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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인도 진실게임 ② "누가 맞고 누가 틀린가"

[취재파일] 미인도 진실게임 ② "누가 맞고 누가 틀린가"
미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면, 꼭 이 질문이 나온다.

"천경자 미인도는 진짜요? 가짜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모른다. 

1991년 '미인도' 포스터를 처음 본 작가는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도 있느냐"며 "내 작품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당시 미술계에서 내로라했던 전문가들은 '천경자 작품'이라고 했고, "작가가 모르는 작품도 있다"고 했다.

25년 뒤, 똑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작가의 둘째 딸이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미인도는 위작"이라 주장하며 '진품'이라고 한 사람들을 고소했다.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둘째 딸은 친자확인 소송까지 거쳤다. 그런데, 거의 7달 동안 수사를 펼친 검찰의 결론은 '진품'이라는 것이었다.

고소를 제기한 유족 측은 다음 날부터 반박 공세를 펼쳤고, 급기야 이번 수사 과정에서 감정을 실시했던 프랑스 업체를 불러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이후 프랑스 감정업체는 "검찰은 우리 감정결과를 왜곡했다"며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 프랑스 언론을 불러 현지 기자회견을 또 열었다. 검찰은 뤼미에르의 진위 계산식을 진품임이 확실한 '수녀 테레사' 같은 작품에 대입했더니 '진품 가능성 4%'에 불과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뤼미에르는 이에 대해, 검찰의 계산 공식을 '미인도'에 적용하면 '진품 가능성 0.0000000006%'로 엄청나게 떨어진다며, 이는 검찰이 구미에 맞게 수치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반박 자료를 내거나, 반박 기자회견을 열지는 않고 있지만, 관련자들에게 검찰의 의견을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 한국 최고 수사기관과 최고임을 자부하는 프랑스 감정업체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진 양상이다.

작가는 영원히 잠들었고 , 진위 논란은 거세지기만 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이 나면 반대편은 수긍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진실'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 우스갯 소리지만, '신의 영역'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품이라 주장하는 쪽은 왜 진품이라 하는 것이고, 위작이라 주장하는 쪽은 왜 그러는 걸까? 팽팽히 맞서고 있는 주장의 이유와 근거는 무엇일까?
천경자 화백 미인도
1. "'미인도'는 위작이다"

1) 작가의 의견

 
생전 천경자 화백은 딱 부러지게 '위작'이라고 밝혔다. 감정위원들이 나서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고, 논란이 점점 커지자 '절필'까지 선언하며 한국 땅을 떴다. 그만큼 '아니'라는 확신이 강했다는 것이다. 생전 천 화백을 알고 지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 화백은 맺고 끊음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자기 삶과 같은 그림까지 "끊겠다"고 했겠냐며 "작가 자신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작가의 의견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착각을 하거나, 소장자와의 갈등 등으로 '진품'을 '위작'이라고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작가의 말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쓰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작가의 말이 너무 쉽게 '묵살'되었다는 게 '위작 주장자'들의 의견이다. 적어도, 작가 생전에 진위 여부에 대해 좀 더 정밀히 들여다 보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2) "작가의 '필체' 아냐"

어떤 작가의 그림이 유명해지거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작가만의 개성과 필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동양화에 기반을 두었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기법을 담은 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자신의 삶의 흔적을 담아낸 듯한 터치, 붓의 리듬감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익대 동양학과에서 천경자를 사사한 제자 중 한 명을 만났다. 누구보다 천 화백의 그림을 잘 안다는 작가였다. 그는 신문에 인쇄된 '미인도'를 보자마자 신문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왜? "우리 선생님 작품이 아니니까"라고 말한다. 천 화백이 평소 그리는 머리카락 모양도 아니고, 붓 터치도 느낌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미술 감정 최고 권위자라고 하는 분의 의견도 비슷하다. "미인도의 리듬감은 여느 천 화백의 작품과 다르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지니고 있는 호흡은 위작자가 결코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이건 '그림을 좀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단다. 게다가 미인도는 여인과 나비, 꽃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작가라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 다른 작품에 그린 요소들을 '조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검찰은 천 화백이 이전에 그렸던 '차녀 스케치'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미인도를 그렸다며, '진품'이라고 주장하였다.)

