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새해부터 닥친 '후라이드 치킨'의 위기

'식용유 대란'의 의미는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7.01.09 07:37 수정 2017.01.09 16:4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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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후라이드를 가능케 한 것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어느 유명 셰프가 말했다죠. 여기서의 신발은 아마도 쇠가죽구두, 그냥 운동화를 튀기는 건 아닐테니까요. 재료가 어떤 것이더라도 튀기면 그만큼 고소함이 배가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전 국민의 '소울 푸드'가 돼 버린 치킨, 특히 후라이드 치킨이 그렇습니다. 그 고소한 닭튀김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백숙의 봄날은 짧게 흘러갔고, 이제 여름철 반짝하고 마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설픈 기름 맛의 전기구이통닭은 그 전성기가 더 짧았다. 어느 순간 진짜 기름이 몰려오면서 본격적으로 모든 것을 '후라이드'해서 먹는 시대가 열렸다… 후라이드 치킨의 전성기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닭을 '후라이드'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식용유다."

농촌사회학자인 정은정씨는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저서에서 '후라이드 치킨'이 확고한 대세가 된 배경엔 식용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장을 담가 먹거나 두부로 만들어 먹던 콩이 '식용유'로 바뀌면서 식생활은 혁명 수준으로 변화했는데… 콩은 기름이자 사료로, 콩으로 닭을 키웠고, 그 닭을 콩기름으로 튀겨 먹었으니 식용유가 곧 치킨"이라는 겁니다.  (관련내용은 [대한민국 치킨전] 5장 치킨의 조건, 515 콩-식용유-사료의 트라이앵글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시장 치킨'과 달리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나 혹은 동네에서 나름 이름난 치킨집의 후라이드 치킨(후라이드는 Fried-프라이드 입니다만, 한국 토착화된 치킨의 의미로 후라이드로 적습니다.) 바삭한 튀김옷이 생명인데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게 수조(水槽) 형태의 사각 튀김기라고 합니다. 시장 치킨집의 둥근 가마솥 형보다도 크고 치킨 조각이 달라붙지 않아 제대로 튀김옷의 바삭함이 형성되는 반면, 기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치킨용 닭,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용유'의 원활한 공급이었습니다.
식용유 공급 부족● 갑자기 들이닥친 '식용유 위기'

조류 독감 AI 파동으로 치킨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된 것, 연말부터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매출이 확 줄어든 것, 각종 식자재 가격이 줄줄이 올라 원가 부담이 커진 것, 열거하면 더 있겠습니다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근근이 버텨오던 치킨집 사장님들에게 해가 바뀌자마자, 또 하나의 폭탄이 날아듭니다. 식용유 공급 차질 혹은 중단이었습니다.

주로 치킨집, 중국집, 튀김집, 전집 등 식당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식용유는 18리터 들이 '말통' 단위의 식용유입니다. 가정에서는 대두로 만든 '콩 식용유'보다는 올리브유나 포도씨유 등 다른 기름을 좀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식당에서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콩 식용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공급이 원활하고 무엇보다 저렴하기 때문이겠죠. 18리터 한 통에 2만 원대 초중반 정도로 공급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식용유 수급이 연말부터 위태위태하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급기야는 "이전처럼 공급할 수 없다", "종전 공급량의 절반으로 줄이겠다", "더 지나면 아예 공급할 수 없을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주일에 적게는 4-5통, 많게는 10통 넘게 사용하던 치킨집 사장님들은 한마디로 '멘탈 붕괴' 직전입니다.

거기에 그나마 공급하던 식용유도 일제히 가격을 올려버렸습니다. 모든 제조업체들이 한결같이 2천 원에서 3천 원씩 가격 인상을 했는데 그나마도 "원하는 대로 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A 식용유를 쓰던 치킨집이 있다면, 가격이든 치킨 맛이든 여러 이유에서 써왔는데 이번주부터는 A는 3통밖에 못 주니까 나머지는 B를 써라, 그러면서도 A든 B든 가격은 올랐으니 비용은 비용대로 더 들고 그나마 A든 B든 제대로 공급될지 불안하고 그렇습니다.

● '남미 홍수의 후폭풍'이라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니, 엉뚱하게도 2016년 상반기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홍수 때문이라는 설명이 돌아왔습니다. 남미에서 식용유의 원료인 대두(콩)을 수입하는데 작년 홍수로 아르헨티나에서만 대두 수확량이 15%가량이 감소했고 그나마 수확한 콩도 상당수가 물을 많이 먹어 품질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이 업소용 식용유를 제조, 판매하는 업체는 CJ제일제당, 오뚜기, 사조해표, 동원, 대상 등이 있습니다. 이중 일부는 콩을 수입해 직접 원유를 제조한 뒤 이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식용유를 만들고 일부는 현지에서 콩에서 추출한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식용유를 만든다고 합니다.

문제가 생긴 건 후자인데 (전자는 브라질에서 주로 콩을 수입해 수급량엔 문제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먼저 원유 수입량이 줄었고 그나마 수확한 콩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품질에 문제가 없는 콩으로 만든 원유는, 1번 정제하면 완성품인 노란빛 도는 맑은 식용유가 만들어졌는데, 문제 있는 콩 원유는 1번 정제만으론 원유 특유의 붉은 색상이 가시지 않아 2번, 3번 정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정제 과정에서 양도 줄고 하니까(가열해서 수분과 불순물을 날려버리고 약품 처리도 합니다) "공급은 부족, 비용은 증가, 그래서 공급 차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콩을 직접 수입한 업체들 역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 때문에 가격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쨌든 저런 상황 때문에 공급 차질이 빚어졌다면, 언제부터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르면 1월 중순, 늦어도 2월 초에는 가능할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수확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가을부터 겨울, 1월 정도까지는 남미산 대두를 사용하고 2월부터 여름까지는 북미산 대두를 쓰는데 그 북미산 대두가 곧 들어올 것이라 이때부터는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작년 상반기 남미 홍수 때문에 빚어진 대두 수급 문제가 연말에 와서야 문제가 됐다? 가격은 일제히 2-3천원씩 올렸다? 명쾌하게 이해되진 않는 상황입니다만, 아직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 있는 반박은 찾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식용유 대란● '식용유 대란'이 '대란'이 되는 이유

식용유 제조업체들은, 업소용 식용유와 가정용 식용유는 다르기 때문에 가정용 가격 인상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당장 일반 가정엔 영향이 거의 없을 겁니다. '식용유 대란'은 가정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직은.

반면, 식용유를 대량으로 쓰는 치킨집들, 특히 프랜차이즈가 아닌 중소 규모의 식당들은 앞서 얘기했던 AI 파동, 경기 침체, 식자재 가격 인상에 식용유 공급 차질 및 가격 인상이 더해져 그야말로 '대란'입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식용유를 아껴쓰느라 기름 한번 갈았을 때 70마리 튀겼던 걸 90마리, 100마리 튀길 수도 없고(맛이 확 변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조만간 치킨용으로 공급되는 닭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오히려 저에게 물어오셨습니다. 식용유가 없어서 '식용유 대란'이 아니라 식용유가 위태로운 상황에 도화선이 될 수 있어서 '대란' 같습니다.

이 사장님들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이 상황은 누가 잘못한 걸까요? 정부는 이런 상황에 적극 개입해 뭔가 대책을 내놔야할까요, 아니면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닌 걸까요?  하나의 정답 혹은 복수의 정답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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