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③ 국정 교과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역사관

[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 ① 사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안보관
- ② 당청 관계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민주주의
- ③ 국정 교과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역사관
- ④ 대한민국 보수주의, 친박(親朴)의 보수주의

이번엔 친박의 역사관을 살펴봅니다. 대푯값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입니다.

사드 배치 문제처럼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 역시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진영 논리로 소비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교과서에 엄청난 의욕을 보였고, 친박은 여기에 적극 동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비박의 시선은 친박과는 결이 달랐고, 심지어 친박 내에서도 나름의 긴장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친박은 얼마나 확고한 역사관을 가졌기에 국정 교과서에 목을 맸던 걸까요.

먼저, 국정 교과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친박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 미적지근했던 황우여…친박의 반발

2015년 10월 8일 국회 교육문화위 국정감사.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야당은 극렬히 반발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는 거냐며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에게 계속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황 부총리가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던 겁니다.

황우여 : 절차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가 그런 상세한 내용을 말씀을 못 드리는 부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국정교과서를 하는 것이 어떠한 의도다, 특정한 의도다, 이런 말씀 하시는데 지금 대통령께서 교육부에 내린 큰 지침으로는 ‘균형 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라’ 이러는 것이고, 그 범위 내에서 우리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2015년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 회의록)

야당 못지않게 부글부글 끓었던 건 친박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황우여 부총리가 국정 교과서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불만이 컸는데, 국정감사 자리에서 결정된 게 없는 것처럼 말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우여 부총리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황우여 부총리는 원래 계파색이 엷은 측에 속했지만, 당 대표로서 18대 대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하면서 친박으로 분류됐습니다. 2014년 5월 비박계 정의화 의원과의 당내 국회의장 경선에서 패한 직후, 박 대통령은 그를 사회부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위로의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랬던 황우여 부총리가 배신했다는 말이 친박계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친박계 A의원 :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 검토하라고 한 게 올해 3월이었어. 그런데 지금까지 깔아뭉갰다고. 황우여는 대통령의 수혜를 입고 꽃길을 걸어왔던 사람이야. 그랬던 황우여가 지금 배신을 하고 있어. 용서가 안 돼.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친박은 결국, 황우여 부총리의 경질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친박 주축 모임안 ‘국가 경쟁력 강화 포럼’이 주최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입니다.

친박계 B의원 : 처음에 올바른 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명제로 본질적 문제를 앞에 내걸고 방법론적으로 검인정 강화냐, 국정화느냐로 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검인정 강화는 좌파의 카르텔 때문에 어려우니 국정화로 가야한다는 전략이 맞았습니다. 특히, 대학교수들이 집필을 거부하겠다고 했을 때 '누가 집필하라고 했느냐', '초록이 동색이고 그런 성향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했어야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결국, 당의 입장에서 교육부의 앞으로 대응 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가 첫 대응을 잘못했으니 황우여 사회부총리를 경질해 갈아 치워야 합니다.
(2015년 10월 국가경쟁력 강화포럼 회의)

친박계에서는 황우여 경질론이 너무 앞서 나간 것 같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 의중이 또 궁금했습니다. 친박계 C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에 연락해 의견을 묻습니다.

친박계 C의원 : 혹시 친박이 너무 나가서 청와대에 누가 된 건 아닌가요?

