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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말러, 처절함 속의 아름다움" - 성시연 경기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①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가 연주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지난 12일 세계적인 레이블인 데카(DECCA)를 통해 음반으로 발매됐다. 음반은 내년 창단 20주년을 맞는 경기필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자 성시연 경기필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이하 단장)가 처음 내놓는 신보다. 지난 22일, 개인 일정 차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 성시연 단장과 이메일(E-mail)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이번 앨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게요. 말러의 오랜 마니아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교향곡 5번은 각별합니다. 잘 알려진 아다지에토
[* 4악장 : 말러의 연인 '알마'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도 그렇고요.

첫 앨범으로 '말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 때 자세히 설명하셨는데요
.[* 성 단장은 당시 "경기필을 처음 지휘할 때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그때의 벅찬 감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말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하나 더 들어간 질문일 것 같습니다. 말러, 그 중에서도 5번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말러 교향곡 5번 (아티스트: 성시연, 경기필 오케스트라/유니버설 뮤직 2016.12.12)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전 5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말러 교향곡 중 자주 연주되는 곡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말러 교향곡들 중 가장 약한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뚜렷한 정점 없이 애끓으며 떠도는 듯한 느낌을 가진 곡이라고 할까요. 말러 곡들 중 가장 '지상에 가까운 곡'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녹음하고 싶은 곡이었어요.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5번에 대한 저의 기존 생각을 극복하고 싶었거든요. 호른, 트럼펫을 비롯해 스트링(현악)까지 모든 파트의 최고 기량을 요하는 곡이라 경기필이 레코딩을 통해 더더욱 발전하고 싶다는 의미에도 부합됐고요.
 
Q. 인터뷰를 준비하며 여러번 반복해 들었습니다. 덕분에 새삼 5번의 구성이 드라마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악장 별로 뚜렷한 스토리텔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요. 단장님 역시 레코딩을 계기로 5번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셨을 것 같아요

네, 같은 작품이라도 저에겐 녹음 전과 후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5번은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볼 때 1인칭의 트럼펫으로 시작해서 천상을 그리는 5악장까지 인생의 굴곡이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1인칭 트럼펫은 말러 자신을 의미하고, 높은 음역이 제 1바이올린부터 나락으로 떨어지는 2악장을 거쳐 3악장 렌들러(Landler)에 이르러선 마치 먼 발치에서 축제를 보고 있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변한 것처럼 느껴져요. 더이상 자신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존재가 아니라, 슬픔을 머금고 관망하는 존재라고 할까요. 말러가 특별히 이 악장을 빠르게 연주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가 아닐까 합니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때가 40대 초반 쯤,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기였는데요, 제가 이번 레코딩을 통해 그의 음악을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표현'해 보고자 했던 이유입니다. 몇 년이 지난 다음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런 변화도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Q. 단장님과 말러와의 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구스타프 말러'라는 사람, 그가 작곡한 곡들이요

전 말러를 번스타인 [* 레너드 번스타인(1918년 8월 25일~1990년 10월 14일), 미국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의 부활 [* 교향곡 제2번, ‘부활’ (Symphony no. 2, “Resurrection”): 말러의 두 번째 교향곡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영감이 충만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비디오로 처음 접했는데요. 유학생 시절 학교에서 빌린 비디오 테이프로, 작고 낡은 텔레비전을 통해 봤습니다. 저에겐 그 작은 화면이 몇 배로 크게 클로즈업되는 듯한, 그 정도로 강렬하고 생생한 느낌이었어요. 연주 마지막에 이르러선 결국 얼굴이 눈물로 범벅됐고요. 그게 말러와 첫 만남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음반을 들었어요. 

솔티 콩쿠르 [* 성 단장은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여성 지휘자로는 최초로 우승했다]에서 1등 상을 수상한 후에 말러 콩쿠르가 있었는데 너무 고민이 됐습니다. 혹시 나가서 1차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보다 말러의 음악을 지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지원했어요. 결국 1등 없는 2등 상을 수상했습니다. [* 솔티 콩쿠르 최고상 수상 바로 다음 해인 2007년, 성 단장은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역시 최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도 제 순수한 이런 마음까지는 모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했던 코멘트를 보면 '콩쿠르에 목숨 건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게 말러와의 첫 인연이었죠.

