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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전자 사장은 왜 K스포츠재단 현판식에 갔을까?

지난해 1월 18일, K스포츠재단 출범을 알리는 현판식에는 출연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들 중에는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도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재단 출연금은 79억 원으로 출연 기업들 중 가장 많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낸 그룹 관계자가 현판식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이 자리에는 박상진 사장 외에도 현대자동차(43억 원) 사회공헌담당 이사, LG그룹(30억 원) 사회공헌 담당 부사장 등 다른 기업 관계자들도 참석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은 있습니다. 삼성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9억 원은, 삼성생명(30억 원), 삼성화재(29억 원), 제일기획(10억 원), 에스원(10억 원) 등 4개 계열사에서 분담했습니다. 박 사장이 소속된 삼성전자는 출연 기업 명단에 없습니다. 현판식에 참석한 다른 기업은 돈을 출연한 회사의 사회공헌이나 대관 담당 임원이 참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이 계열사를 대표해 참석했을 수도 있습니다.

● "현판식에서 만난 박상진 사장, 날 보더니 얼굴이 사색이 됐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지난 1월 30일 SBS 8시 뉴스에 출연해 현판식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박 사장이 나를 보고 상당히 당황했다"고 밝혔습니다. 박 사장은 왜 노 부장을 보고 놀랐을까요? 배경은 이렇습니다.

2015년 8월 26일, 최순실이 독일에 세운 컨설팅 회사 '코레스포츠'와 삼성은 220억 원 규모의 지원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계약은 독일 현지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습니다. 삼성에서는 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상진 사장, 황성수 전무, 그리고 변호인이 참석했고 코레스포츠 측에서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쿠이퍼스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장, 박승관 변호사가 참석해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2015년 8월 26일 삼성과 코레스포츠 컨설팅 계약 체결 현장 모습. 가운데가 박상진 사장, 오른쪽이 황성수 전무.
그리고 이 장소에 또 한 사람 바로 노승일 부장이 있었습니다. 노 부장은 2015년 8월 11일 독일로 출국해 10월 말까지 코레스포츠 직원으로 최 씨의 일을 도왔습니다. 박 사장과 노 부장이, 삼성이 코레스포츠에 220억을 지원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노 부장은 K스포츠재단 현판식에서 박 사장을 바로 알아봤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박 사장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뵀던 코레스포츠 노승일입니다." 노 부장의 말을 빌리면, 박 사장은 이때 "당황함을 넘어서 얼굴이 사색이 됐다"고 합니다. 노 부장에게 박 사장이 왜 본인을 보고 놀란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전 사실 일부러 인사를 했어요. '저 아시죠?'라는 느낌으로. 그런데 정말 놀라더라고요. 독일에서의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 재단에 와있으니 놀라지 않겠어요? "

● "최순실, '삼성이 노 부장 알아봤다'며 연락해와"…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박 사장과 마주친 후, 노 부장에겐 의아한 일들이 연달아 생겼다고 합니다. 며칠 뒤 고영태 씨가 노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혹시 현판식에서 박상진 사장과 마주쳤나"라고 물었답니다. 최순실이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고 씨를 통해 연락을 해온 겁니다. 재단 현판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고, 재단 내 어떤 직책도 갖고 있지 않으며, 본인 스스로 재단과 무관함을 강조해온 최 씨가 어떻게 현판식에서 박 사장과 노 부장이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지난해 1월 13일 K스포츠재단 현판식.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빨간색 동그라미) 등 기업 관계자와 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노 부장은 고 씨에게 '만났다'고 인정했지만, 최순실에겐 '안 만났다'고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느낌이 왔어요. 박 사장을 만났다고 하면 삼성에서 곤란해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제가 재단에서 잘릴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승마코치이자, 삼성과 최순실 사이에서 자금 지원 매개 역할을 했던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도 노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노 부장은 이 전화는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후 최씨가 직접 노 부장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최순실이 '삼성에서 노 부장을 알아본 것 같다. 행동을 조심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삼성이 곤란해 하니 저를 재단에서 빼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저를 함부로 내보낼 수 없었던 거죠. 밖에 나가서 다 이야기할 것 같으니. "

● "K스포츠재단 실질 운영자는 최순실"…기업은 이미 알았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근 SBS와 인터뷰에서 "최순실과 안종범에게 보고를 하고 사업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재단의 설립과 운영의 가장 윗선은 '청와대, 또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노 부장을 비롯한 재단 직원들도 최 씨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사실상 '재단 회장'으로 모셨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최 씨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상 K스포츠재단은 이제껏 '최순실 재단'이었단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K스포츠재단은 재단 등기가 완료되기도 전에 현판식부터 했습니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10일이 걸리는 재단 설립과정도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발부터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던 이 재단에 굴지의 대기업들이 수십억 원을 출연하고, 등기도 되지 않은 재단 현판식에 참석합니다.

꼬리를 무는 의문을 타고 가다 보면 결국, 기업들이 K스포츠재단이 사실상 최순실 재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출연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자금 모금을 담당했던 전경련 관계자들도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최순실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재단 출연 압박의 무게는 더 컸을 것이고, 대가를 노린 출연 가능성도 커지겠죠.

삼성은 이미 최 씨 개인회사와 수백억 원대 계약을 체결한 전력이 있습니다. 노 부장의 기억이 맞다면, 최 씨와 삼성이 한국에서도 수시로 접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부영의 경우는 재단 출연을 대가로 세무조사 면제 등을 부당 청탁한 정황도 드러난 상황입니다. 기업들을 '강압에 못 이긴 피해자'라고 단정 지어선 안될 이유입니다.

▶ 정동춘 단독 인터뷰…"K재단 설립자는 박 대통령"
▶ 노승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날 보더니 상당히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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