청와대 비서실 : 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우리도 황우여 부총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속이 탑니다. 일처리도 깔끔하게 못하고. 대체 그 사람은 국정 교과서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우여 부총리도 꽤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친박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하나같이 받질 않았습니다. 친박 의원들과 통화가 안 되자 황 부총리는 이모티콘까지 섞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의원님, 조금 있으면 계속 하래도 그만 둘 건데 자꾸 경질, 경질하지 마세요. 창피해 죽겠습니다^^”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 막판까지 검인정 카드 쥐고 있던 황우여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했던 이들에게 황우여 부총리는 원흉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내막을 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황우여 부총리는 국정화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던 것 같습니다. 여러 해석이 나왔습니다. 친박계 내에서는 이듬해 있을 총선 때문에 황 부총리가 몸을 사린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친박계 D 의원 : 수도권에서 국정 교과서에 대한 거부감이 큰 건 사실이지. 황우여가 인천 연수가 지역구니까 총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거야. 황우여는 당 대표시절에도 대통령 뜻을 알고,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어. 그런데 총선이 가까워오니까 말을 바꾸는 거라고. 황우여는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주면 안 돼. 내가 적극적으로 막을 거야.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정치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황우여 부총리는 당시에도 국정화보다 검인정 강화 카드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황우여 부총리가 국정감사에서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한 사흘 뒤, 새누리당은 당정 협의를 열었습니다. 당시 황 부총리는 당정 협의 비공개 회의에서도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겠다고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새누리당 국정교과서 역사교과서 개선 특위 간사를 맡았던 강은희 당시 의원도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은희 : 대통령 뜻도 있고, 빨리 추진을 해야죠. 일단 오늘 기자 브리핑에서는 당이 정부에 국정화 전환을 공식 요구하는 걸로 브리핑을 해야겠어요.

황우여 : 그건 당에서 알아서 해야겠지만. 파장이 큰 문제라서. 고민이 많습니다.

강은희 :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계시면 안돼요. 할 건 하고 빨리 손을 터셔야죠. 당에서 이렇게 총대 메고 하는 데, 주무 장관이 가만히 계시면 안 됩니다.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실제, 강은희 당시 의원도 당정 협의가 끝나고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황우여 부총리가 막판까지 검인정 강화 카드를 쥐고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기자 : 황우여 부총리는 여전히 국정 교과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가요?

강은희 : 사실 여당 안에서도 검인정 강화가 맞는다는 의견들이 많아요. 황우여 부총리도 그 중 하나죠. 국정화로 밀어붙이는 데 대한 회의가 있어요. 지난 8일 국정 감사 때도 확정된 게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고요.

기자 : 검인정 강화를 하겠다는 거죠?

강은희 : 그렇죠. 일단 검인정을 강화해도 역사 교과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기자 : 경질론은 계속 밀고 가는 거죠?

강은희 : 황우여 부총리도 매우 부담스러울 거예요. 어쨌든 총리를 그만두더라도 이 문제를 마무리 짓고 나와야 하잖아요.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사실 강은희 의원도 이게 쉽지 않은 문제라는 데는 공감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국정 교과서는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황우여 부총리는 주변 측근 의원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교육부는 이미 2014년 초,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 2,250건을 수정해 승인한 바 있습니다. 오류를 수정하면서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 인식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1년 9개월이 지난 뒤, 다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발표하니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자기모순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황 부총리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우여 : 교과서 수정해서 괜찮다고 발표한 게 엊그제인데. 다시 국정화를 하라니까 난감하네. 답답하네.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 황우여의 백기투항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3번째 시정연설에서 국정 교과서 강행 입장을 나타냅니다. 황우여 부총리에 대한 사실상의 압박으로 읽혔습니다.

박근혜 :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입니다.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일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2015년 10월 27일 대통령 시정연설)

대통령까지 압박하고 나선 마당에 황우여 부총리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황 부총리는 대통령 보란 듯 교육부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합니다.

황우여 : 국민 여러분. 국민적 관심사인 국정교과서 개발 추진 현황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반세기만에 민주화 산업화 이뤄내고 세계 최초로 원조 받던 나라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공적 역사에 대하여 올바로 배울 수 있도록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 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앞으로 다음과 같이 정책을 추진해 나갈 예정입니다.

