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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②

'정유라 청문회 눈물' 김혜숙 교수에게 듣는 '거부하는 힘'

[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②
이화여대의 현재 상황은 지금 우리 사회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교내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소수의 교직자들은 줄줄이 구속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수의 '라인' 몇 명이 비상식적인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교직자들에게 압박을 가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치열한 반발 끝에 물러난 학교의 최고 지도자, 총장의 자리는 석 달 넘게 공석입니다. 단결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상황을 반전시킨 학생들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드라마가 이대 캠퍼스에 응축된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한 첫번째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날,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장을 만났습니다. 김 교수가 그 이대 사태의 한복판에서 처했던 상황과, 취했던 선택의 과정들이 궁금해서였습니다. 김 교수가 이끈 이대 교수협의회는 학교측과 학생들의 싸움으로 비쳤던 학내 갈등 속에서 학생들의 편에 서서 총장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전체 교수진의 15% 정도가 가입해 있는 교수협의회는 이대 안에서 이른바 '학내 야당'으로 불립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정유라 학사 특혜 의혹을 집중추궁한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4차 청문회'에서, 경찰에 끌려나가는 점거농성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청문회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일부가 김 교수 역시 당시 청문회에 출석했던 다른 이대 측 증인들 - 지금은 모두 구속된 최경희 전 총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 과 함께 학사 특혜를 주도한 또 한 명의 교직원이려니 짐작하고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학생들이 김 교수를 변호하고 나선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청문회를 보시는 분들, 김혜숙 교수님은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하고 격려해 주셨던 교수협의회 측 증인입니다. 농성 과정에서 가장 많은 힘이 되어주셨던 교수사회의 양심이에요. 무차별 공격이 쏟아지는 것 같아 말씀드린다"는 글들이 쏟아졌습니다. 경찰 투입 영상을 튼 김한정 의원에게도 학생들의 문자가 쏟아져, 김 의원은 질의에 앞서 "김혜숙 교수님까지 비리 교수로 오해받는 상황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유라 학사비리의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사회의 지탄을 받은 지금, 김 교수와 교수협의회의 선택이 "지당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좀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같은 이야기를, 그들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지난해 하반기 이전에도 할 수 있을까요.
   
이대에는 김혜숙 교수도 있었고, 정유라에 대한 학사 특혜를 끝까지 거부한 함정희 교수 같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정부에도, 앞날이 불투명했지만 "그래도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며 명예와 권력을 내려놓은 일부 전문가들이 있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납니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부역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에도 적극적인 주동자와 소극적인 동조자들이 있었던 것 역시 서서히 세간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여러 번 지시가 내려와 결국 따랐다"는 말들이 되풀이됩니다. 만약 '그때', '같은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어떻게 하게 될까요. "해방되고 광복운동 하기야 쉽지"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약없는 일제 치하에 '친일파'를 거부하는 어려움의 무게는 어땠을까요. 그 거부를 유지하게 하는 힘은 뭘까요. 우리 사회가 정말 새로운 봄을 열망하고 있는 이 겨울에, 같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 이대 캠퍼스에서 김 교수를 만나 물었습니다.

▶ [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① 에 이어집니다.



(학생들이 공권력에 대한 실망감과 상처에도 시달린다고 하셨는데요.)

공황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교수협의회 차원에서 학생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정말 병원에 가서 약물 치료를 받아야 될 만큼 불안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거든요. 불면증, 불안증세 이런 것들이 아주 심하게 나타나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리고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학생들. 그래서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한 계속 하려고 해요.

이 아이들은 공권력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하는 세대예요. 그런데 자신이 어느 순간에 그 공권력의 타도 대상이 돼 있는 경험을 한 거죠.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믿었던 학교, 들어오면 아늑하고 나를 항상 보호해주리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그 학교가 자신을 폭도,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경찰을 동원했다는 데 대한 배반감, 좌절감 이런 것들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까 아이들이 굉장히 큰 교육적 경험을 했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그 과정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진 않은 거죠. 결국 이 학생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갖게 된 거고, 아이들이 그걸 잘 극복해서 자기의 삶의 에너지로 삼고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들으니, 교수님이 청문회에서 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는 영상 보면서 눈물 흘리신 상황이 생각납니다. 과연 그때 심경이 남다르셨을 것 같네요.)

