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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인의 전문가가 본 피아니스트 조성진 첫 독주회

[취재파일] 3인의 전문가가 본 피아니스트 조성진 첫 독주회
지난 3일과 4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낳았다. 우선, 재작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조성진의 국내 첫 독주회란 점에서. 그리고 이틀 동안 두 차례 공연 3,800석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며(9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롯데콘서트홀 개관 이래 가장 높은 유료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는 점에서도[1,984매(3일 기준) 1,937(4일 기준), 총 3,921매] 공연을 마치고 가졌던 아이돌 사인회를 방불케 했던 팬들과 만남의 자리도 마찬가지.
조성진 리사이틀 후 팬 사인회(제공:롯데콘서트홀)
기자는 어제(4일) 있었던 두 번째 연주회를 감상했다. 전날 연주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고, 듣고 간 자리라 여러 모로 냉정해지려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다짐처럼 저항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후광 효과를 분리하지 못했다. 내 눈 앞의 저 이가 그 대단한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사실을 지운 채 오롯이 연주에만 집중하긴 어려웠다. (고백컨대 '지금 이렇게 좋게 들리는 게 정말 좋아서 좋은 걸까, 좋다고 하니 좋은 걸까?' 계속 자기와의 투쟁을 해야 했다) 시종일관 공연장에 감돈 긴장과 설렘의 기운도 한 몫 했다. 청중들은 내내 진지했고, 단 1초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듯 보였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연주를 듣는 모두의 머리 위로 마치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안타깝게도 기자의 감상은 객관성과 전문성을 잃었다. 대신 전문가들을 모셨다. 저명한 클래식 평론가 세 분의 감상기이다. 세 평론가 모두 양일 연주회 가운데 첫날인 3일 공연을 감상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공연을 다녀온 사람은 다녀온 사람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대로 조성진 첫 독주회에 대한 정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류태형 평론가와 한정호 평론가에겐 '공연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에 대한 평가를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능란한 연주, 탁월한 곡 선정…쇼팽의 발라드는 "기대 이상">
-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 前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
조성진 리사이틀(제공:롯데콘서트홀)
재작년 쇼팽 콩쿠르 우승한 뒤 최초의 단독 리사이틀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에 예술의전당에서 갈라 콘서트를 가졌지만, 다른 입상자들도 함께했던 공연이었죠. 당시의 열기나 오늘의 열기나 그 온도 차는 크지 않았습니다. 금의환향으로서의 열기도 식지 않은 상황에 새 앨범도 발매돼 조성진 콘서트다운 모습을 보여줬죠.

여성 팬들이 90퍼센트 이상 압도적으로 많은 모습도 전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곡 선정은 1부의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소나타를 양일 간 같게 하고 2부에서만 각각 발라드와 전주곡으로 변화를 줌으로써 하루만 볼 것이냐 이틀 다 볼 것이냐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게 짰다고 생각합니다. 열성 팬들은 이틀 다 볼 이유가 충분하고, 부득이 하루만 보더라도 놓치는 곡들이 상대적으로 적었죠.

조성진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입니다. 티를 잘 안 내고 얼굴에도 드러나지 않죠. 요즘은 능란해짐에 따라 예전에 있었던 기복도 적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전례 없었던 '조성진 현상'을 의식하느라 이것저것 생각하며 힘들게 공연을 봤다면, 이번 공연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동시대에 가까운 20세기 작곡가인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는 고전과 낭만시대 작품들에 비해 아무래도 생경한데요, 조성진은 방금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자기 안에 녹여 신선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부분에서도 피아노의 음색에 집중하며 조성진이 건반의 소리를 얼마나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내는지 감탄했죠. 

쇼팽의 발라드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기존의 연주 패턴이나 자기 자신이 음반에서 보여줬던 해석에도 얽매이지 않고 청중들 앞에서 피아노로 자기의 말을 하고 노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발라드 4번이 좋았습니다. 말미의 휴지부에서는 어떤 강렬한 타건도 없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걸 느꼈다는 분들이 저 말고도 있더군요. 쇼팽의 피아니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비현실적인 낭만성, 밤이 주는 알 수 없는 어둠의 깊이, 티 없이 맑은 사슴의 눈동자 같은 고음, 밀고 당기는 템포 루바토에서 우러나오는 절묘하고도 인간적인 감성...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쇼팽 연주에서 찾아볼 수 있더군요.

