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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판 '라 데팡스'…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인가?

[취재파일] 한국판 '라 데팡스'…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인가?
지난 주 국토교통부는 ‘도로 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통한 미래형 도시 건설 활성화 계획’ (이하 ‘입체 도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현행 도로법상 도로가 지나는 땅에는 지하와 상부 공간에 공공 건물만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나라엔 도로를 가로지르는 시설물로 육교(공공 건물) 외엔 딱히 인상에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입체 도로 활성화 계획’에 따라 정부는 도로법을 개정하여 도로 상공과 지하 공간에 민간 시설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도시 경관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입체 도로를 이상적으로 구현한 곳은 프랑스 파리 서부 외곽의 현대식 상업지구 ‘라 데팡스’를 들 수 있습니다. 도로 위에 상판을 덮어 그 위 공간을 건물과 공원 등으로 꾸민 형식입니다. 일본 오사카의 게이트 타워 같은 곳 역시 앞으로는 우리 나라에 건축 가능합니다. 건물 아래 부분을 자동차 전용 도로가 뚫고 가는 모습입니다. 활성화 계획대로 도로 위아래 공간에 건축물을 자유롭게 짓게 되면 빌딩 숲 사이를 오가는 고층 고가도로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린 시절 책에서만 보던 미래 도시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계획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 서울에 과연 필요한 정책이냐 하는 점입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2016년 12월 기준 993만명으로 추산됩니다. 문제는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서울을 빠져나간 사람이 무려 14만명이나 됩니다. 유출 수준으로 따진다면 1997년 이후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1990년부터 27년동안 줄곧 서울의 인구는 줄고 있고, 감소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체 도로 제도는 전형적인 고밀도 개발 방식의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한정된 땅에 이런 저런 시설을 겹쳐 놓아 압축적으로 쓰는 방식인 겁니다. 그런 고밀도 개발을 인구가 줄고 있는 도시에 적용한다? 한마디로 ‘도시의 니즈(needs)’가 없는 개발을 추진하는 셈입니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입체도로는 먼 나라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고가 도로 역시 입체 도로의 한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고가 도로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살기 좋고 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 아래 철거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입체 도로 제도’는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또 하나는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부분입니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건축물에 대한 내진 설계 등 건축물 안전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입체 도로 제도는 기본적으로 안전 측면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형식입니다. 도로 위로 건축물을 세우고, 건물 아래 도로를 지나가게 하는 등 끊임없는 진동에 건축물을 노출 시키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방재 전문가들은 정부의 ‘입체 도로 제도’는,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려스러운 제도라고 지적합니다.

국토부는 이번 ‘입체 도로 제도’를 16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신산업규제혁신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했습니다. 인구 감소와 안전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를 ‘규제를 없앴다’는 생색 내기용으로 삼은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도가 진정 무엇인지 당국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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