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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대 폐지론이 또 등장한 이유는?

서울대 폐지론이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2일 느닷없이 교육개혁 방안으로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박 시장은 “대학 서열화와 교육 파행의 주범이 서울대”라며 서울대를 없애는 대신 국공립대를 통합해 서울대와 동일한 교육서비스를 받도록 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역시 정치의 계절입니다. 서울대 폐지론은 선거철마다 한 번씩 거론되는 단골 메뉴입니다.
서울대학교 정문
극심한 학벌주의를 없애기 위해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1996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서울대의 나라>라는 도발적인 저서를 통해 이슈를 처음 제기했습니다. 강 교수는 “간판 하나로 모든 분야를 독식하려는 서울대 패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서울대 폐지론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폐지론은 사교육과 학벌주의 타파의 상징적인 화두였습니다. 서울대 폐지론의 근거는 고질적인 학벌 문제를 타파하자는 데서 시작합니다. 서울대 등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전 국민이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에 매달려 있고 이것이 결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없애자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폐지는 입시 위주의 교육과 권력화된 ‘학벌’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서울대 제2중앙도서관 '관정관'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서울대를 없앤다고 학벌주의가 사라질까를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합니다.

찬성론자들은 대학 서열화와 줄 세우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부터 없애자고 주장합니다. 프랑스나 독일식의 대학 평준화를 통해 지옥 같은 사교육현실과 학벌의 폐해를 일거에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반대론자들은 서울대를 없앤다고 학벌주의의 병폐가 사라지냐며 반박합니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제2, 제3의 다른 사립대학이 정점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학 간의 엄연한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서열화가 없어지겠냐고 주장합니다. 차라리 경쟁력 있는 지역대학을 집중 육성해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다가 서울대 폐지론은 정치적인 이슈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2004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툭하면 서울대 폐지의 속내를 내비치다가 급기야는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서울대 폐지론을 공론화하기도 했습니다. 민주 노동당은 서울대 폐지를 4.15 총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전교조나 이른바 진보교육감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서울대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2012년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은 '서울대 명칭을 없애고 지방 국립대를 하나로 통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서울대를 없애는 대신 모든 국립대를 연합체제로 묶어 지역 캠퍼스별로 운영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1968년 이후 프랑스의 모든 국립대학을 파리1대학 2대학 3대학 하는 식으로 개편한 것을 사례를 들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는 그랑제꼴이라는 별도의 엘리트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데 이를 쏙 빼고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프랑스식 대학 개편을 예로 든 것입니다. 그 후로도 서울대 폐지론은 선거철 단골 이슈입니다.
 
따지고 보면 서울대를 폐지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는 학별주의 타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를 없애 고질적인 학벌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교육의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모든 불합리와 고질적인 병폐의 상징으로 서울대를 지목하고 있을 뿐 방법론상으로는 현실성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국립대 통합에 따른 막대한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서울대 대신 등장할 제2 제3의 학벌 정점 사립 대학은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해법제시가 없습니다.
 
1990년 말 서울대 폐지론자들은 세계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100위안에 드는 대학이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지 않느냐며 서울대가 국제 경쟁력도 없으면서 모든 병폐의 근원이니 서울대를 없애라고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대는 세계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40위 안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나마 국제적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질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서울대를 향한 따가운 시선은 여전합니다. 서울대가 가진 독점적 지위나 부정적 이미지도 여전합니다. 정작 서울대생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왜 선거철만 때면 온갖 병폐의 정점에 서울대를 두고 서울대 폐지를 거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것도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런 주장을 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서울대는 이미 법인화됐는데도 말입니다.
서울대학교
선거철만 되면 서울대 폐지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결국 표를 염두에 둔 지극히 정치적 계산 때문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지방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편을 갈라 논쟁을 붙이면 결국 더 많은 표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감성에 따라 표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가 누리는 독점적 지위 때문에 발생한 숱한 문제는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가 응축된 결과 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서울대를 없앤다고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으로 고질적인 학벌과 줄 세우기의 병폐를 줄이려면 더 많은 좋은 대학을 육성해 서울대와 경쟁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서울대 수준에 버금가는 카이스트나 포스텍 같은 대학의 발전으로 한국 이공계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한층 올라갔듯이 더 많은 서울대의 육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어느 하나를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서울대 폐지론자들이 예를 드는 프랑스의 대학들은 1968년 대학을 파리 1~13대학으로 개편한 후 하향 평준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대학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져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시대는 바뀌어도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일부 정치인의 교육공약은 그대로입니다. 서울대 폐지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서울대 폐지론은 특정 정파의 선거 전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백년대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왜 없는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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