다만 슈베르트 소나타는 V라이브의 쇼케이스에서 4악장만 들었을 때는 정말 좋았는데요. 이번 공연에서는 그때는 알 수 없었던 1~3악장의 연결고리가 다소 단순하게 축소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암호를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의 벽을 베토벤 같은 저돌성으로 돌파한 부분도 느껴졌습니다.

사실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그의 나이가 한두 살 더 많아질수록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앙코르인 드뷔시 '달빛'은 언제 들어도 좋았고요. 맑고 신선한 타건으로 그야말로 차가운 강물에 비친 달을 그린 것 같았습니다. 그의 성향에는 드뷔시의 작품들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본인도 좋아하는 것 같고요. 두 번째 앙코르인 헝가리 춤곡은 다분히 대중성을 의식한 선곡이 아닐까 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은 자리에 따라서 음향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 롯데콘서트홀 객석에 앉아봤다는 사람 중에는 소리가 뭉개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요. 피아노의 경우 울림이 과도할 정도로 풍부한 홀에서 녹음한 음반의 소리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들어본 바로는 성악을 제외한 기악곡들을 풍부한 울림으로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현악이 피아노보다 좀 더 나은 것 같고요. 사람에 따라 풍부한 울림이 고급스럽게 들릴 수도, 혹은 소리가 뭉치거나 엉기듯 들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이 들어서인지 롯데콘서트홀 음향이 익숙한 쪽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느릿한, 그리고 단단한 조성진을 응원한다>
- 장일범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음반 발매 기자간담회 당시 모습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만큼 많은 공연 기회, 그리고 요청이 빗발쳤을 텐데도 스타덤에 연연하지 않고 1년에 한번 연주를 골라서 하는 조성진의 느릿한, 그리고 단단한 준비 자세를 칭찬하고 싶다. 빨리 소진하기 보다는 천천히 공부하고 연마해서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가 요즘 젊은 연주자에게서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주 바람직한 길을 조성진 스스로가 택했다.

3일 공연에서 연주한 첫 곡 ‘베르크 소나타’는 제2 빈악파의 곡으로 이지적인 조성진의 해석과 잘 어울렸다. 역시 빈에서 낭만주의 초기에 활약한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앞으로 연륜을 쌓으면서 더욱 깊이 있는 해석과 연주를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곡이었다.

2부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운 쇼팽 발라드 4곡을 연주했다.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깨끗한 터치로 약음에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앙코르로 들려준 드뷔시의 달빛에서는 고요하면서도 그림을 그려낸 듯한 연주가 청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으로 흥겹게 독주회를 마친 조성진. 1년 후에 많은 사고와 경험을 통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를 기대하는 건 무척 흐뭇하고 행복한 일이다.(다만 빨리 싸인을 받기위해서 앙코르도 듣지 않고 뛰쳐나가는 일부 팬들의 모습은 매우 아쉬웠다. 뭣이 중헌디! 음악을 들으러 콘서트홀에 온 것이 아닌가?)

<시그니처가 된 쇼팽 발라드... 대회와는 다른 공격적인 접근 >
- 한정호 (前 월간 <객석> 기자 및 공연기획사 '빈체로' 기획 담당/ 음악 평론가)
독주회를 마치고 인사하는 모습
현대음악의 여러 사조 가운데에서도 초기 음악에 속하는 베르크는 조성진이 파리 음악원 시절에 크게 흥미를 가진 작곡가이다. 기본적으로 고전과 낭만주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피아노의 건반을 고전식, 정석으로 다루는 작품의 자장 안에 있는 현대음악 곡을 소화하는 것이 자신의 컬러에 맞다는 주장인데 메시앙이나 여러 후기 20세기 음악 사조에 몰두하다 보면, 고전주의의 터치감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안한 선곡이다. 아이돌을 대하듯 환호성으로 조성진을 맞은 관객들이 조용하게 음악에 침잠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오프너를 차분하게 가져간 것으로 본다.

