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1월에 본 전시] 20년 전 '젊은 것'들의 세상

서울시립미술관 'X : 1990년대 한국미술' 전

[1월에 본 전시] 20년 전 '젊은 것'들의 세상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991년 시인 유하가 낸 시집 제목이다. 과거 "배나무숲"으로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동네는 "체제가 만들어 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압구정동'은 그렇게 90년대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박불똥, <압구정동 : 유토피아/디스토피아><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전 출품(1992)" data-captionyn="Y" id="i20101868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129/20101868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90년대 그 압구정동에는 X세대가 있었다.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족한 세대, 정치적 자유에서 더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를 갈망했던 세대. 'X세대(X generation)'이라는 용어는 1991년 더글러스 코플랜드의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65~76년 사이 태어나 부모의 맞벌이나 이혼을 경험하고 자라고, 개인의 가치를 사회의 공동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세대'를 뜻한다.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세대로, 그만큼 활동 영역도 넓어진 세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비문화'에서의 새로운 세대라는 의미로도 쓰여서, 각종 광고에 X세대가 등장하였고(당시 이병헌, 김원준을 모델로 'X세대'를 내세운 남성 화장품 광고가 그 시초이다), '오렌지족'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정치적, 경제적인 변화와 함께 문화도 대변혁기를 맞는 시기였다. 미술계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10년 단위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끊어봤을 때, 70년대 단색화(모노크롬) 시대, 80년대 민중미술의 시대를 거쳐, '이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계를 조망하는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바로 '이후의 시대'에 주목하였다. 정확히는 87년부터 96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함께 개인주의, 다원주의를 맞은 시기, 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충격'을 받기 전의 시기를 조망한 것이다. 

과연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우리 미술계는 어땠을까.

1. 소그룹 

미술계에 이른바 '신세대 소그룹'이 등장하였다. 같은 주제, 동일한 가치를 나누는 조직으로서의 그룹이 아니라, 일시적인 주제를 잡아 그때 그때 모였다 흩어지는 형태의 그룹이었다. 장르도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를 다 포괄하는 형태였다.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느슨한 공동체'로, 오늘날의 콜라보레이션, 콜렉티브의 원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30캐럿' 작가 김미경 '알', <뿌리찾기><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전 출품(1994)" data-captionyn="Y" id="i20101868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129/20101868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전시에서는 당대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몇 그룹을 소개하고 있다. 기존 미술관의 권위와 기성 미술계를 비판하고 나섰던 '뮤지엄'(최정화, 고낙범, 이불 등 참여), 페미니즘 주제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던 여성 그룹 '30캐럿' 등이 있다.  

2. 언더그라운드 문화, 테크놀로지의 활용

카페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인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 학림다방 등이 있었다면, 90년대에는 카페가 등장했다. 심지어 88년에는 '일렉트로닉 카페'라는 첫 인터넷 카페도 홍대 근처에 생겼다. 이 카페에서는 PC통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첫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한창 인기있었던 카페로는 올로올로(91년), 오존(92년), 발전소(92년), 곰팡이(94년) 등이 있다. 
일렉트로닉 카페, 국내 첫 인터넷 카페(1988)
전시에서는 이 공간들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신기했던 건, 20년 전 카페의 인테리어가 오늘날 가장 '힙(hip)'하다는 상수동, 성수동 카페들과 꽤 닮아있다는 것이다. 철골구조와 빈티지한 소품들을 엉성한 듯 세련되게 배치한 인테리어,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의 원조가 90년대 카페였던 것이다. 

20~30대 X세대 예술가들은 이 카페들을 아지트 삼아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이끌었다. 당시 '언더'이고 '마이너'로 활동했던 작가들은 지금은 어느새 '주류'이고 '메이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흥미있는 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던 작가들의 '피 끓던 시절'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불, '수난유감-당신은 내가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알아' 中 (1990)
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뉴욕 MoMA, 구겐하임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도쿄 모리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초청을 하고 있는 이불 작가. 그녀가 '반항아', '여전사' 이미지를 처음 들고 나왔던 90년대 퍼포먼스 '수난유감-당신은 내가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알아'의 영상도 나와 있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 지금 봐도 그 과감함이 충격적이고 놀랍기는 하다. 
이상현, '떠오르는 지구달' (1994)
영화 '거짓말'로 예술이냐, 포르노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상현 작가, 그의 초기작 '떠오르는 지구달'은 엉뚱하고 기발한 젊은 작가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지구가 멸망을 맞았을 때 살아남은 최후의 지구인이 외계인들과 교신을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거대한 설치 작업이다. 1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사실 모형에 불과하고, 작가는 이 작업을 실제로 사막에서 진행하려는 계획도 했다고 한다. 최근 송호준 작가도 개인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어이없으면서도 놀라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작가들의 상상력과 추진력은 범상치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90년대 미술계는 지금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꿈틀'대며 시작되었던 시기인 듯 하다. 압구정동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양극화'가 점점 표면화되고 있었고,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이 자기 주장을 여과없이 표출하며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당시 미술계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누적된 피로나 좌절감을 버릇없고 천박하고 무모해 보이는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요즘 것들은... 쯧쯧쯧"인 것이다. 과연 2010년대 현재의 미술계는 앞으로 20년 뒤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게 될까.

이 전시는 그냥 들어가서 보다보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다. 나올 때쯤에는 '응답하라' TV시리즈를 대충 본 기분만 들 것이다. "볼 게 없다"는 불평을 하고 싶지 않다면, 도슨트 설명을 듣기를 권한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보고 듣다보면 그 흐름을 '어렴풋' 느낄 수 있을 것이다.
X : 1990년대 한국미술
*** SeMA Gold 'X : 1990년대 한국미술'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1층, ~2월 19일까지
- 무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