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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습지 보전 모범국…"지켜주면 복 받는다, 습지"

[취재파일] 습지 보전 모범국…"지켜주면 복 받는다, 습지"
오늘 2월 2일은 국제습지의 날이다. 습지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 '람사르 협약'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람사르 협약의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The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이다. 1971년 2월 2일 이란 북부 카스피해의 휴양지 람사르에서 채택되었기에 '람사르 협약'이라고 부른다. 주안점은 물새가 사는 공간으로서 습지를 국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28일 101번째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했고, 3년마다 열리는 협약 당사국 총회를 11년 뒤인 2008년 10월 경남 창원으로 끌어들여 개최했다. 총회 개막식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한국이 습지 보전의 모범국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국제사회에 내 건 약속이 내년이면 10년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습지 보전의 모범국이 됐을까?

어제 연합뉴스에서 접한 습지 관련 뉴스 2건은 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하나는 전남 광양시가 마동유원지라는 곳에 ‘음악 따라 춤추는 명품 분수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지만 주변이 도시로 개발되면서 유원지, 공원처럼 바뀌었다. 50m까지 물줄기를 쏘아 올리면서 음악과 함께 안개와 영상도 연출해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함으로써 시민 정서 함양과 관광객 유치, 지역 경제에 도움 될 것으로 광양시는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저수지도 엄연히 습지이건만 사람들이 즐기고 노는 ‘유원지’로 보고 분수대를 넣겠다는 발상은 자연 생태를 무시하는 처사다. 물줄기가 공중으로 치솟고 음악이 소음 수준으로 울려 퍼지는 곳에 사람 아닌 다른 자연의 생명이 가까이 올 리 만무하다. 람사르 협약에서 강조하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과는 거리가 멀다.
 
● 습지를 유원지로? 하수처리장으로?
습지보전모범국 관련 이미지
다른 하나는 멸종 위기 저어새 서식지인 남동공단 유수지에 인천시가 승기하수처리장을 옮겨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에 환경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는 뉴스다. 환경단체들은 인천 민관협의체가 제시한 대로 기존 하수처리장 지하에 필요한 규모로 다시 건설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동유수지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인공섬이 바로 멸종위기종이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봄이면 모여들어 둥지 틀고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장소다. 저어새는 근처 갯벌을 오가며 먹이를 찾았는데 그마저도 메워 송도 신도시를 만드는 바람에 갯벌 습지는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극히 일부만 남은 송도 갯벌을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람사르 습지로 등록했지만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고 습지와 야생조류 보호 활동가들은 혀를 차고 있다. 유수지나마 제대로 남겨두지 않고 하수처리장을 짓는다면 저어새 서식 여건이 더욱 나빠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 두 사례를 통해 습지 보전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식과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습지를 보전하고 관리하는 책임과 의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도록 습지보전법에 못을 박아놓았다. 일찍이 1999년에 당시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의 공동 법률로 제정해서 내륙의 습지는 환경부, 갯벌과 같은 연안 습지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보전 시책을 세워서 시행한다. 광역 지자체인 시, 도지사는 습지보전실천계획을 세워서 시행할 책무가 있다. 그 아래, 기초단체인 시, 군, 구도 각자 습지 보전과 이용에 관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야 한다.

각자 자기 지역의 습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아무래도 기초 지자체인 시, 군, 구다. 지방자치시대인 만큼 시장, 군수, 구청장이 자기 고장 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노력을 쏟느냐에 따라 습지 보전 상황은 달라진다. 여기에 높은 의식과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의 열정, 주민의 이해와 협력이 따라주면 지자체의 습지 보전 역량은 더욱 높아진다.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는 전남 순천시를 꼽을 수 있다

● 습지 보전 노력 보답 받는 순천시…연간 관광객 900만 명, 경제효과 1천2백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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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 그치지 않고 순천시는 지난해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 동천의 하구역 5.4㎢를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받고 람사르 습지로도 등록했다. 동천은 얼핏 여느 지방도시의 그저 그런 하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순천시는 순천만 생태계와 도시- 자연을 연결하는 생태 축 유지에 필요하다고 보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덕분에 동천 둔치는 순천만과 다름없이 갈대 경관이 이어지고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가 물가에 모여 쉰다. 습지 보호지역 내 사유지를 사들여 영구적으로 보전하는 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 환경부로부터 8억5천만 원을 지원받았고 올해는 4억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순천시는 순천만에 인접한 양계장 2곳도 사들일 계획을 추진 중이다. 흑두루미를 비롯해 철새로도 이름난 순천만을 AI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습지 보호지역 주변을 '주변 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습지보전법을 잘 알고 충실히 이행하며 활용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순천만 보전 업무는 ‘순천만 보전과’라는 부서를 두고 관리와 조사, 연구 업무까지 묶어서 체계를 세웠다. 노력한 만큼 성과도 높다. 순천만 탐방객이 2010년에 1,180만 명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해마다 700만에서 900만 명을 유지해 1,200억 원의 경제효과와 700명의 고용을 낳은 효과를 누리고 있다.

● 주남저수지, ‘습지 보호지역’아닌 까닭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를 품고 있는 경남 창원은 순천과는 정반대로 습지 보전에 소극적이다. 주남저수지는 아직 습지 보호지역도 아니고 람사르 습지 등록도 안 돼 있다. 주남저수지 주변 개발에 주민들의 기대가 크고 창원시도 습지로서 의미와 가치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 눈치다. 2008년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를 개최한 도시인만큼 습지 보전에 대한 인식 개선과 노력이 아쉽다.

수도권에서는 환경부가 2006년에 한강하구 습지 보호지역을 지정할 때 김포시가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김포 쪽 한강은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어서 환경부가 한강하구를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려고 추진하다가도 개발 욕구가 높은 김포시와 파주시의 반대에 밀려 손을 놓고 있다. 한강하구의 일부인 장항습지를 가진 고양시는 장항습지만이라도 람사르 습지가 되길 바라고 있다. 습지에 대해 지자체의 생각과 자세는 이토록 차이가 크다. 국립습지센터에서 조사연구팀을 총괄하는 김태규 박사(생태학)는 지자체도 습지 보호 지역 유지와 관리에 책무가 있는 만큼 모든 걸 정부에게 미루지 말고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주민의 이해와 협조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 자연재해 피하려면 습지를 지켜라

올해 세계습지의 날 주제는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습지'(Wetlands, our natural safeguard against disasters)다. 기후변화 시대에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갈수록 빈발하고 극심해지는 만큼 습지 보전은 더욱 중요하다. 갑자기 큰 홍수가 지더라도 습지를 잘 유지하면 넘쳐나는 빗물을 머금어주고, 가물 때는 물 저장고 역할을 한다. 습지의 다양한 생물과 생태계도 기후변화의 정도를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습지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경관도 아름다워 정서 순화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세계습지의 날을 맞아 '습지 보전관리 현재와 미래'라는 주체로 오늘과 내일 전남 곡성에서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책 세미나가 열린다. 국내 습지 보전 사례 발표와 보전 관리에 도움 되는 지혜를 나누는 자리다. 알찬 정보와 자료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도 널리 전파되길 기대한다 <참고: 국립습지센터 www.wetland.go.kr>. 정부 지자체 시민 전문가 구분 없이 습지에 대한 인식을 더욱 높이고 보전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습지 보전의 모범국’은 말만 앞세워선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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