그 때 그 동영상을 저는 사실 그 전에 봤었어요. 그 전에 우리가 학생들이랑 교수간담회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다같이 봤어요. 그걸 보면서 학생들도 울고 교수들도 너무 놀라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청문회에서 그걸 다시 틀어주니까, 그 때 생각이 나면서.... 아직도 저것 때문에 그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약간 좀 울컥했던 그런 거였는데... 눈물을 흘렸다기보다는...(웃음) 아무튼 감정이 좀 그랬습니다.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게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게 과거 일이 아니고,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그 시간에 갇혀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그게 좀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이대가 이번 사태로 인해 비리의 온상이라는 수식어까지 붙고 있는데요. 평생을 이대에서 보내오신 분으로서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사비리와 입시부정이 발생한 대학이죠.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아주 끈질기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순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는 대학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계속 농성을 하는 과정 안에서 언론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드러나면서, 결국은 이런 엄청난 정치적인 스캔들이 드러날 수 있게끔 이 학생들이 버팀이 되기도 했고요. 만약 학생들이 타협을 진작에 했었더라면, 그냥 쉽게 포기하고 세상이 그런거지 하고 끝냈더라면, 지금 우린 전혀 다른 한국 사회와 마주하고 있을 거고, 최순실 씨는 여전히 건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실질적인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여대 사태와 이대 자체는 이번에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졌다고 생각하시나요.)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교육이죠. 그러니까 지금 TV에 나오는 모든 뉴스 같은 것들도 학생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고, 강한 교육적 효과를 가집니다. 그러니까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어른들이 뻔뻔하게 버티는 모습조차도 학습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화여대생들이 던져준 메시지는 그런 세상에서 도덕적이 된다는 것이,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게 있다고 봐요.

여기서 중요한 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어린아이들한테 말 잘 들어라, 착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건 도덕교육이 아니에요. 지금 다들 자기 윗사람의 지시를 잘 수행하다가 그런 짓들을 한 거잖아요. 잘못된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별로 피력하지 않고, 수석이라든가 장관 차관 이런 막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단지 윗사람이 원하기 때문에, 실력자가 원하기 때문에 말을 잘 들었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말 잘 듣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선 안 된다는 거죠. 이화여대생들이 보여준 도덕의 덕목은 자율과 책임과 자유입니다. 도덕은 누구의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여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원칙에 맞춰서 판단하도록 노력하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가 이번 기회에 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 잘 듣는 아이를 키우면 내 말을 잘 들을 때 나는 좋지만, 그 아이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 말도 잘 들어요. 자신보다 힘 가진 사람, 자신보다 윗사람, 부모의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밖에 나가서 다른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도 순종적으로 잘 듣는 거죠. 우리가 그런 아이를 키울 것인가...... 그렇게 해서 큰 성인이 되었을 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 때도 결국은 윗사람의 요구에 완전히 순응하는 그런 인간이 되게 할 것인가, 이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화여대생들이 이번에 보여준 자율성의 능력,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 태도가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는 거라고 봅니다.

(이대의 요직에 계셨던 선생님들이 계속 비리에 대해 부인하시는 모습도 던지는 메시지가 있겠죠.)

착잡하죠. 어떻게 저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까. 교수들 뿐만 아니라 지금 뭐 청와대 수석하셨던 분들이나... 다 그렇잖아요. 어떻게 저런 뻔뻔함이 통용되는가. 그런데 이 사회가 조금 있으면 또 그런 사람들 멀쩡한 얼굴로 다시 나와서 다시 또 뭐하고 뭐하고 이런걸 용인을 하잖아요. 우리가 용인을 하잖아요.

요즘 사회는 도덕이 다 물량적 가치로 환원이 돼서, 택시 기사님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던데, '정직해 봐야 자기 손해'라고요. 남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한 이용해 먹고, 거짓말을 해서 그게 나한테 이득이면 거리낌없이 거짓말 하고... 그걸 사회가 용인을 하는 게 문제인 거죠.

제가 자꾸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그럼 그 도덕의 힘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도덕적이 되어야 한다는 그 당위성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여기 도덕이 있고, 저기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있어. 도덕에는 네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어. 그런 상황에서 저거(이득)를 받지 말고 도덕적이 되어야 해, 라는 설득의 근거를 과연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저 분들이 계속 거짓말을 하시는 게, 법 싸움에서 이겨야 하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내 말이 꼬리가 돼서 인정을 하면 법적으로 불리해지니까. 사실 법치사회다 보니 그런 건데, 우리는 아직도 생각은 도덕적으로 할 때 '아니 어떻게 선생이, 대통령이 저럴 수 있지'라고 통탄하는 거죠. 당연히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게 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아무 구속력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그냥 가면 되는 거야,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선택을 해야 돼요. 진짜 그냥 법만 있으면 최선인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도덕적인 사회라고 하면, 그걸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사회가 점점 도덕에 대해 고리타분하고, 불편하고, 법만 있으면 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말씀을 듣다 보니, 아까 선생님이 학생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그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는 취할 이득이 없는 행동에 나섰다고 하셨잖아요.)
 

