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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장발장' 잠적…"마음의 문 열기 쉽지 않아"

"꼭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마음의 문을 다 열지 못했나 봐요…" 설 연휴이던 지난달 27일 오후 4시 20분께 부산의 한 마트에서 1천100원짜리 막걸리 한 병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힌 정 모(26) 씨에게 도움의 손길이 잇따랐다.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실직한 뒤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지내며 이틀 동안 수돗물로 허기를 달랬다는 그의 사연은 시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경찰은 쌀과 라면 등 생필품 상자를 건넸고 그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제안과 후원금을 내겠다는 온정어린 전화도 20통 넘게 걸려왔다.

부산 사상구청도 이런 소식을 접하고 정씨의 자활을 돕겠다며 나섰지만 안타까운 소식만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간의 관심이 쏠리자 정씨가 잠적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도 없었기에 그를 찾을 방법이 없어 직원들도 발만 동동 구른다고 전했다.

2015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상구청이 내건 '도움이 필요하세요?' 현수막을 본 A(40)씨가 당시 먼저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요청했다.

구직을 못 해 자살까지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배가 고파 마트에서 물건을 충동적으로 훔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구에서는 이 남성에게 긴급생활비를 지원했고, 폐가를 개조해 살 곳도 제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청 직원이 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사이 A씨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구 직원은 "취직을 강하게 희망했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해 사연도 전하지 않고 모습을 감췄는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 사회와 이웃들이 온정을 베풀고 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온기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는 사례가 잇따른다.

김종건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을 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참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도움을 사회적 안전망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동정으로 받아들이면서 회피하고 숨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불평등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들을 길들였고, 그들은 이런 것들이 학습된 피해자일 뿐"이라면서 "단순히 개인의 자질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마음의 문을 열려면 공동체가 그들을 포용하고 있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사회 관계망 속에 위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성 부산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이들에게 후원이 쏟아지는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이 구조적 문제임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뜻"이라면서 "자신이 사회의 악인 것처럼 그동안 스스로를 고립시켜 온 사람에게 온정을 받아드리라는 것은 그들에게 큰 도전일수밖에 없다. 좀 더 너그럽고, 지속적인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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