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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①

'정유라 청문회 눈물' 김혜숙 교수에게 듣는 '거부하는 힘'

[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①
이화여대의 현재 상황은 지금 우리 사회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교내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소수의 교직자들은 줄줄이 구속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수의 '라인' 몇 명이 비상식적인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교직자들에게 압박을 가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치열한 반발 끝에 물러난 학교의 최고 지도자, 총장의 자리는 석 달 넘게 공석입니다. 단결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상황을 반전시킨 학생들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드라마가 이대 캠퍼스에 응축된 것 같은 모양샙니다.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한 첫번째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날,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장을 만났습니다. 김 교수가 그 이대 사태의 한복판에서 처했던 상황과 취했던 선택의 과정들이 궁금해서였습니다. 김 교수가 이끈 이대 교수협의회는 학교측과 학생들의 싸움으로 비쳤던 학내 갈등 속에서 학생들의 편에 서서 총장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전체 교수진의 15% 정도가 가입해 있는 교수협의회는 이대 안에서 이른바 '학내 야당'으로 불립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정유라 학사 특혜 의혹을 집중추궁한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4차 청문회'에서 경찰에 끌려나가는 점거농성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청문회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일부가 김 교수 역시 당시 청문회에 출석했던 다른 이대 측 증인들 -지금은 모두 구속된 최경희 전 총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과 함께 학사 특혜를 주도한 또 한 명의 교직원이려니 짐작하고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학생들이 김 교수를 변호하고 나선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청문회를 보시는 분들, 김혜숙 교수님은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하고 격려해 주셨던 교수협의회 측 증인입니다. 농성 과정에서 가장 많은 힘이 되어주셨던 교수사회의 양심이에요. 무차별 공격이 쏟아지는 것 같아 말씀드린다"는 글들이 쏟아졌습니다. 경찰 투입 영상을 튼 김한정 의원에게도 학생들의 문자가 쏟아져 김 의원은 질의에 앞서 "김혜숙 교수님까지 비리 교수로 오해받는 상황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유라 학사비리의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사회의 지탄을 받은 지금, 김 교수와 교수협의회의 선택이 "지당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같은 이야기를 그들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지난해 하반기 이전에도 할 수 있을까요.

이대에는 김혜숙 교수도 있었고, 정유라에 대한 학사 특혜를 끝까지 거부한 함정희 교수 같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정부에도 앞날이 불투명했지만 "그래도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며 명예와 권력을 내려놓은 일부 전문가들이 있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납니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부역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에도 적극적인 주동자와 소극적인 동조자들이 있었던 것 역시 서서히 세간에 보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여러 번 지시가 내려와 결국 따랐다"는 말들이 되풀이됩니다. 만약 '그 때'  '같은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어떻게 하게 될까요. "해방되고 광복운동 하기야 쉽지"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약없는 일제 치하에 '친일파'를 거부하는 어려움의 무게는 어땠을까요. 그 거부를 유지하게 하는 힘은 뭘까요. 우리 사회가 정말 새로운 봄을 열망하고 있는 이 겨울에 같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 이대 캠퍼스에서 김 교수를 만나 물었습니다.


(오늘 이대 총장이 학사비리로 구속될지도 모르는, 사상 초유의 상황입니다. 교수님들 심경이 아무래도 어지러우시겠어요.) *이날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한 첫번째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이후 재청구된 영장이 발부돼 지금은 최 전 총장도 구속 상태입니다.

교수들이 주로 연구하고, 학생들이랑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인데, 갑자기 정치적인 맥락 안에 놓이게 되고... 더더군다나 구속이라든가 수의를 입은 모습이라든가 하는 건 굉장히 충격적인 모습이죠.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참담한 마음입니다.

(정유라라는 한 명의 학생에 대해서 조직적인 관리가 이뤄진 정황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런 일이나 혹은 비슷한 일이 최경희 총장 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소문이라든가, 분위기라든가 알려진 바가 있었나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 학교 학사관리가 상당히 엄격한 편입니다. 저도 26년째 교수생활을 해왔지만 학교 한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상상을 못했어요. 학교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이렇게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고 요소요소에서 그 일을 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지금 나라도 그렇잖아요. 소수의 몇 분들이 자기 자리에서 해야 될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월권이나 배임행위를 하신 거잖아요. 우리나라가 시스템이 붕괴되어서가 아니라 그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가 있던 사람들이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직업윤리상 있을수 없는 일을 행한 거죠.

(분위기도 전혀 느끼지 못하셨나요. 그렇지만 이게 상당히 장기간 동안 이뤄진 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이번엔 정말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부정에도 어떤 범위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예체능 입시비리가 종종 얘기돼 오기도 했고,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우리 사회의 부패의 수준에서 이해가 되는... 용인이라기보다는 심리적으로는 '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있을 수는 있었겠다' 이런 식으로 납득이 되는 그런 수준을 이번엔 넘어섰다고 생각을 합니다. 소수 몇 명의 실패라고 보지만,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는 조건들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하게 하는 환경, 그런 방식의 사람들이 요직에 있게 하는 여건이 우리 학교에 있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이대에 어떤 문화가 있었다는 거죠.)
 