네. 이런 사회이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덕적으로 살아라, 라고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 사회이지만, 결국 그런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드물게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렇게 버틴다고 생각해요. 가르치는 사람들의 덕목 내지는 사명감 이라고 한다면, 그런 영역이 좀 더 커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더 중요하게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위선자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아니라, 말과 행동이 같이 갈 수 있는 사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삶을 애써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이고, 그게 자식을 키울 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거짓말하면 이득이 오지만, 그렇다고 차마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가르치는 사람들의 사명감, 에 대해 방금 말씀하셨는데... 이번 사태는 스승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저는 그래요. 부모든 선생이든, 모든 상하관계는 결국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스승이라는 것도, 좋은 인간으로서 학생들과 만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좋은 인간이 돼서 좋은 스승이 되려면,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한 사람이 돼야 하겠네요.)
 

자신이 자신에게 엄격한 것......상당히 어려운 일이에요.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바라본다는 것은 보통 잘 하기 어려운 행동들이에요. 그러니까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대체로 눈을 감게 되죠. '아 나는 이래서 어쩔 수 없었어' 이런 식으로 자기 변명을 항상 갖게 되고...... 사실 학생도 스승일 수 있고, 학생만도 못한 교수가 있을 수 있어요.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싶은 덕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이 학생이건 어린이이건 누구나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이라고, 내가 나이가 많다고, 그런 권위를 누리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겠지만, 그런 권위를 부려서 뭘 하겠어요.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도 선생이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의 스승으로서의 의무가 있다면 어떤게 있을까요.)

스승으로서의 의무 내지 그 무게가 굉장히 크죠. 사실 저는 그 무게가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사실은 학생을 가르치고 할 때, 선생이라는 위치가 주는 그 중압감이 상당히 커요. 그래서 때때로 힘들어요. 그것이 특히...... 제가 철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큰 이야기들을 해야 되거든요. 사랑이니 진리니...... 그러면 그 질문을 저에게 다시 하게 되는 거죠. 나는 내가 말하는 것만큼 내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 라고 얘기할 수 없고, 항상 못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일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때때로 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성경구절을 주시더라고요.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고요.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굳이 좋은 선생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그런 것 같아요. 학생들에 대해, 너도 나도 다 같은 길을 가는 인간이고, 그런 점에 있어서 실수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렇지만 선생은 좀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경험 속의 실수들에서 뭘 보고 어떻게 봐야 할 지 학생들보다는 좀 더 넓은 문맥 안에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스승이 아닐까......

(지금의 이대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무엇을 봐야 할까요.)

사실 지금의 사태는 지금까지 누적된 모든 문제들의 끝자락이에요.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유신으로부터 쌓여온 여러 문제들의 끝자락이죠. 이화여대도 마찬가집니다. 이 누적된 문제들을 청산하고, 새로운 구조와 도덕적 의식과 미래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그 에너지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사태가 그 기회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를 우리가 맞이했다, 이렇게 봅니다.

(아프지만, 문제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다...)
 
네. 파괴 없이는 다시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사태를 본다고 하면 그렇게 좌절할 것도 없고 절망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창조적인 미래가 있을 것이다. 창조란 말을 써서 좀 그런데......(웃음) 어쨌든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거예요.

('창조'가 원래 참 좋은 단어인데요 ㅎㅎ)

참 좋은 단어인데 참 아쉬워요. 그렇게 좀 변질돼서...(웃음)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동료 교수들에게도요.)

저는 학생들에게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 독한 세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지 이 세상을 이기는 거다. 그 순수한 가치를 수호하려고 했던 그 자세로써 살아남야지, 그래야지 이기는 거다. 아직 학생들이 싸우려고 했던 그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너희가 앞으로 나갈 사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런 상황들 앞에서 주저앉지 말라고, 그러기 위해서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교수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자기 분야 안에서 자기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사태로, 교수들도 그런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동기를 더 갖게 됐다고 보고요. 사실 교수들이 저한테 와서 그런 얘기하시는 분들 있어요. '아 정말 잘 가르쳐야겠구나, 내 학생들이 이런 학생들이었구나' 강의를 잘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고. 수동적이고 무덤덤한 학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아이들었구나. 그래서 자기의 강의, 교육의 측면, 교수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 [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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