작품 진위 여부 감정에서는 재료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천 화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천 화백은 전주에서 만든 화선지, 일본 교토의 5대째 이어온 재료상 물감만을 사용한다. 일본 물감상에만 가져가 봐도 진위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천 화백의 그림이 '동양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진채화'인 만큼, 프랑스 감정업체 대신 동양화에 익숙한 일본 감정업체에 감정을 맡기는 게 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3) 과학적·수학적인 결론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주장이다. 특수 카메라로 그림을 1650개 단층으로 쪼개어 각각의 단층을 광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이 내용은 '미인도 진실게임 ①'에서 언급한 바 있다).  육안이나 X레이로 볼 수 없는 단층까지 분석 가능한 기술, 즉 현대 과학이 발전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며 프랑스 감정업체는 자신있어 한다.  

2. "'미인도'는 진품이다"

1) 소장 이력이 분명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미술계를 떠돌았던 '카더라 통신'을 확인해주었다. 미인도의 소장 이력을 밝힌 것이다. 1976년 안기부 대구분실장인 오 모씨가 천경자 작가에게 그림 2점을 받아 1977~1978년 오 실장의 부인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 부인에게 '선물'로 건넸다. 이후 미인도는 김재규의 보문동 자택 거실에 걸리게 된다. 김재규 자택 거실에서 이 그림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 시해범으로 체포되면서 그의 재산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넘어가게 된다(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나비와 여인'이었는데, 당시 수사관이 기록을 하면서 '미인도'라고 적어 '미인도'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림의 진위 여부를 판정할 때는 소장 이력도 꽤 중요하다. 실제로 해외 유수 미술관의 소장품 도록을 보면, 한 작품의 소장이력만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나와있는 경우가 있다.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검찰이 미인도의 소장이력을 밝힌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동안 천 화백이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위작임을 주장했던 이유도 '국사범'의 집에서 자신의 작품이 나온 데 대한 심리적 압박감일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김재규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해서 '진품'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김재규가 선물받은 위작을 진품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테고, 혹은 위작인 줄 알면서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김재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진실은 무엇인지 더이상 물을 수 없게 되었다.   

2) 과학적인 결론

검찰도 뤼미에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수사'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국과수, 카이스트와 함께 X선, 적외선, 투과광사진, 3D촬영, 디지털 영상분석, DNA분석, 필적감정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했다고 한다. 이 결과, 다른 진품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인도에서도 '석채'가 사용되었다, '두터운 덧칠'이 확인되었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않은 압인선이 존재한다, 그림 밑층에 다른 그림이 존재한다 등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아쉽게도 미인도에서 추출한 유전물질이 손상되어 DNA 분석은 불가하였다. 하지만, 뤼미에르는 검찰이 했다고 하는 이 모든 수사 방식을 이른바 '구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스케치의 유사성'을 근거로 든 데 대해서는, 과학감정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하였다. 위작자도 스케치는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다는 게 이유이다. 
미인도 진실게임 관련 사진
3) 100명에 달하는 관련자의 증언

검찰이 '진품' 확신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무려 100명에 달하는 관련자를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술계 전문가, 천경자 화백의 제자, 위작자(라고 주장하는 권 모씨), 화랑 관계자 등등... 검찰이 소집한 감정단 9명 중 다수 의견이 '진품'이었고, 위작자라고 주장했던 권 모씨는 미인도 원본을 확인한 뒤 "내가 그린 게 아니다"라며 "나는 흉내낼 수 없는 수작"이라 진술했다고 한다. 천 화백이 작품 표구를 맡긴다는 D화랑 대표도 "내가 직접 표구했다"고 말하였다. 뤼미에르 수학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국내 수학자, 통계학자들의 자문도 구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말한다. 25년을 끌어온 진위 논란은 어차피 이렇게 몇 달 안에 뚝딱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열린 공론화'라고 말이다. 실제로 영국 경매사 소더비에서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얀 베르메르의 작품의 진위 논란이 벌어졌을 때, 안료와 캔버스 분석, 공론화 과정을 무려 11년을 거친 끝에 '위작'의 오명을 벗고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과학적 분석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시국도 불안정한데,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데, 뭐가 중요해서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도대체 진품이면 누구에게, 위작이면 누구에게 어떤 이득이 있기에 이렇게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물론, 진위 여부 결정에 따라 어떤 이는 망신을 당하거나, 명예를 잃을 것이고, 어떤 이는 경제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미술계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항상 미술은 '진위 논란', '최고가 낙찰', '로비'라는 살짝 어두운 측면만 조명받는 경향이 있다. 이번 천 화백의 진위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위 여부를 확실히 가리고, 그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양쪽 주장자 모두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당장의 나의 명예, 나의 부의 손실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의 우리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 [취재파일] '미인도' 진실게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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