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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실화 소재 영화 '재심' 속 숨겨진 이야기

'영화화 최초 제안자' 이대욱 기자 인터뷰

[취재파일] 실화 소재 영화 '재심' 속 숨겨진 이야기
일명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아시나요? 2000년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뒤, 이 동네 15살 소년이 범인으로 붙잡혀 10년을 복역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후 경찰 수사과정에서 강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 다른 진범(당시 용의자)까지 나타나면서, 사건발생 16년 만에 재심을 통해 당시 소년의 무죄가 밝혀진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와 지금은 종영된 ‘뉴스추적’, '현장21' 등 SBS의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누명 피해자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 실화가 김태윤 감독, 정우·강하늘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재심'
영화의 제목은 ‘재심’. 김 감독은 누명 피해자 최 모 군과 최 군의 재심 담당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를 모델로 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가공의 인물들까지 더해 극의 흥미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프로덕션 노트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재심’은 실제 약촌오거리 사건을 취재하던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억울한 누명을 쓴 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제작진이 기자에게 영화 제작을 왜 원하는지를 묻자 “재심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어. 사실 형사사건이 재심이 되는 건 극히 드물거든. 하지만 아니잖아. 법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라도 최 군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 최 군은 현실을 살아갈 거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야. 살인범이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어.”라는 기자의 진심 어린 말은 제작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불러내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4년 전 자신이 취재한 사건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처음 제안을 한 이대욱 기자를. 인터뷰이가 같은 회사 동료이다 보니, 이번 인터뷰는 섭외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반면에 당사자가 쑥스럽고 어색해하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이대욱 기자 (SBS 뉴스추적, 2010년)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하게 된 계기가 뭐죠?

2003년 기자생활을 막 시작했을 즈음 군산경찰서에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았다’는 발표를 했어요. 군산경찰은 확신이 있었어요. 믿을 만한 제보가 있었고, 진범과 주변인의 자백도 받았죠. 당시 진범은 자백하면서 죽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수많은 정황들을 얘기했어요. 칼로 찔렀을 때 뼈가 삐걱거리고 피가 얼마나 튀었는지 등등 이런 얘기를 다 한 거죠.

그런데 얼마 뒤 신문 한쪽 면에 지난번 잡혔던 진범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생각했죠. 알고 보니 경찰은 이 정도면 진범을 구속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검찰에서 막은 거예요.

검찰에서는 당혹스러운 거죠. 기존 피고인에 대한 확정판결까지 나온 사건인데 이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까지도 건드리는 문제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진범이라고 잡힌 용의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이 사건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단순 살인사건인데다 검찰이 "진범 검거 발표는 착각이다."라고 브리핑까지 했으니 대부분 더는 관심을 안 가졌죠. 하지만, 이 사건에 사연이 되게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시사프로그램 제작팀에 가면 이 사건을 다뤄봐야지 생각했어요. (참고로 언론사에는 보통 매일 매일의 뉴스를 생산하는 팀과 보다 긴 호흡의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이 구분돼 있습니다.)

그러다 2009년쯤 시사프로그램 제작팀으로 가게 됐고, 이후 이 친구가 10년 형을 살고 나올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 나선 거죠. 2003년 진범이 잡혔을 때 그 지역 시민단체에서 최 군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기억이 있어 지역 시민단체를 통해서 알아보니, 이 친구가 카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취재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쉽지 않았어요. 최 군의 가족과 연락이 돼서 먼저 만났는데 이 친구가 공개된 장소에 나가면 식은땀을 흘리고 또 기자라고 하면 되게 싫어한대요. 그게 왜냐면 진범이 잡혔을 때 지역 기자들이 면회를 가서 곧 풀려날 거라며 인터뷰를 하고, 그걸 본 교도관들까지 “야 너 곧 풀려나겠다!” 했는데, 결국은 안 풀려났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계속 취재에 응하기 싫다고 했는데, 가족을 통해 설득했어요. 한 가족 분이 “평생 이렇게 살인범으로 살 거냐. 믿고 한번 만나봐라" 설득해주셔서 결국 만나 얘기하고, 2-3주 정도 설득을 하니까 얼굴은 다 가리고 자기 일하는 공간도 절대 찾아오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를 응했죠. 그게 2010년이었어요.
박준영 변호사 (SBS 현장21, 2013년)
이제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해진 박준영 변호사와는 어떻게 이 사건을 함께 하게 된 거죠?

