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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걸었는데"…美 이민 우대 정책폐기에 쿠바 이민자 '망연자실'

가브리엘 마린(24)과 그의 아내 얀시엘은 3개월 전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고향인 쿠바 동부를 떠났다.

부부는 고생 끝에 중미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 있는 이민자 쉼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쿠바 이민정책을 즉각 폐지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서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국이 관대한 쿠바 이민정책을 폐지하면서 미국으로 향하던 수백 명의 쿠바인이 멕시코와 중미 국가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난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AP 통신 등이 13일(현지시간)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전날 미국 땅에 들어온 쿠바인들을 비자 없이도 합법적인 주민이 되게 해주는 이른바 '젖은 발, 마른 발(wet foot, dry foot)' 정책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금까지 미국으로 들어오려다 해상에서 붙잡힌 쿠바인은 돌려보내되,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민자에게는 무상으로 주택을 주고 합법적인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젖은 발, 마른 발' 정책은 1995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 의해 더욱 개방적인 이민정책의 변형된 형태로 도입됐다.

가산을 다 정리한 채 미국으로 향하던 쿠바인들은 전날 발표된 미국의 쿠바인 이민정책 변경 소식을 듣고 낙심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마린 부부는 전날 파나마시티 소재 카리타스 이민자 쉼터에서 53명의 다른 쿠바인과 이 소식을 접했다.

베네수엘라 축구팀 셔츠를 입은 요리사 마린은 "전날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면서 "생명은 물론 모든 것을 걸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어떤 조처를 할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미-쿠바 관계 개선에 따라 단행된 이번 조치를 다시 되돌리기를 기대했다.

파나마시티 카리타스 이민자 쉼터에 모인 이들은 쿠바를 떠난 뒤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가이아나 등지서부터 이곳까지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동 경비로 쓰려고 재산을 다 처분하고 이민 길에 올랐지만, 경유국 경찰이나 브로커들에게 돈을 뜯기거나 성폭행 등 인권을 유린당하는 수모를 감내했다.

지난해 9월 어머니, 딸과 함께 쿠바를 떠난 얀시스 디아스(26)는 쿠바로 송환될 경우에 대해 "우리는 쿠바에서 살면서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쿠바로 되돌아가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야 한다"며 절망감에 젖어 벽을 두들겼다.

현재 온두라스에서는 쿠바 이민자 75명이 멕-미 국경 근처로 이동을 대기하고 있으며 파나마에 체류 중인 이들도 같은 처지다.

미 국토안보부 통계를 보면 2012년 10월 이후 11만8천 명 이상의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특히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에 가속도가 붙은 2016 회계연도(작년 9월 만료)에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은 4만1천500여 명의 쿠바 이민자가 남쪽 국경을 통해 유입됐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인에게 적용되던 미국 이민 특혜가 없어질 것을 우려한 쿠바인들이 앞다퉈 미국행에 나서면서 경유지의 중미 국가들이 갈등을 겪기도 했다.

좌파 정부가 집권한 니카라과는 2015년 쿠바 사회주의 정권과의 연대 차원에서 국경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쿠바 이민자들이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에 발이 묶였다.

당시 몰려드는 쿠바 이민자들을 감당하지 못한 코스타리카는 더는 이민자들을 받지 않고 본국에 송환하겠다고 밝혔지만, 멕시코와 다른 중미 국가들과 협의 끝에 항공편을 통해 니카라과를 거치지 않고 멕시코 등지로 수송하는 데 합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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