 과정에서 하루만에 숨진 사람이 공식 확인 된 건만 80명입니다. 당시 무가베측이 결선투표에서 이기기 위해 160명을 살해하고 5천 명을 구금해 고문.구타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에 무가베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성은 자기 집에서 식사도중 쳐들어온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했고, 다른 한 남성은 정원을 손질하다 살해됐다고 합니다. 반대자에 대한 경고로 그들의 아내를 강간. 살해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영국의 BBC는 짐바브웨의 한 다이아몬드 광산 주변에 ‘고문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국에서 납치한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고문 기술자로 훈련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무가베의 초호화 별장 내부무가베가 정적을 체포한 데 항의 시위가 벌어지자 군대를 투입해 2주만에 2천명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생존자에 따르면 산채로 땅에 파묻고 교회에 가둬 불태워 죽이고 시체 위해서 강제로 춤을 추게 하는 등 그 잔혹함이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철저하게 반대파를 숙청하니 누가 무가베를 반대할 수 있을까요. 정말 전대미문의 100세 독재자가 탄생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마저 듭니다.

무가베가 어떤 과정을 거쳐 권좌에 오르게 됐으며 어떤 악행을 저질렀고 또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해방투사가 왜 이렇게 무자비한 독재자로 변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권력을 오래 쥐면 쥘수록 이렇게 된다는 건 역사가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최정점에서 누리는 쾌락에 빠져서 일수도 있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그릇된 자부심과 책임감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오랜 권력의 결과는 늘 한가지 부패한 독재로 귀결됩니다. 세상의 이치겠죠.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열흘 피는 꽃이 없듯 영원한 권력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역시 역사가 수없이 반복해 증명한 이치입니다. 무가베도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불멸처럼 여겨지는 권좌를 살아서든 죽어서든 놓을 수 밖에 없겠죠. 고통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속으로 무가베 시대 이후 짐바브웨가 속으로 단단하게 다져지고 꽉 여물어진 희망을 안고 더 큰 발전의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짐바브웨 국민들이 고난과 고통의 삶에 주저앉지 않고 조금만 더 참고 이겨나갈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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