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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월, 당신이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2월엔 극장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아주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영화관을 찾는다거나 히어로 액션물 같은 특정 장르를 골라 보시는 분들에게는 볼만한 대작이 없다고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숨 가쁘리 만치 볼만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시간입니다. 이달 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을 노리는 작품들이 이른바 아카데미 특수를 기대하며 2월에 대거 극장에 내걸리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 ‘라라랜드(La La Land)’, ‘라이언(Lion)’, ‘컨택트(Arrival)’,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문라이트(Moonlight)’, ‘핵소 고지(Hacksaw Ridge)’,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펜스(Fences)’ 등 9개 작품 가운데 지난주 개봉한 ‘라이언’과 ‘컨택트’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5편이 2월 개봉을 합니다.

그래서 감히 말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2월 극장에 가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오늘은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가운데 이달 개봉을 앞둔 3편을 소개합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문라이트’, 그리고 ‘핵소 고지’입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나무랄 데 없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Matt Damon)이 제작을 맡고, 유명 배우 벤 애플렉의 동생 케이시 애플렉(Casey Affleck)이 주인공을 연기했습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런 설명은 잘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겁니다. 영화가 그 자체로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야기는 보스톤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주인공 ‘리’의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리는 심장병을 앓던 형이 갑자기 죽자 오래전 떠나온 고향마을을 찾습니다. 그 바닷가 고향마을의 이름이 바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그 곳에서 리는 형이 자신을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패트릭은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때문에 리의 고향마을 체류는 의도치 않게 길어집니다. 결국 리는 오래 전 자신을 도망치게 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좋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의 눈빛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동안 잊을 수가 없는데, 케이시 애플렉이 연기한 리의 눈빛이 바로 그렇습니다. 밀도 높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케네스 로너건(Kenneth Lonergan) 감독의 능력도 발군입니다. 덕분에 상처와 슬픔, 치유에 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는 영화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문라이트

● 의미 있는 예술적 성취, ‘문라이트’

이야기의 시작은 ‘리틀’(Little, 배우 Alex Hibbert). 미국 마이애미 레이크시티에서 마약중독자인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의 이름은 샤이론입니다. 하지만 작은 체구 때문에 이름보다는 ‘리틀’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아이입니다.

이후 ‘샤이론’(Chiron, 배우 Ashton Sanders)이란 소제목이 붙은 청소년기의 이야기와 ‘블랙’(Black, 배우 Trevante Rhodes)이란 소제목의, 성인이 된 뒤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세 명의 서로 다른 배우가 한 인물의 삶을 흐트러짐 없어 유기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감독 베리 젠킨스(Barry Jenkins)의 예민함 덕분입니다.   

가난, 약물, 소외의 환경 속에서 흑인 남성이자 성적 소수자로서 샤이론의 삶은 ‘침묵’이란 외피를 뒤집어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이해할 길 없던 다수의 관객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넘어 공감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 영화의 뛰어난 성취입니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문라이트’에 대해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영화(a film we've been waiting for a very long time)”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난 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내 안에 그런 기다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핵소 고지

● 전쟁 영웅 실화 ‘핵소 고지’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리지만, 역설적이게도 세 영화 가운데 가장 낙관적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오키나와 핵소 고지를 두고 일본군과 맞붙은 전투에서 미군 의무병으로 참여해 혼자서 75명을 구한 실존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도 합니다. (내용상 '양심적 집총거부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영화의 자막상 표현을 준용하겠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 다시 말해 신앙과 애국심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온갖 협박과 조롱 속에서도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영웅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설정은 여느 전쟁영화와 차별성을 지니며, 그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아버지 또한 전쟁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캐릭터와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멜 깁슨(Mel Gibson)의 10년 만의 연출작인 '핵소 고지'는 한 마디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전쟁 영화입니다. 다만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 영웅 이야기에 끌리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신념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어도,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달 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작품상은 어떤 영화가 차지할까요? 이미 국내 개봉해 한국 관객의 사랑도 듬뿍 받은 ‘라라랜드’를 비롯해 이번 취재파일에서 소개한 영화들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수상작에 대한 궁금증은 오는 26일이면 절로 풀리겠지만, 수상 이유가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고 2월 극장에 가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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