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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맞벌이' 안하면 결혼 못해요"…미혼 남성들의 절규

아이 낳아도 행복하지 않은 맞벌이 부부의 현실

[취재파일] "'맞벌이' 안하면 결혼 못해요"…미혼 남성들의 절규
승강기 업체에서 근무하는 36살의 이모씨는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자상한 성격으로 누가 봐도 여자친구가 있을 법 했습니다. 하지만 이씨의 답은 의외였습니다. 여자친구와는 1년 전 헤어졌고, 주야 교대근무가 잦아 지금은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의외였던 건 “예쁘지만 현모양처가 꿈인 여성과 외모는 별로지만 전문직인 여성 중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하겠냐?”는 기자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주저함 없이 ‘전문직 여성’이라고 답했습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혼자 벌어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요즘 부부 맞벌이는 대세입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혼남녀의 72.4%가 결혼 후 맞벌이는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맞벌이 선호도는 젊을수록 높아져 25~29세의 경우 80%에 달했고, 30~34세 72.8%로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2천만원 미만의 저소득일수록, 대학원 졸업 이상의 고학력일수록 맞벌이를 희망했습니다.  추측컨대, 소득이 낮으면 그만큼 삶이 팍팍해질테니 맞벌이는 원하는 것으로 보이고, 고학력자는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자신의 경력과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일 겁니다. 여성과 남성의 맞벌이 선호도가 비슷했지만 남성(72.9%)들이 조금 더 높았습니다.

미혼남녀의 맞벌이 욕구는 커지고 있지만, 가사와 육아부담은 여성의 몫이 큽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6 일·가정 양립지표’ 조사를 보면 맞벌이 가구에서 아내의 하루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2014년 3시간14분으로 남편 40분보다 5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이 많은 건 음식 준비 등 가정 관리에 필요한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양육 등 가구원 돌보기는 아내 39분, 남편 14분으로 역시 아내가 3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최근 조사한 맞벌이 부부 조사도 결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내가 가사 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27분으로, 남편 58분보다 3.6배 많았습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가사와 육아의 상당부분을 여성이 떠안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하나 이상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무리일 지 모릅니다. 여성 입장에서는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장이냐 아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남편의 뒷바라지이지만 우리 사회가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를 사실상 용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 가지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남성이 직장을 중도에 휴직하고 육아나 가사를 하는 경우가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전체의 8.5%까지 늘었다고는 하지만 공무원을 제외하면 일반 기업에서는 여전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 이유 때문일 겁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남성의 임금이 여성보다 높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64% 정도로 남성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남편이 용기를 내서 육아휴직을 하더라도 월 육아휴직급여 100만원 남짓으로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듭니다. 또 휴직에 따른 승진 지연 등 인사상 불이익도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수입 손실보다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근로시간은 2015년 연간 2,115시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높습니다.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열심히 회사에 나와서 일해야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남편들이 아내보다 보수가 많다는 이유를 핑계로 가사와 육아를 등한시 한 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 환경에서는 남성들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인 겁니다. 이런 구조는 장기간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모든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습니다.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한 가운데 “열심히 일하지 않고 가정만 챙기는 너, 회사를 떠나라”라고 하면 찍소리 못하고 관둬야하는 게 현실입니다.
저출산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해서 딱히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 힘듭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100조원에 가까운 돈을 퍼부었다고 하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나을수록 생존이 힘들어지고, 경쟁에서 뒤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행복보다는 차라리 낳지 않는 게 아이들한테도 덜 미안하고 ‘우리끼리 잘 살자’는 생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국가의 탈출’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면 지금부터라도 바꿔야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경쟁에 내몰려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을까요? 워킹맘은 가사에 육아까지 떠안으며 직장에서는 차별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워킹맘들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을까요?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 바쳐야 하는 직장문화에서 자녀를 많이 낳고 싶을까요? 저출산 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국가 대개조 수준의 정책을 펴야 합니다.

“아이가 행복하고 엄마가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한 나라”

이런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저출산 탈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도 공염불일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행복이다’라는 소소한 명제를 국민 누구나 느끼게 될 때 저출산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영국에서 ‘행복’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자는 논의가 국가 차원에서 있었습니다. 소득이 많아져도 국민 행복도는 갈수록 떨어지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인데,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행복이 우리 사회에 꽃필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 사회가 모두 나서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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