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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겨울 들판을 야생의 쉼터로

[취재파일] 겨울 들판을 야생의 쉼터로

AI 대응에 인간의 배려 양보 필수

박수택 기자

작성 2017.01.22 10:55 수정 2017.01.22 11: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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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여행객이 목적지까지 가는 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교통수단과 숙박 시설이다. 여행 목적이 일이든 휴양이든 상관없다. 특히 여행길에 쉬고 머무는 숙박은 관광여행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자체로 중요한 산업 부문을 이룬다. 숙박 편의를 제공하는 호텔(hotel)은 ‘환대’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Hospitalis에서 나왔다. 그리스인들은 마을에서 나그네들이 따뜻하게 목욕하며 쉬어갈 수 있게 했고. 로마제국은 여행자 숙박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을 국영으로 건설해 운영했다. 영국과 유럽의 중심부 스위스, 중동 지역에 온천을 개발한 것도 로마인들이 처음이었다고 전해온다. 그 뒤 중동에서는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을 위한 쉼터가 생겼고 중세 시대에는 수도원, 수녀원이 성지 순례자와 나그네들을 맞아들였다. 종교 교단들도 나그네가 묵거나 병자를 돌보는 숙소를 만들었다. 외롭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여행길에 이들 쉼터는 집이나 다름없이 안식을 주는 곳이었다.
연천 임진강 빙애여울 ● 나그네길 쉼터, 사람이나 철새나
 
여행은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자연계에도 끊임없이 나그네길이 열린다. 대표적인 것이 철새의 이동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철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체이기에 이동하면서 먹고 쉴 공간이 필요하다. 강 바다 호수 습지 산과 들판이 이들의 쉼터다. 새들은 자신을 해치는 천적으로부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곳을 고른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지혜가 돋보인다. 국제적인 겨울철새 도래지로 이름난 강원도 철원 민통 지역 들판에서 두루미, 재두루미 가족은 비탈진 지형의 계단형 논을 좋아한다. 성가시고 때로는 위험한 사람이나 천적 눈에 띄지 않고 편하게 낙곡 모이를 쪼아 먹을 수 있어서다. 낮에 들판에 흩어져 쉬면서 배를 채운 두루미 무리는 저녁이면 물이 얼지 않은 한탄강 여울이나 DMZ 내부 습지로 날아가 밤을 보낸다. 민통 지역 저수지 얼음 위도 이들의 잠자리가 된다. 시베리아나 중국 몽골의 습지대 평원은 겨울이면 추위가 혹독하다. 비교적 따뜻한 남쪽으로 겨우살이 쉼터를 찾아 나서는 두루미, 기러기를 비롯한 철새들에게 한반도는 중요한 길목이다. 나그네에게 반가운 주막거리 쉼터와 같은 곳이다.
 
● 국내 월동 두루미, 늘어난 까닭은?
 
이번 겨울 국내 주요 철새 도래지에서 예년과 다르게 두루미류가 많이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들이나 지자체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철원 농민들이 DMZ 남쪽 민통지역 논에 볏짚을 썰어 넣어 주고 논에 물을 채웠더니 지난해 12월 초에 4천20 마리가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2월 중순 1,543마리보다 2.6배 늘었다(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팀 조사). 해가 바뀌어 2017년 1월 21일 현재 두루미 700마리, 재두루미는 3,274 마리로(한봉호 교수팀과 지역민 합동 조사모니터링), 지난해 1월 조사 때보다 700-800마리가 더 많다고 최종수 철원생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전한다. 이웃한 경기도 연천 민통 지역 임진강에도 두루미 재두루미가 예년보다 늘었다고 활동가들은 전한다. 1년 전 수자원공사가 임진강 군남댐 수위를 해발 31미터로 높여 여울이 잠기는 바람에 두루미가 쉼터를 잃자 야생 조류 보호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항의했다. 수자원공사가 이번 겨울엔 수위를 25미터로 낮춰 군남댐 상류 빙애여울이 본디 모습을 되찾자 다시 두루미가 모여들었다. 철새 쉼터로서 습지 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고양 장항습지 무논 쉼터 재두루미 ● 한강하구 장항습지 무논은 재두루미 호텔…지속 모니터링은 필수
 