그의 세계관과 음악관은 제가 힘들 때 많은 위로가 됐어요. '말러는 천상을 그리지만 도달하지 못한 작곡가'라는 모 지휘자의 말에 공감해요. 말러의 음악을 통해 힘겹게 나아가는 제 삶에 대한 위로를 받습니다. 특히 그의 '대지의 노래' [* 대지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 말러의 모든 교향곡 가운데서도 단연 특이한 작품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다. 말러 자신이 이 작품을 교향곡이라 했고, 외적인 구성 면에서도 교향곡으로 볼 수 있지만 시를 텍스트로 한 6곡(악장)이 이어져 있는데다 내용 면에서 긴밀하게 연계된다는 점에선 연가곡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내용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3327'] 가사나 목관 솔로 등은 인간 존재의 공허함을 가장 잘 나타낸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말러의 음악은 '처절함 속의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Q. 공연을 염두에 두고 지휘하는 것과 레코딩을 위해 지휘하는 것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홀에서 지휘하는 것과 레코딩 지휘는 '긴장감'에서부터 다릅니다. 강도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감인 것 같아요. 연주할 때는 고도의 집중이 몇 시간동안 요구되는데, 녹음할 때엔 2~3일 내내 온종일 최상의 집중을 유지해야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지휘자보다 단원들의 집중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지휘에도 차이가 생기고요.

또, 연주에선 음악을 저의 지휘로 보여주고 이끌어가는 편인데 레코딩에선 그 키(key)를 쥐고 있는 사람은 프로듀서입니다. 홀에서 지휘자가 서 있는 곳에서 듣는 것과 마이크를 타고 들어오는 소리가 합류해서 들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코딩할 때 지휘자는 단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집중할 수 있도록 지휘를 최소화하면서 프로듀서의 코멘트를 중점적으로 듣게 됩니다. 요즘은 현장의 긴장감을 이유로 라이브 레코딩을 더 선호하는것 같습니다. [* 이번 앨범엔 1992년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클래식 프로듀서' 부문을 수상한 마이클 파인과 음향 전문가인 톤마이스터 최진이 참여했다]

Q. 이번 앨범을 들으며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은 특히 롯데콘서트홀 특유의 소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 같아요. [* 성시연- 경기필 말러 교향곡 5번은 롯데콘서트홀에서 녹음한 최초 음반이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최초의 빈야드 스타일(Vineyard, 포도밭처럼 여러 구획으로 나뉜 객석이 무대를 둘러싼 구조)의 홀로 올해 8월 개관했다]

전 어릴 때 타고 놀았던 트램펄린이 생각나더라고요.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아래로 떨어져 다시 올라갈 때 몸 전체가 유연한 곡선을 그린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물 속에서 수영하다 턴을 할 때와도 비슷한데, 소리가 상당히 묵직하게 굴절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득하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롯데홀에서 최초 레코딩한 전문가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저희가 녹음할 때엔 롯데홀이 아직 퓨어(pure)하다고 할까, 음향이 잡히지 않을 때였어요. 잔향이 다른 홀에 비해 많다보니 리버브(reverberation)를 따로 많이 넣지 않아도 울림이 많은 레코딩이 된 것 같아요. 저희 경기필은 원색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인데, 홀의 잔향이 실크처럼 감싸서 여유럽고 부드러운 효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기자님이 느끼신 '아득하다'는 표현도 맞는 것 같네요. 파도가 바위에 철썩 부딪히는 그런 직접적인 효과보다도 수심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 치는 그런 아득함이 큰 음악이 나온 듯 합니다. 일단 포디움에 서면 홀에서 들을 때만큼의 많은 잔향보다는, 각 악기의 연주가 어우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좋은 홀엔 여러가지 요소도 있겠지만, 그 홀이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스턴심포니홀 같은 경우엔 잔향이 풍부한 편이지만 그 잔향 속에서 따뜻하게 부서지는 화려함이 있거든요. 롯데홀도 잔향이 풍부한 편인데 실크처럼 감싸주는 색채를 더 고민해서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회에 이어짐)

* 참고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단장·상임지휘자>

지난 2014년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임명되며 화제를 모았다. 뛰어난 기획력과 통솔력으로 경기필의 역량을 수준급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이래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젊은 지휘자로 각광받고 있다. 2010년까지 명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의 부지휘자로 활동했으며, 국내에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성 단장은 '말러 스페셜리스트'이자 '말러 애호가'로 잘 알려졌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고도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말러의 교향곡으로 실력을 인정받고자 이듬해 말러 지휘 콩쿠르에 출전해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시절엔 말러의 교향곡 7번을 지휘했고, 2014년 경기필하모닉에 취임해서도 첫 공식연주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말러 2번 '부활'을 택했다. 
- 1975년 生
- 서울예술고등학교/ 취리히국립음악원 피아노과/ 베를린국립음악대학 피아노과/ 한스아이슬러음악대학교 지휘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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