기자 : 부총리 경질론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황우여 : 최근에 우려하시고 열심히 보다 더 일을 해야 한다는 장관에 대한 걱정 잘 압니다. 무겁게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매진하겠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힘들고 많은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당과 정부는 함께 힘을 모아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국민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바람직한 올바른 교과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10월 27일 황우여 부총리 긴급 브리핑)

황우여 부총리는 결국 국정 교과서의 총대를 멨습니다. 친박은 여전히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19대 국회 당시 친박 핵심으로 불렸던 E의원은 기자들과 오찬에서 황우여 부총리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듯 강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기자 : 20대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친박계 E의원 : 공천이고 뭐든 간에 황우여 만나면 전해줘요. 여의도 다시 올 생각 있으면 국정 교과서 배포까지 마치고 오라고. 그 전에는 여의도 올 생각 꿈에도 꾸지 말라고.
(2015년 12월 취재정보 재구성)

황우여 부총리는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 공천에서 탈락했습니다. 황우여 부총리가 내리 4선을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너무 속 보이는 것 같았는지, 당은 황우여 부총리를 인천 서구을에 전략 공천했지만, 사실 이곳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의 당선이 유력했던 곳이었습니다. 황우여 부총리는 신동근 의원에게 패했고, 20대 국회에서 배지를 달지 못했습니다.

● 소신과 당론 사이…고민하는 비박

황우여 부총리는 친박이었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면서 동지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친박이 국정 교과서 이슈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사이, 비박의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건 부담이 컸습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확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교과서 강행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던 날, 한 비박계 의원은 대통령 앞에서 연기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비박계 F의원 : 나는 현재 교과서에 역사 왜곡이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이 편향 문제를 국정 교과서의 방식으로 바로 잡는 게 최선의 방식은 아니라는 거예요. 검정 교과서로 발생한 왜곡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국정화 말고는 없냐는 거죠.

기자 : 그런데 의원님 아까 보니까 본회의장에서 박수 열심히 치던데요?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 이야기할 때요?

비박계 F의원 : 아 그랬나요? 하하. 의원들이 박수를 너무 많이 치더라고. 이명박 대통령 때도 많이 치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때는 더 심하더라고요. 그런 분위기에서 나도 아예 박수 안 치면 찍히지 않겠어? 친박계들이 박수 치나 안 치나 감시하고 있다던데? 총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적당히 친 거예요. 이런 건 기사 쓰지 말아줘요.
(2015년 10월 F의원 오찬 대화 재구성)

국정 교과서 문제의 한복판에 있었던 국회 교육문화위의 비박계 신성범 간사도 국정 교과서 문제가 난감했습니다. 청와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정 과제를 소신대로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대 입장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만난 신 의원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신성범 : 젊은 기자들은 국정 교과서 어떻게 봐요?

기자 : 반대가 많죠. 새누리당 지도부가 당 출입기자 중에 국정 교과서 반대 언론인 서명에 사인한 사람 누군지 파악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신성범 : 여당 안에서도 검정 강화가 맞는다는 사람도 꽤 돼요.

기자 : 야당에서는 내년 예산과 연계하겠다고 말하던데요? 국정 교과서 관련 예산 삭감할 것 같던데.

신성범 : (뜸들이다) 국정 교과서 이슈가 얼마나 갈까요. 확정 고시 할 때까지 싸우고, 그 다음에 집필진 구성 때문에 싸우고. 국정화 예산 못 준다고 싸우고, 돈이랑 필진 겨우 구성해서 교과서 쓸 때 싸우고, 출판하면 대안 교재 만드는 거 가지고 또 싸우고. 결국 계속 싸우다 끝나겠죠?

신 의원은 친박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꽤 궁금한 눈치였습니다. 물론 친박의 분위기는 냉랭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2015년 10월 신성범 의원 오찬 대화 재구성)

비박계는 국정 교과서 이슈를 정부가 아닌 당에서 총대를 메는 모양새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의 브레인이라 불린 비박계 권성동 의원은 황우여 부총리를 따로 만나 당이 손을 땔 수 있도록 요구했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검사 출신의 전략통으로, 국정 교과서 문제가 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황우여 부총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게 낫다는 게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권성동 : 우리도 단추 잘못 꿴 거 다 압니다. 국정 교과서는 우리한테 확실히 불리한 이슈에요. 그러니 교육부가 키를 잡았어야 했어요. 부총리님 지금 의지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당이 밀고 나가는 꼴이 됐죠.

