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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희정의 '선한 의도'를 해부하다

[취재파일] 안희정의 '선한 의도'를 해부하다
마(魔)의 지지율이라는 20% 벽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른바 ‘선의(善意)’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앞서 대연정 논란까지는 ‘소신’이라는 말로 돌파했는데 이번 선의 논란에는 발목이 잡힌 모습입니다. 발단은 지난 19일 부산대 강연이었습니다.
 
● 반어법 구사?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청중들과의 즉문즉답에서 안 지사는 “그분들(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면서 "누구라도 그 사람의 의지를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어법을 구사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객석에서 웃음이 나올 만큼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음 발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한) K스포츠·미르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겁니다. 비록 뒤에 "그것이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했지만 논란을 추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K스포츠·미르재단도 ‘선의’인가”

인터넷과 SNS에는 안 지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박 대통령 측이 탄핵 심판을 기각시키기 위해 주장하고 있는 핵심 논리, 즉 K스포츠와 미르재단은 추진 과정에서 일부 잘못이 있었다 할지라도 박 대통령은 선의로 추진한 일이라는 변론을 안 지사가 그대로 인용했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의 K스포츠·미르재단 추진은 시작부터 선의가 아닌 사익 추구 등을 위한 나쁜 의도였다는 게 특검 수사에서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안 지사는 논란이 계속되자 "(박) 대통령 본인께서는 좋은 일을 하려고 했다고 자꾸 변명을 하시니, 그 말씀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그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라며 "(강연 중에) K스포츠나 미르재단을 두둔하는 발언이 어디에 있느냐"고 해명했습니다. 또 언론을 향해 “왜 그 문답에 이렇게 싸움을 붙입니까? 그런 취지가 아니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알려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 발목 잡힌 ‘소신’

지난 2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손석희 앵커와 바로 이 ‘선의’를 가지고 20분간 논쟁을 벌였습니다. 안 지사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그 사람이 뭔가 주장하는 바대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자, 이걸 전제로 해야만 그 대화를 좀 더 잘할 수 있고 그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잘못을 수정해내는 데 더 빠른 길이라고 하는 저의 이야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안 지사는 먼저 상대의 선의를 인정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막고 본질적인 대화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날인 21일, 부산대 강연 발언이 나온 지 이틀 만에 사과한 겁니다. 안 지사는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예까지 간 건 아무래도 많은 국민 여러분들께 다 이해를 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는 분이 너무 많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주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안희정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다면 안희정 지사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단순한 말실수였을까요? 물론 본인이 사과까지 한 걸 보면 예가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안희정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 있었을 겁니다. 한 번 따져보기로 하겠습니다.

안희정 지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바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계승하되 답습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바꿔 말해서 기존 정치의 배울 점은 이어가겠지만 잘못된 점은 고치겠다는 겁니다. 우리 정치에서 항상 문제가 돼 온 부분은 여야 대결 구도입니다. 묻지마 대결입니다.

방송가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한 아나운서가 원고를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가 뉴스를 시작했습니다. 정치권 소식을 읽고 있는데 아차, 뒷장을 안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원고는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0000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까지만 적혀 있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네, “강하게 반발했습니다.”입니다.

비록 길지는 않지만 국회를 출입하면서 느낀 우리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대화의 부재’입니다. 원인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 문화에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우리나라의 선거, 정치 제도가 한 원인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나는 선이고 당신은 악이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친일 대 반일’, ‘좌익 대 우익’, ‘독재 대 반독재’ 같은 역사적 비극의 상처들이 우리 정치권에 투영되면서 생긴 대결적 구도이자 그 산물인 겁니다.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오는 “친북 좌파 세력”, “친일?재벌 비호 세력”이라는 정치권의 상호 비난 구호가 이런 선악 구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안 지사가 “우리 사회에서의 모든 논쟁이 그 사람 마음속이 선하냐, 악하냐를 가지고 너무 싸우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물어야 되는 것은 그가 시민의 공적 생활에서 어떤 행위를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행위 앞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 행위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 선의다, 악의다라고 싸우는 것 자체가 제가 볼 때는 너무 소모적 논쟁입니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정치적 영역 vs 사법적 영역

요약하자면 안 지사의 주장은 ‘사법적 영역’이 아닌 ‘정치적 영역’에서의 선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선의’라기 보다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정치적 자세로서의 선의인 셈입니다. 정치는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입니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에서 갈등은 숙명입니다.

하지만 서로 아무리 입장이 달라도 또한 이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즉 다른 생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대화가 될 리 없습니다. 혹자는 "정치란 (자신이 보기에)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안 지사의 선의란 서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대화를 하자는 일종의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남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K스포츠·미르재단 추진도 선의로 보자는 말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지금까지의 특검 수사 등을 볼 때 선의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판단입니다. 즉, 선의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법적 영역입니다. 물론 정치도 사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으면 그걸로 다 된 걸까요? 한국갤럽이 의뢰·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7년 2월 3주: 14~16일/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1%입니다. 우리 국민 약 10명 중 1명은 그런 자유한국당 지지자인 겁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 대한민국은 그런 곳입니다.

정치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마주 앉아 공통의 분모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안 지사가 말한 ‘선의’란 이런 대화를 효율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정치적 자세를 말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가 늘 강조했던 ‘협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럼 문제가 하나 남습니다. '잘못에 대한 단죄는 누가 하나?'라는 겁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니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어갈 순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법적 책임은 응당 사법부가 맡으면 됩니다. 사법적 영역을 넘어서는 정치적 책임은 누가 물어야 할까요? 유권자가 아닐까 합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하는 정치인이 직접 단죄에 나선다면 정치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가 말한 것처럼 지도자라면 '불의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 꼭 거창하게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수오지심(羞惡之心)은 필요한 법입니다.

자, 이제 안희정 지사의 선의, 어떻게 봐야 할까요? 판단은 유권자인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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