슈베르트 일련의 작품군들은 조성진의 나이 10대 후반, 2013년 경부터 연구가 본격화된 작품이다. 불과 3~4년의 탐구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빛나는 성과를 맺었다. 슈베르트가 건반 주자로서 조성진이 가진 독특함과 강점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난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어떠해야 한다, 악보상의 기보는 무엇이다, 라는 규범에 대해 조성진이 큰 강박이 없는 건 프랑스에서 독자적으로 얻은 깨달음으로 본다. 

조성진은 과거 거장의 기록이나 조언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누구의 후예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라두 루푸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을 찾아가 조언을 취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얻는 충언도 극히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구조 안의 음악이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꿈틀대던 슈베르트야 말로, 쇼팽을 잘 치면서 콩쿠르 위너의 틀에 갖히지 않기 위해 다른 작곡가도 잘 소화해야 하는 조성진이 가장 전략적으로 세공해야 할 작곡가다. 개인적으로 조성진은 쇼팽보다 슈베르트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본다. 향후 독일어 학습이 이어진다면 자신의 힘으로 음악에 큰 획을 남기고 싶어하는 조성진의 큰 뜻이 독일 피아니즘에서부터 개화할 것이다.

쇼팽 발라드는 대회와는 다른 공격적인 접근이었지만, 쇼팽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연구한 작품이기에 더 높은 기대 수준을 가져도 좋을 선곡이다. 호연이 명연으로 이어지기 위해 이번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투어가 끝나면 조성진 나름의 분석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조성진 연주 모습
한 번의 노히트노런보다 평균 자책점이 낮은 투수가 높은 평가를 받듯, 수연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피아니스트가 투어 연주자로 살아 남는다. 2월 카네기홀 공연에서 쇼팽 24개 프렐류드가 예정됐지만 음반처럼 공연장에서의 조성진 쇼팽 발라드가 현재 그의 시그니처다. 화음을 자신의 페이스로 순하게 진행시키는 태연작약함은 신수정에게 어린 시절 익힌 탄탄한 기본기를 돌아보게 한다. 

쇼팽 발라드를 대회에서 이렇게 쳤다면, 심사위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대회의 특성상 우승을 장담하기 어렵다.달관을 노래하는 노련함이 묻어나는 연주가 경연에서 불리하다는 건 상식에 준한다. 쇼팽에선 그런 연주를 보였다. 슈베르트에서의 독창성이 조성진이 가진 의외성과 잠재력의 실체다. 보통 나이가 들어 전성기가 온다고 믿지만 조성진은 마치 전성기는 누가 평가하냐고 대답할 것 같다. 베르크에 대한 판단은 유보. 비슷한 시대 비슷한 사조의 다른 작품들을 들어봐야 한다 
 
피아니스트 리사이틀로는 안스네스, 랑랑, 조성진의 공연을 롯데콘서트홀에서 들었다. 안스네스와 조성진의 공연은 청명하고 또렷하게 음상을 맺는 편으로 들었고 랑랑의 경우 굉음의 잔치였다. 레퍼토리의 차이에 기인할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을 배려하는 아티스트의 자세에 따라 객석에 퍼지는 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본다. 공연전 리허설때 관객이 들어찬 것을 감안해서 음량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랑랑이나 조성진의 공연처럼 만석일 경우, 그런 리허설이 무색해진다.

특히 음향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선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기획자 등이 내리고 있는데 보통 해외에서 홀의 어쿠스틱을 말하고 평가하는 주요 주체는 연주가이다. 보통 국내에선 잘 울리는 것이 좋은 홀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독주자에게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건 상당한 고역이다. 연주가가 느끼기에 어떻다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관객의 감각이다.

공식 개장 전 시연 연주를 가져본 김선욱의 코멘트에 따르면 소리가 잘 퍼지는, 서울에서 아주 괜찮은 홀이다. 피아노 이외에 체임버 공연에서 보다 입체적인 소리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NHK 교향악단 공연을 기준으로 할때 관현악에 어울리는 홀인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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