황우여 : 저도 많이 복잡합니다. 당 입장에서도 별로 좋지 않으니 고민이 많아요.

권성동 : 부총리님이 주체적으로 일을 하셔야 되요. 당은 보조에 그쳐야 해요. 오래 가면 갈수록 여당에 불리해요.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친박도 이런 비박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박을 회유하고, 때론 협박했습니다. 친박 핵심 조원진 의원은 비박 정두언 의원을 만나 국정 교과서 문제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도권의 비박 의원들, 정병국, 김용태, 정두언 의원은 사실상 국정 교과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조원진 : 형님, 이번에는 국정 교과서 협조를 해주세요. 죽겠습니다.

정두언 : 야, 너희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우리가 민정당이냐? 다 같은 목소리 내게? 민주주의 근간은 다원성 아니냐?

물론, 정두언 의원도 국정 교과서의 역풍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수도권에서는 국정 교과서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 김무성 "경질 주장 나올 만하지 않습니까?"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하지만, 국정 교과서 사수대 역할을 했던 건 친박 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은 사실상 국정 교과서 전도사가 돼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김 대표였지만 국정 교과서 문제만큼은 달랐습니다.

2015년 10월 15일 국정 교과서를 당론을 채택했던 의원 총회에서는 당시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전희경 원장은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합니다.

전희경 :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에게 가장 중요한 적은 역사와 교육입니다.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 거둘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을 대변하는 역사 교과서입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지금의 역사 교과서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북한에 대해서는 넌지시 편들거나 입장 대변하는 식의 기술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역사 끌고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좌파들이 꼭 우리를 꽁꽁 묶고 있는 이 기계적인 중립에서 빨리 벗어나시기를 꼭 당부 드립니다.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고 고용도 창출하는 역사 교과서 만드는 일에 힘껏 매진해 주십시오.

의원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잘했어! 잘한다! 정말 잘한다! 제일 잘한다! 최근 들은 강의 중에 제일 잘했다!”는 감탄사가 쏟아졌습니다.

김무성 : 여러분, 오늘 우리 이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영웅을 발견했습니다. 전희경 총장! 우리들 마음에 정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집필진 구성원부터 이들이 만든 책 이것이 학생 채택되는 과정이 전부 좌파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정교과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전희경 총장을 국정 교과서의 영웅, 보물로 표현하며 이후에도 계속 추켜세웠습니다.
(2015년 10월 15일 의원총회)

김무성 의원은 친박계가 주장했던 황우여 경질론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황우여 부총리의 10월 27일 ‘백기 기자회견’ 당일 아침, 김무성 의원은 황우여 경질론에 사실상 찬성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기자 : 여당 내부에서도 황우여 부총리에 대한 문책론 내지는 경질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김무성 : 그런 주장이 나올 만하지 않습니까?
(2015년 10월 27일 백브리핑)

하지만, 김무성 의원의 이런 행보에 비박 내부에서도 말이 나왔습니다. 가도 너무 나간다는 겁니다. 한 측근 의원은 김무성 의원에게 조언했지만, 이내 거절을 당했습니다.

비박계 G의원 : 대표님, 국정 교과서는 오래 갈수록 여당한테 불리한 이슈입니다. 민주화 시대에 국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반감이 엄청나요. 보세요. 벌써부터 대통령과 대표님의 자격론까지 불거지잖아요.

김무성 : 됐다. 그만 해라.

