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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취재파일]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기레기’란 말을 아시나요? ‘기자’란 직업을 가진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 표현을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 또한 온라인에서 여러 차례 봤고, 그 쓰임새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직업은 왜 이런 불명예를 얻게 됐을까요?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하나의 현상에서 다양한 원인을 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여기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선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입니다.

“2008년 YTN의 신임 사장으로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의 언론 특보였던 구본홍 씨가 내정된다. 그러자 YTN 구성원들은 구본홍 씨를 정치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으로 규정하고 격렬하게 저항한다. 이후 MBC에서도 낙하산 사장 반대 및 공정방송 쟁취 투쟁이 전개되고 투쟁과정에서 20여 명의 언론인들이 해직된다. 그 사이 언론인들에겐 ‘기레기’라는 별명이 주어진다.”

영화는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현재의 ‘촛불 정국’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냐?”고 따져 묻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만들어 내미는 것 같습니다. 여기 이토록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여온 이들이 있다고.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영화는 YTN과 MBC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됐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YTN 해직 기자들의 대법원 상고심이 열린 2014년 말까지를 담았습니다. 해당 언론사들에서 파업이 벌어질 당시 내부 기록용으로 혹은 급작스레 촬영된 듯한 영상들이 울퉁불퉁 거친 이음새를 만들고, 그 틈새마다에는 당사자들의 현재 시점 인터뷰가 아교처럼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를 너무 쉽게 만든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 무렵, 감독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습니다. 다큐멘터리PD 출신인 김진혁 씨는 언론인들의 파업 당시 영상을 다시 살펴보며, 해직 언론인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느냐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난 싸움 당시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관객들에게 더 호소력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관객 분들이 마치 그 시점에, 절규하는 시점에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휴먼 다큐에서 약간 역사 다큐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설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해직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다큐인 동시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해직 언론인 양산 비화를 다룬 역사 다큐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전국언론노조 통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명 넘는 언론인이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2008년 YTN에서 6명의 기자가 해고되자 관련 보도에는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된 건 지난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사태 이후 처음”이란 설명이 붙었지만, 2012년 MBC에서 몇 달 간격을 두고 또다시 6명의 기자와 PD들이 해고됐을 때는 관련 기사들에서 뜻밖이란 뉘앙스조차 더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밖에도 국민일보에서 3명이, 부산일보에서 2명이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싸우다 일터에서 쫓겨났다고 언론노조 측은 밝혔습니다. 그리고 대다수는 여전히 취재현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영화의 제목은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사실 ‘7년-그들이 거기에 있었다’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없는 언론’은 굳이 따로 보여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모두가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우리 언론의 문제를 ‘그들이 없기 때문’으로 간단히 치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도 서로 다를 뿐더러,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훨씬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하는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없는 언론’ 현실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공감할 만한 답이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신념을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건 그들의 주장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일 때는 물론이고 소수의 의견일 때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사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거하고 난 뒤 평화로움을 가장한 침묵에 휩싸인 언론사는 그 자체로 위험한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언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침묵을 강요받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공무원을 정당한 사유 없이 말 한마디로 쫓아내고 문화계 인사들을 길들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정부 아래서 많은 이들이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방법은 갈수록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되어갔고, 그 피해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말합니다. 그 7년의 시간이 한국 언론, 언론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넘어 관객 한 명 한 명 당신의 삶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극장에서 일반 관객들과 만나는 또 다른 의미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진출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 제공: 인디플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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