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는 지역 동호인팀까지 모두 24부 리그까지 있다고 하지만, 4부 리그(리그 투)까지만 프로팀으로 인정받습니다. 5부 리그인 ‘컨퍼런스 내셔널’부터는 사실상 아마추어 취급을 합니다. 따라서 5부 리그 선수들은 대부분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선수로 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의 이력은 다양합니다.
현재 5부 리그인 ‘컨퍼런스 내셔널’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링컨 시티는 2부 리그 팀 입스위치 타운을 꺾고 32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결승골의 주인공은 ‘현직 이발사’인 내이선 아놀드였습니다. 30살의 아놀드는 결승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얼싸안고 거의 울부짖듯 환호해 감동을 전했습니다.
링컨시티가 32강에 오른 건 무려 41년 만입니다. 그런데 41년 전 링컨시티의 돌풍을 일으켰던 전임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가 1주일 전 세상을 떠나 추모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경기 전 선수들은 일제히 묵념을 했고, 관중들은 32강에 처음 진출했던 1975~76 시즌을 기리면서 경기 도중 75분~76분(후반 30분~31분)에 모두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고 영광 재현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링컨시티는 후반 추가시간 드라마를 썼습니다.
● ‘행운의 카드’로 감동을 더한 서튼 유나이티드
런던 남부의 서튼을 연고로 하는 서튼 유나이티드는 5부 리그에서도 15위로 처져 있는 약팀 가운데에서도 약팀입니다. 서튼 유나이티드는 3라운드에서 3부 리그 팀 윔블던을 3대 1로 대파하고 32강에 진출했습니다. 1대 1로 맞선 후반 45분 동점골을 터트렸고, 후반 추가시간 6분 한 골을 더 넣으면서 완승을 거뒀습니다.
서튼 유나이티드는 32강에 오른 팀 가운데 순위가 가장 낮은 팀이 됐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피라미드에서 현재 프리미어리그 1위를 꼭대기로 봤을 때 서튼 유나이티드는 현재 127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 리버풀을 들었다 놓은 4부 리그팀 플리머스
플리머스는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노리고 있는 강호 리버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팀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평가된 이 경기에서 플리머스는 지난 1월 8일 리버풀 원정을 0대 0 무승부로 끝내며 재경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당시 박싱데이의 살인 일정에 지쳐 있던 리버풀은 평균연령 21.3세의 ‘신인급’으로 팀을 구성했다가 제대로 한 방 먹었습니다. 이 경기 무승부 이후 리버풀은 리그컵에서 사우스햄튼에게 1대 0으로 패해 큰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리버풀은 지난 주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대 1로 비기면서 2017년 들어 4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플리머스’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겁니다.
플리머스는 재경기에서 주전 공격수들을 투입한 리버풀에게 1대 0으로 패하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후반 30분 그림같은 가위차기가 골대를 맞지만 않았어도 또 한 번의 이변도 기대해 볼만한 경기였습니다. 비록 졌지만, 플리머스는 엄청난 부수입을 얻었습니다.
안방에서 재경기를 치르면서 홈팬들이 경기장을 가득메웠고, 경기가 열리는 날 밤 경기장 주변 건물들은 플리머스의 상징색인 ‘녹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리버풀전 두 경기로 플리머스는 100만 파운드, 우리 돈 14억 4천만원을 벌어들였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