수도권에서도 한강 하구역 고양시의 장항습지 무논에 재두루미가 거의 매일 30에서 50마리가 날아와 밤을 보낸다. 장항습지 무논에 물이 증발하거나 빠지지 않고 계속 일정하게 채워져 있기는 이번 겨울이 처음이다. AI 확산 탓에 고양시가 여러 시민 모임과 모이주기 하려던 계획을 접고 환경보호과 공무원들이 전담해서 위생복 차림으로 매일 장항습지에 들어가 볍씨를 뿌려주고 무논을 관리한다. 최근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모니터링도 한결 수월해졌다. 고양시의 습지 보호 관리 태세가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고양과 이웃 파주, 강 건너 김포의 농경지가 거반 매립돼 재두루미 서식 여건이 나빠지는 바람에 이들 지역의 재두루미는 격감했다. 7년 전 2010년까지만 해도 장항습지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는 100마리 안팎이었지만 지난해엔 30마리로 줄었다. 시민 학생 대상 습지 탐방 프로그램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운영하면서도 정작 철새 도래지 주변에 가림막도 세우지도 않아 철새를 불안하게 한 것도 반성할 부분이다. 지역에 살면서 장항습지 생태를 여러 해 연구한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기반본부장의 지적이다. 철새가 왜 줄거나 느는지, 습지를 훼손하고 철새 생태를 훼방하는 요인은 뭔지, 지속적인 모니터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서산 천수만 무논에서 쉬는 황새_촬영 김신환 ● 서산 천수만 ‘동아시아 황새 친선교류’
 
충남 서산 천수만 간척 농경지와 하천에는 이번 겨울 국제적인 멸종위기종 황새가 지난해 보다 4마리 늘어 24마리가 모였다. 충남 예산 황새마을에서 가락지를 채워 풀어준 황새들(가락지 번호 A08, 04, 37)과 일본 효고현 토요오카에서 키워 내보낸 황새(가락지 번호 J0051)가 천수만 들녘과 해미천에서 어울려 겨울을 보낸다. 일본 황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화포천 습지에서 처음 발견돼 생태보호운동가 도연스님이 ‘봉순이’로 이름을 붙인 황새다. 다른 황새들은 러시아, 중국, 몽골에서 찾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천수만이 ‘동아시아 황새 친선 교류 회의장’인 셈이다. 진객 황새들은 들판 무논에서 열흘에 한 차례 특별식으로 미꾸라지를 맛본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야생조류 보호운동을 이끄는 김신환 선생의 철새 모이 나눔 활동이다. 한번에 16kg, 20만원 어치를 무논에 풀어준다. 흑두루미도 지난 연말까지 700마리로 1년 전 450마리에서 1.5배를 웃돌게 모였다가 추위가 심해지자 전남 순천만으로 대부분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순천의 흑두루미는 1,700마리를 웃돌아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서산도 지난 연말 비가 자주 내린 덕에 들녘에 자연 무논이 생겼고, 천수만 주변 얼지 않는 얕은 하천이 있어서 철새가 쉴 수 있는 덕분이라고 김신환 원장은 말한다.

● 철새 쉼터에 또 대규모 양계단지? 야생의 공간 빼앗는 인간의 욕심

조류인플루엔자 AI 때문에 이름난 철새 도래지에서 탐조 프로그램은 대부분 중단됐다. AI 확산을 철새 탓으로 돌리는 주장도 있지만 비위생적인 축산 환경, 예방과 기민한 사후 대책이 허술한 국내 축산 정책과 업계 관행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 지적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철새 이동 경로가 대부분 우리나라와 겹치는 일본에서는 AI 확산을 막기 위해 차량과 탐조지 주변 소독에 힘을 쏟을 뿐 탐조 활동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수확하고 빈 들판을 겨울만이라도 온전히 야생의 공간으로 남겨두기만 해도 ‘생물다양성’은 절로 높아질 수 있다. 이번 겨울 철원 연천 고양 서산 순천 등지에서 철새가 늘어난 것은 모이터와 잠자리를 잘 지켜준 덕분으로 보인다고 조류생태 전문가 이기섭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평가했다. 대를 이어 살 곳으로 알고 찾아오는 철새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머물다 봄에 다시 북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배려해주는 건 인간의 도리다. 그럼에도 굳이 철새가 모여드는 하천이나 습지 근처, 농지 한가운데에 대규모 양계단지를 세우려는 시도가 여전하고 공공기관이 뒤를 봐 준다는 소식도 들린다. AI가 던진 교훈에도 아랑곳없이 야생의 쉼터를 탐내는 돈벌이 욕심으로 비친다. 축산, 환경 당국이 면밀하게 살펴보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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