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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이 '김정남 암살'을 은폐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취재파일] 북한이 '김정남 암살'을 은폐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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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사건의 배후가 지난 19일 말레이시아 경찰의 발표로 사실상 드러났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의 배후로 지목된 남성들이 모두 북한 국적임이 드러남으로써 북한이 이 사건을 기획한 것임이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북한 공작원들이 위조 여권이 아니라 북한 여권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CC-TV가 많은 공항에서 범행을 하고 CC-TV에 그대로 얼굴이 찍혀 사건 추적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공작 치고는 너무 어설프다는 것이다.
 
● 북한 나름으로는 사건 은폐 위해 노력
김정남 피습 당시 CCTV 영상
하지만, 이 사건을 실행한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는 사건 은폐를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국적이 아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을 몇 개월 전부터 끌어들여 범행을 하도록 했고, 범행이 일어난 직후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를 떠나 북한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여성 용의자가 사건 초기 자신에게 일을 시킨 남성들이 베트남 국적과 북한계라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으로 보면, 여성 용의자들은 남성 용의자들의 국적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 용의자들이 붙잡혔다고 해도 일을 시킨 남성들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의 진상이 은폐될 수 있는 가능성은 또 있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김정남은 여성들에게 피습을 당한 뒤에도 한동안 걸어다녔다. 주변에서 여성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았더라도 이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공항 의료진들도 김정남이 스스로 걸어와서 도와 달라고 한 뒤 죽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일반인이 이렇게 죽었더라면 대개는 단순 돌연사로 처리됐을 것이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이 처음 심장마비로 공항에서 실신한 북한 외교 여권 소지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자연사했다고 북한 대사관에 알렸다”고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말레이시아 측도 처음에는 이 사건을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 돌연사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김정남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 피해자가 김정남으로 확인되는 순간 ‘타살’에 주목
 
하지만, 피해자가 김정남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모든 상황은 바뀌게 됐다. 김정남은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김일성의 장손이자 김정일의 장남이라는 아주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복동생인 김정은이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남이 죽었다면 의혹의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김정남이 예사롭지 않게 죽었으니 말레이시아 차원을 넘어 한·미·중·일 여러 나라들이 이 사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 파악에 나섰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측도 국제적 관심을 고려해 초기 돌연사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본격적이고 집중적인 수사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측이 남성 용의자들의 실체를 비교적 빨리 파악하는데 있어 국제적 수사 공조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김정남, 죽음 자체로 '흔적' 남겨
피습 직후 김정남
결국 이 사건은 북한이 아무리 은폐하려고 해도 은폐할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김정남이라는 인물은 늙어 죽지 않는 한 북한의 범행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아주 특수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공작원들이 위조 여권을 사용했는지 아닌지 CC-TV에 얼굴이 찍혔는지 아닌지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공작원들이 위조 여권을 사용하고 CC-TV에 얼굴이 찍히지 않았더라도, 수사 당국이 처음부터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모든 것들을 철저히 점검해가다 보면 어차피 다른 흔적이 발견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이복형인 김정남을 죽이고 싶었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정남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 자체가 흔적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일으킨 파문이 서서히 북한 내부로 퍼져가면서, 북한 주민들도 김정일에게 김정은이 아닌 장남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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