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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군의 갑질?…고속단정 만들어 놓고도 납품 제때 못한 이유는? ①

[취재파일] 해군의 갑질?…고속단정 만들어 놓고도 납품 제때 못한 이유는? ①
▲ 해군 특수전용 고속단정
 
해군 특수전용 고속단정입니다. 전장(배 길이) 14m, 시속 40노트 이상에 파고 3.5미터 이상에서도 운항할 수 있는 기동력 뛰어난 해군 전력입니다. 한 대에 15명이 탈 수 있습니다.

이 고속단정은 부산의 한 강소기업이 지난 2015년 6월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해군 본부와 2015년 12월 10일까지 3대를 납품토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금액은 23억여 원입니다. 지난해 5월 중순 해상 시운전을 마치고 지난해 8월 말까지 국방기술품질원으로부터 각종 성능검사와 3.5m 이상의 파도 속에서도 운항할 수 있는 내파성 시험을 모두 거쳤습니다.
내파성 검사 실험
그런데 1년 이상 납품 기한을 넘긴 끝에 지난해 12월 19일 겨우 납품을 하게 됐습니다. 납품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만 13억 원 넘게 물어야 할 판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 해군에서 납품 거부…“기존 업체의 기술교범 복제, 지식재산권 침해” 이유
기술교범 표지
발주처인 해군에서 납품을 거부해 왔습니다. 이유는 전문가들의 자문과 심의 결과 “기존 최초 개발업체의 기술교범과 비교해 90% 이상 비슷한 복제품에 가깝다”는 겁니다. 따라서 “기존 업체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분쟁 가능성이 있어 납품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해군은 또 수차례 납품업체인 (주) 화인에 기술 교범을 수정토록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수전용 고속단정 사업은 지난 2007~2008년 북한의 반잠수정 침투 대응과 특수전 요원 해상침투 지원 임무를 위해 시작된 시업입니다. 해군은 업체 개발 방식으로 하기로 하고 첫 기술 개발업체에 대해 그 보상으로 5년 간 수의계약으로 해군에 납품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W사에서 2009년~2014년까지 총 20척을 납품했습니다. 납품 금액은 173억 원에 이릅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5년 처음으로 공개경쟁 입찰을 하게 되어 W사와 화인 등 2개 업체가 참여해 화인이 최종 낙찰 받게 된 겁니다.
 
해군은 수의계약이 끝남에 따라 W사로부터 고속단정과 함께 국방규격 즉 기술도면과 기술교범 등을 모두 넘겨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소유권은 해군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해군은 기술교범의 소유권이 해군에 있긴 하지만 지적 재산권은 개발업체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소유권과 지적재산권은 별개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군은 화인이 제작한 기술교범의 감수를 반려하고 전면 재작성토록 하는 한편 납품을 거부했습니다.
 
● 화인 측 “기술교범의 소유권자는 해군. 지적재산권 대상 아니다” 주장

기술교범은 특수전용 고속단정의 운용과 정비 보급에 필요한 절차를 기술하고 있는 일종의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인 측 자료
화인측은 이 기술교범이 기업의 주관적 판단이나 상업적 용도에 따라 제작한 것이 아닌 해군의 규정에 따라 설계되고 건조된 선박에 대하여 해군이 규정하는 운용 및 정비 지침을 기술한 것으로 특정인 또는 특정 기업의 독점 배타적인 재산으로서 취급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이 기술교범의 소유권 주체는 발주처인 해군에 있고 따라서 지적재산권은 소유권자인 해군에 귀속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인측은 이 기술교범이 지식재산권에 해당된다면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제 114조(연구개발성과물의 소유권) “전력지원체계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 저작물, 기술자료 등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국가소유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지적재산권은 국가 소유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만약 최초 기술교범 제작 업체에서 지식재산권 소유를 주장한다면 관련 업체와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해군이 뒤늦게 직접 나서 지식재산권 문제로 아예 납품 거부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주장했습니다.
 
회인측은 또 기술교범은 최초 연구개발이 아닌 양산품으로 기존의 양산품과 동일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원칙적으로 최신화하는 내용 이외에는 다르게 기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기존의 기술교범을 바탕으로 최신화 된 변경 내용만 수정하여 제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해군측이 주장하는 90% 이상 복제품이란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 관련 전문가는 “해군이 억지 주장, 기술교범은 지적 보호대상 아냐” 판정
특수전용 고속단정 시험 테스트 장면
관련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특허법인 피알씨 부산경남지사 신정건 변리사는 “저작권법의 규정 및 판결례를 검토해 본 결과 특수전용 고속단정에 대한 기술교범들은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를 받는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으며 (주) 화인이 제작한 기술교범은 원 기술교범 제작자에 대한 저작권에 저촉되지도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신 변리사는 “기술교범은 국방규격서 발간 지침에 의해 작성된 해군의 준통제 교범”으로 “저작권으로서 보호할 만한 작성자의 개성이나 창조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저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해군의 규정에 따라 설계되고 건조된 선박에 대한 운용 및 정비 지침서이기 때문에 화인의 기술교범이 기존 교범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여도 이는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너스 특허법률사무소 김성현 변리사는 “저작물의 소유권 개념은 실질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의미한다”며 “이 경우 발주처인 해군이 소유권과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대신 교범을 만든 업체에 적절한 보상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변리사는 “설사 분쟁이 생기더라도 해군이 납품을 먼저 받아주고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하든 저작권료를 주든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군 관계자도 초기 연구 개발업체에 보상의 대가로 5년간 수의계약으로 독점적 보상을 해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도 “기술교범의 소유권이 해군에 있으면 당연히 기술교범의 지식재산권도 해군에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해군이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 고속단정인데 기술교범이 달라질 수 있느냐. 같은 국방 규격에 따라 만드는 건데 90% 이상 똑같아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문했습니다.

● 기술교범 국방규격서…“수정 사안만 변경 기술하면 돼” 명시
기술교범 국방규격서 서류
실제로 방위사업청에서 만든 ‘기술교범 국방규격서’ 자료집에 따르면 수정 및 개정판의 경우 기존 발간 교범 가운데 장비 개조나 성능 개량에 의한 교범 내용 수정 사안에 대해 기존 발간 교범과 동일 규격으로 수정토록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다만 총 페이지의 50% 이상 정비가 요구되는 교범은 별도 사업화하여 기술교범을 개정 발간토록 해 놓았습니다.

방사청 관계자는 “기술교범은 달라지는 부분만 변경해 기술하면 된다”며 “다만 발주처가 해군인 만큼 해군이 그렇게 지침을 내렸다면 해군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원 제작업체인 W업체에 전화를 해 보니 “지식재산권은 우리 측에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화인 측에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항의나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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