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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中 군용기 방공식별구역 침범 논란, 사실은?

[취재파일] 中 군용기 방공식별구역 침범 논란, 사실은?

지난 9일 중국 군용기 10여 대가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중국이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처럼 인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군용기의 한일 방공식별구역 침범은 앞으로도 계속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열을 올리고 분개할 게 아니라, 좀 더 냉정하게 팩트에 기반해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안을 대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국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 중국 군용기, 한국 방공식별구역 침범했나?

중국 군용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진입'이라는 단어가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군에서도 '침범'이라는 단어는 안 쓰고 '진입'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 이유는 방공식별구역은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영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적으로 권리를 인정받는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너 왜 우리 구역에 침범했어?" 라고 말하기가 애매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설정해놓은 구역에서 중국 군용기가 무력시위를 벌인 상황의 엄중함은 자명하기 때문에 이런 엄중함을 보다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수의 언론에서 '침범'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방공식별구역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영공 방위를 위해 영공 외곽 공해 상공에 설정되는 공중구역으로 자국 공군이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으로 설정하여 선포한다. 영공이 아니므로, 외국 군용기의 무단 비행이 금지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면 퇴각을 요청하거나 격추할 수 있다고 국제사회에 선포해 놓은 구역이다. 현재 20여 개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있으며, 러시아 등은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 중국도 침범 인정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이어도 근방 방공식별구역은 우리만의 방공식별구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당 지역은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중첩지역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구역을 침범했다고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들의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한 것입니다. 일본 자위대 전투기가 이 지역을 비행해도 일본 입장에서는 일본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한 것입니다.

물론 중국 군용기가 대한해협을 관통해 동해를 왕복 비행하는 과정에서 한일 2개국의 방공식별구역 중첩 구역, 더 나아가 일본만의 방공식별구역을 사전 통보도 없이 비행한 건 당연히 문제가 있습니다. 타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상대국에게 미리 통보해주는 게 국제적인 관례입니다. 이번에는 중국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한국 공군과 일본 자위대 전투기 수십 대가 긴급 출격해 대응비행을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물론 중국은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거의 사전 통보 없이 비행했습니다.

3. 중국 입장에선 한국도 중국 방공식별구역 침범?
위 2번 설명에 이미 답이 있지만, 다시 한번 부연 설명하자면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도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꼴입니다. 3개 나라가 중첩돼 있으니 각자 입장만 놓고 보면 다른 2개 나라가 내 구역을 침범하는 꼴이 됩니다. 우리 공군과 해군 P-3C 초계기도 해당 중첩구역을 수시로 초계비행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방공식별구역 침범' 논란이 일자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이런 보도를 했습니다.

[환구시보]
"이어도는 한·중 양국의 영토 분쟁 문제가 아닌 EEZ의 중첩된 구역이자 방공식별구역이 겹친 지대이다. 일본과 한국 등 다른 나라의 전투기들이 중국의 동중국해 ADIZ에 들어온 적이 많지만 중국은 참아왔다"


4. 논란의 발단은 2013년 중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현재 이어도 근방의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중첩 구역이 생겨난 건 지난 2013년 말입니다. 중국이 갑자기 이어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고 우리도 이에 대응해 제주도 남방까지였던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 남단까지 확대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한중일 3국의 중첩구역이 생겨난 겁니다.
논란의 발단은 2013년 중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라는 일종의 도발이 발단이 되면서 해당 구역은 민감한 지역이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3국의 중첩구역이 어차피 생겨난 만큼 비행계획을 사전 통보하는 등의 최소한의 국제적 관례만 제대로 지켜졌어도 이번처럼 한일 전투기가 비상 출격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군 관계자는 "일본과는 사전 협조가 잘 되고 있어 문제가 없지만 중국과는 서로 사전 통보해주는 절차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때문에 우리도 이 구역을 비행할 때 중국에 사전 통보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군은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해당 구역에 대한 통상적인 초계비행 외에 상대국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도 사전 통보는 아니더라도 상대국을 자극하는 행동은 삼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만의 희망 사항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작년 수십 차례를 비롯해 이전에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침범 행위는 계속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략폭격기 6대를 포함해 군용기 10여 대를 집단으로 비행시킨 적은 없습니다. 상대국을 자극하는 명백한 군사적 위협입니다. 주변국의 반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같은 행위는 계속될 겁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의 세력 확장과 더 나아가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 심화에 대한 불만 표출과 무력시위는 계속될 거라는 게 중론입니다.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앞으로 비슷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현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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