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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병헌은 왜 '마스터'를 선택했을까

[인터뷰] 이병헌은 왜 '마스터'를 선택했을까
인터뷰 자리에서 이병헌은 막강한 콘텐츠의 소유자다. 굳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질문을 해 분위기를 딱딱하게 할 필요 없이 영화와 연기에 대한 이야기만 집중해도 한시간이 모자라기 일쑤다. 게다가 유려한 언변과 풍부한 위트로 시종일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 줄 안다. 

1991년에 데뷔,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이 연기 베테랑은 국내 톱배우의 자리에 오른 뒤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이 길고 화려한 역사가 곧 인터뷰의 풍성한 소스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특히 사생활 영역에서 발견된 논란들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모두들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병헌은 배우의 본분인 연기로써 자신을 향한 부정적 여론도 돌파해냈다.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만난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이 인생에 다시 없을 상찬과 트로피를 안겨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병헌은 이 한 편의 영화로 국,내외 시상식 남우주연상 10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신작 '마스터'(감독 조의석)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이병헌의 자기복제 혹은 정체로도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이미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악역 페이소스를 맛있게 만끽한 바 있다. 진현필 회장의 캐릭터 그리고 연기 방식이 주는 기시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본인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고 다른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강조했지만 관객들의 감상과 만족도도 일치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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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병헌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진현필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캐릭터를 정말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현필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감정과 눈빛이 바뀐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가지는 연기 욕심에 부응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도 태연하게 나쁜 일을 자행하는 진현필을 이해하며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병헌은 "막상 결정하고 이 인물에 내가 설득당하려고 생각해 보니 잘 안 됐다. 무슨 명분이나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설득당하기가 더욱 힘들었다"고 촬영 당시 직면한 고민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평면적인 악역으로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캐릭터에 결을 좀 주려고 했다. 일례로 진현필이 처음 살인을 사주하고 티비에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어떡해?" 하면서 주스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순식간에 자기합리화를 하는 그 장면에서 캐릭터가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OOO를 죽일 때도 원래는 "결정해" 하고서 전화를 끊으며 웃는 장면인데 눈을 감고 한숨을 쉬는 설정을 넣는다던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무서울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미를 보일 때 자기 합리화로 넘어가 버리는 지점, '네가 이렇게 하니까 내가 이렇게 하지' 같은 논리다. 그래서 좀 살아 있는 악마 같은 느낌이 나길 바랐다"

배우의 노력은 연기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이병헌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연기 9단'의 면모를 발휘했다. 납작하고 딱딱한 악역에 그칠 수 있었던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도 이병헌 개인의 공이 컸다.

"자기 캐릭터를 팔딱팔딱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려고 모든 배우들이 발버둥을 친다. 진현필 캐릭터를 보자마자 되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고, 설득이 안 되면 감독과 내가 만들어서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캐릭터를입체화시키기 위해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애드리브를 제시했다"

진현필의 신출귀몰한 사기행각의 정점은 한국을 넘어 필리핀에서 펼쳐진다. 이병헌은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진현필의 거대한 야망과 주도면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필리핀식 영어를 습득했다. 이병헌이 의도하고 작정했으며 칼을 간 회심의 설정이었다.

"조의석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때 필리핀에 헌팅차 방문했었다. 그때 영화에 출연할 현지 배우들에게 진현필의 영어대사 녹음을 부탁했다. 진현필이 표현해야 할 감정은 내 몫이지만 필리핀 영어의 악센트나 인터네이션은 꼭 현지인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녹음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열심히 연습했다. 사실 시사회 때 영화 속에서 가장 기대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배급관에서 영화 관계자들과 영화를 봐서인지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다. 아무도 안 웃는 것 같아 '나만 재밌어했구나'라는 생각에 절망했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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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를 여는 오프닝 시퀀스도 이병헌에게는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이 어떤 캐릭터이며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가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가평의 한 체육관에서 촬영된 이 장면은 원테이크로 촬영됐다. 영화 속에서는 CG 작업을 통해 2만 5천 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것으로 포현됐지만, 실제로는 600명의 엑스트라가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마음을 얻으며, 끝내 돈을 빼앗게 되는 과정을 축약하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영화를 여는 오프닝 신이다. 관객들은 내가 사기꾼 역할을 하는 것을 알지만 진현필이 사람들을 말로써 연기로써 능수능란하게 속여야 '아, 당할 만하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신은 대사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조의석 감독이 대사를 마지막까지 수정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역시 연설문 쓰는 게 가장 어렵구나 느낄 만큼.(웃음)"

진현필은 조 단위 사기를 치고도 더 큰 사기에 목을 맨다. 그 욕망의 근저엔 무엇이 있을까. 직접 인물을 분석하고 연기한 이병헌에게 사기꾼 진현필을 움직이는 추동적인 감정을 물었다.

"장군이(김우빈) 대사 중에 "그 인간은 사기 안 치면 광합성 못하는 식물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 진현필은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훔쳐야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의 돈만 가지고 있으면 평생을 살 수 있을 텐데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한마디로 '돈의 신'이 되고 싶은 사람인 거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에서 맛을 본 데 이어 '마스터'에서 본격 악역을 연기했다. '내부자들' 이전까지는 제안조차 거의 없었다는 그가 연거푸 악역을 연기하면서 느낀 즐거움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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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악한 사람이 있지만, 영화에서의 악역은 좀 더 극단적이고 과장돼기 마련이다. 평상시 겪은 사람을 떠올리며 연기하거나 '이런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일까'라는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또 그걸 연기해 냈을 때의 묘한 감정이 재밌어서 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의 엔딩이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에 대해 이병헌은 "영화의 모티브는 조희팔 사기 사건이라는 현실에서 가져왔지만, 결말은 결국 판타지로 끝내는 게 관객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의도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 영화의 엔딩처럼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올해도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사극 영화 '남한산성'을 촬영하고 있고, 지난해 촬영을 마친 영화 '싱글라이더'는 올 상반기 중 개봉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영화 작업 역시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미스컨덕트'와 '매그니피센트7' 두 편을 선보이며 다채로운 활약을 보여준 바 있다. 미국에서의 계속된 활약을 당부하자 "저번 영화('미스컨덕트')도 쪽딱 망했는 걸요"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적어도 국내에서 이병헌의 할리우드 활약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를 두고 비판할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야심차게 진출했으나, 언어와 환경적 제약에 지쳐 중도 귀환한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런점에서 이병헌의 도전이 얼마나 어렵고 또 의미있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의 마스터가 있다면 이병헌은 그 수준에 거의 근접한 내공의 배우인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연기로써는 불안을 주지 않으니 말이다. 2017년 스크린에서 이병헌은 또 어떤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다음 무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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