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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황상기 씨의 희망…반올림이 노숙농성을 하는 이유

아직 어두운 아침 7시, 강원도 속초시에 사는 황상기씨는 오늘도 개인택시 영업을 포기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1955년생, 한국 나이 63세.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공동대표 황상기씨다.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반이라도 올려주자’는 뜻에서 만든 명칭이다.

“1주일이면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하루 숙박을 해야 되고요. 돌아가면서 숙박을 하니까요. 기자회견이나 아니면 큰 시위가 있을 적에 한 번씩 올라가기 때문에 일주일이면 한,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서울에 가서 있어요.”

황상기씨의 딸 황유미씨는 지난 2007년 3월, 24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제 만 10년이 다 됐다. 상고 3학년 20살, 졸업하기도 전에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준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 그리고 1년 8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에 걸렸고, 투병 2년 만에 숨을 거뒀다.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반도체 기판 웨이퍼를 화학약품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을 담당했다고 한다.

황씨는 백혈병과 싸우던 딸과 약속을 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유독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병이 생겼다는 사실을 밝혀주겠다는 약속이다.

황상기씨의 원래 고향은 대전 유성, 땅을 판 돈을 몽땅 잃어버려(속칭 ‘쓰리’를 당했다고 한다.) 무일푼이 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속초로 무작정 떠났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 황씨가 받은 교육은 그것이 전부였다. 먹고살기 위해 배도 타고 갖은 궂은 일을 하다 택시 운전을 배우게 됐다.

백혈병이 무엇인지, 반도체가 무엇인지 몰랐던 황씨는 아무도 시원하게 답해주지 않는 딸의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외로운 싸움을 10년 이상 해오고 있다. 이제는 화학약품을 줄줄 읊어 댄다. 원고도 없이 청산유수로 연설을 하는 대중운동가가 됐다.

2011년 6월 1심에 이어 2014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딸의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까지 7년 3개월, 황상기씨는 딸과의 약속을 지켰지만 아직도 속초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있다.
황상기 씨
“저 하나는 끝났지만, 저 하나 법적인 문제는 끝이 났는데 다른 문제에 대해서 하나도 바뀐 것이 없고,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거든요. 이 반올림에 피해 신고 들어온 사람만 224명이나 되고, 사망자가 78명이나 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삼성은 아직까지 어떠한 그 대답도 안 하고 있고 반올림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거든요. 이제 딸이 죽은 지 10년이 되는 데, 이 문제가 빨리 종식이 되어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저는 꼭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고등법원에서 황유미씨에 대한 산재 인정 판결이 난 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협상을 벌였고, 2015년7월 23일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참여한 제 3자 조정권고안이 발표됐다. 삼성전자가 공익법인에 1천 억 원을 출연하고, 사과와 보상 그리고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측은 그러나 공익법인의 성격이 운영 주체들에 의해 변질될 수 있고, 1천 억 원이라는 출연금액이 더 추가될 수 있다며 권고안과는 별도로 자체 보상위원회를 구성해 피해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접수된 160명의 피해자 가운데 120명에 대한 보상을 완료했으며, 피해자 1명당 수천 만 원에서 최고 5억 6천만 원 까지 보상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보상 내역이나 전체 보상금액은 밝히지 않고 있다.

“저는 삼성에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은 엄청나게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의 이 어떤 주권 그 다음에 노동에 따른 그 침해를 계속 받고 살면서도 어떤 말 한 마디 못 하고, 자기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암에 걸리고 죽고 그래도 자기에 대한 그 억울함을 회사한테 말 한 마디 못 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말 한 마디 못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엄청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 회사에 노동조합이 없으니까 헌법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끔 보장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부에서 이 노동자들의 편을 안 들어주고,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하는 행동도 못 하게 딱 막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자기의 건강권과 자기의 그 생명권을 지킬 수 있는 그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회사와 대화를 해서 충분히 안전하게 자기 일터를 지킬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그 날이 이루어지는 날이 될 때까지 이렇게 하고 다닐 겁니다.“

지난 21일 SBS 뉴스토리,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에서는 10년 이상 대기업이나 행정부, 사법부와 맞서 싸우는 사람 4명을 만났다. 사법정의 구현을 위한 전문가들의 대안도 취재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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