비단 이대 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몇몇이 세력을 형성하고 나서 서로서로 봐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서로 도와주고, 주고받고, 이러는 게 우리나라 부패구조의 근복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이대도 결국은 최경희 총장이 자기랑 말이 잘 통하는 측근을 활용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힘을 갖고 작동할 수 있는 이 구조를 만들어 낸 지배체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대의 지배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보시는 건가요.)

우리 사학의 경우, 대학의 소위 오너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상당히 대학에 작용하는 문제가 있죠. 오너들이 대학을 자신의 사익을 취하는 도구로 삼을 때 많은 왜곡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또 대학들이 교육부에 재정적 의존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교육부 눈치를 굉장히 보게 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렇다 보니, 대학의 여러 행정이 특정인 누구와 가까운 사람, 누군가의 이익을 도모해 줄 수 있도록 형성된 라인 같은 것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오너, 오너 가족 중심으로 인적 구성이 되고, 그러면 그 가족들의 이익을 위해서 조직이 움직이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사학들이 문제를 갖게 되는 겁니다.
 
 이대도 교육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은 다른 사학들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렇지만 이대는 특정한 오너나 오너 가족이 세운 학교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상황에서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대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몇십 년간 이화여대 상황을 보면, 그렇게 민주적이고 개방적이고 투명한 지배구조가,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기준에 많이 못 미치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왜 이화여대였을까요. 교수님 말씀대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학사비리가 왜 이대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실 흔히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기준 하에서 보면 이대는 상당히 투명한 조직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 평균적인 관점으로 보면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상적으로 가야 할 기준에는, 받아들여야 할 기준에는 상당히 못 미친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학교의 재단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재단에 상당히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지는 좀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문제를 제기해 왔던 상황이고요. 무엇보다 학내 의사소통의 구조가 좀더 민주화되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좀더 자유롭게 의견 개진이 되고, 변화에 대한 제안이 이뤄져야 되고, 재단이 어떤 방식으로든 좀 더 투명하고 개방적인 조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교수협의회 활동을 해온 건데, 그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고, 상당히 어려운 여건이었습니다.
김혜숙
(이대가 비교적 투명한 조직이라고 외부인들도 생각하기에는,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질이 그런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사태의 학내 원인을 하나만 짚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데 특히 이번에 최경희 총장 들어서면서 최 총장이 여러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다 보니까 학내 의사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더 심화됐어요. 미래라이프대학 문제로 학내 사태가 빚어지기 전에도 학생들이 여러 가지로 문제 제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소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구조라는 것이 재단을 바라보게 돼 있지 학내를 바라보게 돼 있지 않았고요. 힘이 나오는 곳에 신경을 쓰지 힘이 없는 곳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죠.

학생들이 최 총장 취임 후 2년 내내 불만이 많이 있었고, 갈등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장을 만나서 얘기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무시를 당하고, 제안들은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이런 상황 속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는 사실 그 정점이었고, 점거농성까지 가게 된 거였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수들도 사실 (최 총장 등 학교 운영진과) 도저히 대화가 안 되고, 뭘 제안을 해도 되지 않으니까 포기하는 게 좀 있었어요. 그게 아마 젊은이들과 우리 기성세대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교수들도 최 총장이 내놓은 여러 정책들에 대해서 굉장히 말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얘기를 잘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결국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하는 데까지 나섰던 거죠. 그게 미래라이프사태의 발단이 된거고, 이게 정유라 사태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정치상황까지 곧바로 연결이 됐던 거죠.

(이화여대 이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 조직이라고 보십니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의 멤버를 유지하고, 사실상 종신이사가 가능하죠. 실제로 *** 선생님이 거의 종신직에 가깝게 계시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셨죠. 물론 탁월하고 유능한 분이 평생 학교를 위해 일한다는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한 사람이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한 조직을 지배할 때는 여러가지 무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 보니까 이번 사태까지 오게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학의 이사회 지배구조들이 이화여대와 비슷한 곳이 많죠?)
 
