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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슬럼프' 봅슬레이 대표팀 "조직 재정비가 급선무"

이용 감독 "썰매 날 전문가 교체가 부진 원인"

[취재파일] '슬럼프' 봅슬레이 대표팀 "조직 재정비가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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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세계 랭킹 1위에서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진 봅슬레이 대표팀이 귀국했습니다. 당초 예정됐던 인터뷰도 취소하고 말없이 곧장 평창 슬라이딩센터로 향했습니다. 굳은 표정의 원윤종-서영우 선수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하며 평창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우리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이 국제대회를 마치고 귀국할 때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의 임원들이 공항에 나와서 꽃다발과 플래카드로 선수단을 환영해주고, 선수들도 환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기에 이번에 조용한 귀국은 저로서는 보기가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성적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데다 불모지에서 이렇게 빨리 세계 정상권으로 발돋움한 것만 해도 충분히 놀랍고 평가 받을만한데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필요가 있었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선수단 맨 뒤에서 홀로 입국장을 빠져나오던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에게 어렵게 말을 건넸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원윤종-서영우 선수의 부진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 이용 총감독 "시즌 도중 썰매 날 전문가 교체가 부진 원인"

이용 감독은 올 시즌 도중에 대표팀의 '썰매 날 전문가(엔지니어)'를 교체한 것이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2월 우리 대표팀의 '썰매 날(러너)'을 관리하던 스위스 전문가 2명(한슐리 쉬즈-파비오 쉬즈 )이 갑자기 개인 사정을 이유로 팀을 떠났습니다. 부자지간인 이들은 지난 시즌 원윤종-서영우의 세계랭킹 1위 등극에 기여했던 대표팀의 '식구'였습니다. 

그런데 왜 별안간 떠났을까요? 지난해 1월 우리 대표팀 코치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던 영국인 맬컴 로이드 코치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스위스인 날 전문가와 로이드 코치는 우리 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으며 호흡을 맞춰왔는데 로이드 코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겁니다. 그런데 로이드 코치의 후임으로 새로 합류한 에릭 엘러드 프랑스인 코치와 스위스 날 전문가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결국 팀을 떠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갈등이 있었는 지에 대해서 이용 감독은 말을 아꼈지만 말 못할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였습니다. 이렇게 시즌 초반부터 코칭스태프를 바꾸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국제 봅슬레이계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봅슬레이 원윤종 서영우, 사진=AP
● 스위스 날 전문가 사퇴 후 '성적 와르르'

원윤종-서영우는 이들이 사퇴한 월드컵 2차 대회부터 갑자기 성적이 추락했습니다.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렸던 월드컵 1차 대회를 3위로 무난하게 시작했는데 이후 성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평창에 새로 마련된 실내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에서 충실히 훈련하며 두 선수의 스타트 기록이 향상돼 올 시즌 기대가 컸기에 성적 하락이 더욱 의아했습니다. 이후 월드컵 2차 대회부터 지난주 독일 쾨닉세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까지 성적은 4위→5위→8위→8위→16위→11위→21위로 수직 하락했습니다.

특히 올림픽 모의고사라 할 수 있는 세계 선수권에서 3차 시기에서 탈락하며 21위로 처진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용 감독은 스위스 전문가가 떠난 후 급히 데려온 새 미국인 전문가는 날 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오죽하면 이미 다른 팀으로 떠나버린 스위스 날 전문가들을 지난 주 세계 선수권 때 다시 데려오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했겠습니까? 100분의 1초를 다투는 썰매 종목에서 트랙 상태와 날씨에 따라 날 선택을 달리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 이용 총감독 "조직 재정비가 급선무"
이용 총감독
대표팀은 부랴부랴 새로운 날 전문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용 감독은 무엇보다 조직 재정비가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림픽 직전 시즌이 아니라 평창 올림픽까지 아직 1년이 남은 시점에서 원윤종-서영우 선수의 슬럼프가 온 것입니다. 평창 올림픽까지는 조직을 재정비하고 분위기를 추스를 시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홈 트랙 이점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썰매 종목이기에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집중적인 주행 훈련을 통해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3월 평창 슬라이딩센터 사전 인증 때 냉각 장치 고장으로 얼음이 녹는 바람에 대표팀이 주행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지만 그래도 평창 올림픽까지 40차례 주행만 할 수 있는 외국 선수들에 비해 우리 대표팀에게 기회가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대표팀이 한 번이라도 더 평창 트랙에서 썰매를 탈 수 있도록 정부와 평창 조직위원회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올림픽 봅슬레이에 처음 출전한 것이 불과 7년 전이었던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였습니다. 그만큼 역사가 일천합니다.

처음에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바퀴 달린 중고 썰매를 타고 시작했고, 2010년 이후에는 평창에 만들어진 폴리우레탄 고무 재질의 스타트 훈련장에서 땀 흘리며 꿈을 키웠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원윤종-서영우 선수는 2인승에서 18위를 차지했고, 불과 2년 만에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국제 썰매계에서는 한국 봅슬레이가 올 시즌 부진한 것보다 지난해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것을 더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치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했던 메달을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바라볼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고, 여기까지 온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합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가라 앉았지만 한국 봅슬레이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힘차게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세계 1위를 했던 저력을 바탕으로요. 귀국 후 곧바로 평창 슬라이딩센터로 건너가 훈련에 돌입한 원윤종-서영우는 다음 달 17일부터 평창 홈 트랙에서 열리는 월드컵 8차 대회에서 분위기 반전을 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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