G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측근들과 상의를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당에서 총대를 멜 일이 아닌데, 자꾸 나서는 모양새가 당시 대권주자였던 김무성 의원에게도 좋지 않을 거란 정무적 판단이 있었지만, 김무성 의원의 의지는 꽤 견고했던 모양입니다.
(2015년 10월 취재정보 재구성)

● '국정 전도사' 김무성에 대한 친박의 엇갈린 평가

상당수 친박은 김무성 의원의 국정 교과서 협력에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친박계 F의원 : 김무성 의원이 역사 교과서 총대를 멨잖아. 이게 무슨 의미냐, 청와대에서 김무성 체제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거야. 비대위 체제로 치른다는 말도 있지만, 국정 교과서 문제에 김무성이 협조하면서 청와대에서는 충분히 같이 갈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 야당이랑 잘 싸우고 있는데 왜 장수를 바꿔?
(2015년 11월 F의원 오찬 재구성)

하지만, 청와대가 정말 흡족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습니다.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식사자리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뼈있는 말을 던졌습니다.

현기환 : 김무성은 공무원 연금, 국정 교과서 등 각종 개혁에 대해 총대를 메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영혼 없는 목소리로 들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 때 볼까? 양다리 걸쳤잖아? 믿지 못하는 거야, 대통령은.
(2015년 12월 오찬 재구성)

비박계 유승민 의원은 당시 국정 교과서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꺼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 기자들과 오찬에서는 “야당의 맷집만 키워주는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유승민 : 야당이 이렇게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여당은 민주화랑 경제 두 개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근데 왜 역사 교과서를 논제로 끌고 들고 오느냐는 거예요. 때리던 데를 계속 때려야지 여러 군데를 때리면 맷집만 늘고 쓰러지지 않잖아요. 지금 경제 면밀히 짚으면서 야당 공격하면 내년 총선에서 크게 타격 줄 수 있는데.
(2015년 12월 오찬 재구성)

이는 개인의 역사관에 입각한, 철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기술적 접근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이 같은 논리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했던 상당수 비박의 논리이기도 했습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많은 것 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 결국, 친박의 사상은 무엇인가.

새누리당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역사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행 교과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과 이를 제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다룰 것인가, 그 방식의 문제였습니다.

친박은 국정 교과서 논란을 ‘충성 고사’로 활용한 것 같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면 이듬해 당신의 총선에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박근혜에 충성할 수 있는가” 시험대에 올려보겠다는 수단으로 읽혔습니다. 열혈 친박 의원들은 그 시험이 쉬웠겠지만, 대부분 의원들은 어떤 시험보다 어려웠습니다.

충성 고사의 채점자는 친박과 청와대였습니다. 정치적 동지라 믿었던 교육 부총리가 미적대자 경질론을 내세웠습니다. 근거는 단순했습니다. ‘박근혜의 뜻’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친박은 확고한 역사관을 가지고 황 부총리를 논리적으로 굴복시킨 게 아니라, 대통령의 뜻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비박계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국정 교과서 선봉에 서자 친박은 총선에 함께할 수 있는지 평가했습니다. 어떤 친박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고, 또 어떤 친박은 그래도 안 된다며 다른 성적표를 내놨습니다. 친박은 비박계 좌장에게 차기 선거를 맡길 수 있는지 여부를 국정 교과서로 활용했습니다. 친박이 교육의 중대사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다룬 방식이었습니다.

비박은 이 성적표에 기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상당수 비박계가 국정 교과서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전술이라고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는 걸 꺼려하며 피해가거나, 아니면 되레 앞장서는 것이었습니다. 누구 한 명도 역사관과 철학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교육 중대사, 역사 논쟁 한복판에 있던 국정화 논란이었지만 토론에 철학은 없었습니다. 친박은 주범이었지만 비박은 공범이었습니다.

역사관이 없었던 역사관 논란. 친박의 첫 번째 죄는, 자신들의 역사관을 박근혜의 의지와 동일시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를 계파 정치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거였습니다. 여당 내에서 국정 교과서에 대한 반대는 곧 숙청을 의미했습니다.

최순실 사태 이후, 국정 교과서는 다시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충성의 대상이 힘을 못 쓰고 있는 요즘, 충성 고사 성적표는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정화가 안 되면 나라가 망할 거라고 외쳤던 이들이었지만, 지금의 국정화 폐기 움직임에 공개적인 반박도 못한 채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친박(親朴)의 사상(思想)은 박근혜의 의지,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