그런 편이죠. 대부분 사학들이 법의 규정 안에서 최소한의 조건을 받아들여서 가고 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대학이라는 기관이 자리를 잡았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 이런 시간들을 거칠 때는,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우리나라 대학이란 곳들의 초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지배구조 모델이 통했던 시대가 있었던 거지만, 더 이상 그런 종류의 가버넌스 구조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종류의 지배구조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최소 인원의 이사회 안에서 굉장히 서로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가는 형태 말입니다. 작은 이사회, 강한 사적 유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한 명, 그런 형식이 유효한 시대는 지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탁월한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끄는 시대는 끝났잖아요. 사회가 점점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의 형태도 예전에는 대학만이 지식 생산에 있어서 전초적인 기지였지만, 이제는 지식이 다앙햔 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요. 앞으로 대학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그런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가진 전문가 집단의 집단적인 지성의 힘으로 운영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리의 세계에 있어서는, 권위라고 하는 것이 직위가 높다고 해서 더 있는 게 아니에요. 권위가 더 있는 사람이 진리를 말하냐 하면, 꼭 그렇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과학자 집단 안에서 내가, 내가 위치가 더 높다는 이유로 젊은 과학자가 내놓은 성과를 부정한다고 하면 과학의 발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전문가의 특성을 서로 존중하는 조직과 전제적인 의사소통은 양립할 수 없는 거죠. 앞으로는 훨씬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그런 합리성이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걸 가로막는 조직은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이대가 이번에 그렇지 못한 조직의 실패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우리가 항상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기회로 좀더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우리한테 상당히 좋은 약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대 학사비리 사태를 포함한 일련의 사건들이 전환점을 맞이했는데, 아까 저랑 처음 인사 나누셨을 때 그 과정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종류의 희생 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이대 사태 같은 경우에도 대중들에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변화를 만들어낸 학생들은 거의 몸으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냈었어요. 90일 동안 처음부터 여론이 학생들한테 호의적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학생들은 본관을 불법적으로 점거한 일종의 폭도 비슷하게 규정이 됐었어요. 학교 본부도 그랬고, 경찰을 불러들였을 때도 학생들을 폭도라고 규정한 의미가 담겨 있었죠. 지금은 우리가, 사회가,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참 잘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과정을 돌아보면, 학생들은 하루하루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겁니다.

그 90일에 대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하지만, 그게 그냥 그 아이들이 모여서 즐겁게 토론하고 했던 그런 시간이 아니라, 정말 자신들이 범법자가 되느냐 아니냐, 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낙인찍힌 인간으로 살아가야 되느냐 아니냐, 라고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었어요. 그런 점에 있어서 학생들이 지금 만들어 놓은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걸고 했던 일이었던 거죠.

저는 요즘도 가끔 생각하는, 그 때 학생들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본관 점거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수들도 지치고, 아이들도 참 힘들어졌죠. 그러면서 이제 너희가 나와야 될 때 아니냐, 너희 출구전략 짜야 될 때 아니냐 하면서 (학교 측이) 자꾸 스트레스를 줬죠. 그런데 그 '출국전략'이라는 말 자체가 기성세대적인 사고방식이잖아요. 내가 나가면 뭘 줄래 하는 방식으로 기성세대는 사고하죠. 딜을 하자는 거 아니에요.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조금 목이 메다가, 곧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얘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나가서, 혹은 여기에 계속 있는다고, 딱히 취할 이득이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총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학생들을 만나러 오겠다고 해놓고 경찰을 불렀어요. 그 학생들이 느꼈을 학교에 대한 배반감, 공권력에 대한 배반감 이런 게 굉장히 컸는데.... 학생들이 거기 있었던 목적은 '대학이 이래서는 안 된다, 대학이 학위장사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는 이화대학은 이런 곳이 아니었다, 총장이 거짓말 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묻고 학교를 바로 세우겠다'는 거였거든요. '자신들이 아는 이화대학의 그 모습으로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러려면 총장님 당신이 물러가 주셔야 되겠습니다' 라는 것이 학생들의 요구였어요.
김혜숙
그러고 나서 얘네들은 흩어지면, 그냥 자기 생활로 돌아가는 평범한 학생이 되는 거죠. 얘네들은 뭘 달라고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요. 학생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순수한 가치였기 때문에, 그 가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나갈 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주 깊이 관여했던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굉장한 경험을 한 거라고 봐요. 자신이 한 명의 시민으로 선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나 자신의 도덕적 주체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순간이 있다는 것을, 90일 동안 경험했거든요. 어떤 교육의 과정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그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얘네들한테 학점 줘야 한다고. 살아있는 공부를 한 거라고. 학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얘기한다지만, 이번에 학생들은 그 교육을 자기 스스로 했어요.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정리하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묻고 토론하고 선택하고 책임지고 끊임없이 자기네 입장을 외부에 알리고 소통하고, 교수들과도 공유하고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거기서 보여준 이 학생들의 성숙한 역량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상당히 주목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아이들이 그 후에 심리적 어려움을 크게 겪고 있어요. '내가 했던 행동이 과연 무엇이었나'에 대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으니까요. 지난 석 달간 상황은 아무 것도 뚜렷하게 바뀌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정리된 게 없어요. 특검에서 계속 수사하고, 이러이러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 건 있죠. 하지만 아직 자기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의 본질이 무엇이었고, 책임이 도대체 정확히 누구한테 있는 거고 이런 것들이 정리된 바가 없어요. 다들 지금 변명하기 급급하고, 아니다 모른다 선을 그으면서.... 재단도 지금 사태에 대해 선을 긋고 있죠. 기득권 세력이라고 하는 곳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이니까, 그런 것들이 학생들한테 좌절스러운 거죠.

(요즘 학교 안 분위기가 그런 게 있나요.)

지금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강의실에서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의 지난 행동에 대해서나 또 (시위에 나섰던 학생) 개개인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그런 경우도 일어나고 있고요. 그러니까 '내가 했던 것이 과연 자랑스러운 행동이었던가...' 그것에 대해 학생들이 자꾸 자문하게 되는 거죠. 내가 한 일이 과연 의미가 있었던가... 의미가 있었다면 그 의미가 자꾸 무화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좌절감이 있는 거죠.     

▶ [취재파일]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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