취재하면서 최 군의 수사기록을 먼저 확보했어요. 제일 이상한 게 초기부터 5차 진술까지 내용이 너무 심하게 변하는 거죠.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는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이건 경찰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짰다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진술을 바꾸며 소설을 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확신을 갖고 함께 일할 누군가를 찾는데, 박준영 변호사가 맡은 ‘노숙소녀 무죄사건’ 기사를 봤어요.

그래서 전화를 했죠. “변호사님이 이런 사건들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저는 관심이 없는데, 그 사건이 어쩌다 그렇게 된 거에요.”라며 겸연쩍어 하면서도 흔쾌히 같이 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2010년인데, 박 변호사와 함께 하기로 한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첫 방송을 한 2010년부터 두 번째 방송을 한 2013년까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 기자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2010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방송했습니다.)

2010년 방송을 했는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인터뷰 안한다는 걸 제가 그 친구를 설득한 게 “억울함을 풀어주겠다, 최선을 다하겠다.'한 건데,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댓글은 많이 달렸죠. 익산경찰서에 항의전화도 쏟아지고.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그러다가 2012년 이 친구한테 구상권 청구소송이 들어온 거예요. 근로복지공단이 살인사건 피해자인 택시기사 유족이게 지급한 4천만 원에 수감 중에 붙은 이자를 더해 1억 원 넘는 돈을 청구하니까, 이 친구는 미치는 거죠. 그래서 구상권 청구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취재해서 이번엔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재심'
피해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그래서 2013년에 또 방송을 했지만, 이번에도 (수사당국이나 사법부의) 반응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엔 법률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되는데, 사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같은 곳에서 다루는 사건도 아니고 일반 형사사건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지는 건 극히 드문 시대였잖아요. 그래서 재심을 일단 신청은 하지만 만약에 재심이 안 됐을 때는 당사자의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 그러면 차라리 법률적으로 구조를 받지 못하더라도 영화를 통해 누명이라도 벗겨주자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영화감독인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김태윤 감독을 소개받게 됐어요. 2013년도에 만났을 때는 '또 하나의 약속'이라고 삼성 반도체 백혈병 근로자 관련 영화의 후반작업 중이었는데, 얘기를 했더니 바로 자신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과거 방송프로그램에서 수감 3년째인 2003년 복수하겠다고 소리치던 최 군이 정작 출소 뒤엔 원망은 사라졌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최 군은 어떤 사람인가요?

맞아요. 감옥에 있을 때 처음에는 복수 생각이 컸는데, 출소한 직후 제가 만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 친구가 덩치는 엄청 큰데, 제가 “당시 수사했던 경찰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1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려면 용서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상황을 용서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10년 동안 못 살잖아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출소한 직후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나와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서는 많이 힘들어하고 분노하기도 하더라고요.
영화 '재심'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영화 제작을 제안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무죄 선고도 나고 영화도 개봉했어요. 기분이 어때요?

그 친구는 저한테 동생 같거든요. 전화하면 "형님, 형님" 하고. 동생이 고생 되게 많이 했구나,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나 하는 애틋함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이 친구는 무죄 판결 났을 때에도 끝까지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주변사람들은 이 사람인 줄 다 아니까, 이제 어깨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 안 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무죄 판결 났으니까 전 짐에서 벗어났어요.

그리고 또 든 생각은 공권력에 대한 감시가 철저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약점이 보이면, 공권력은 인권이란 가치를 쉽게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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