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드라인 180일 채우고 2016년 6월 6일에 결정?’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법 38조에 따라 180일 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기준을 따르면, 박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 접수시점(12월 9일)을 기준으로 2017년 6월 6일 안에만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강제성이 없다. 훈시 규정일 뿐이다. 헌재의 평소 사건 처리 속도를 감안하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헌재에 접수된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1년 1개월이고, 법정 처리 기간인 180일을 넘긴 장기 미제 사건만 해도 11월 30일을 기준으로 710건에 달한다.
다만, 이번 사건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감안하면 법정 시한(180일) 이전에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헌법재판소의 한 연구관은 “재판관들이 다른 사건과 일정을 모두 접어둔 채 이번 사건에 전념을 하고 있다”며 “최종 결정은 180일 이전에 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12월 22일부터 30일까지 세 차례 변론준비기일이 열렸고, 2017년 1월부터 매주 2차례 본안 심리(변론 기일)가 예정된 점을 볼 때 통상의 사건과 달리 속도를 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의 차이점
헌재는 지난 2004년 ‘2004헌나1’ 사건,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사건은 보다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12년 전과 이번 사건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 변수다.
반면, 박 대통령 탄핵 사건은 접수(12월 9일) 25일 만에 첫 기일(1월 3일)이 잡혔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비해 일주일 늦어진 셈이다. 12년 전 탄핵 사건에 비해 쟁점이 늘어났고, 절차를 두고도 국회와 대통령 양측 사이에 다툼이 이견이 크다는 점이 작용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비해 증인 숫자도 늘었다. 헌재는 우선 1월 5일 2차 변론기일에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윤전추·이영선 청와대 행정관 등 4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1월 10일 3차 변론기일에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 3명을 증인 신문하기로 했다. 증인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결정문 작성 시한도 변수다. 2004년 헌재는 변론 종결 후 약 보름에 걸쳐 결정문을 작성했는데, 이번 사건은 쟁점이 많아 결정문 작성 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헌재가 이번 사건에서 쟁점을 전부 따진다면 재판관 평의도 늘어질 것이고 결국 결정문 작성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헌재가 선택과 집중을 할 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헌재가 먼저 인정된 사실 만으로 탄핵 사유가 충분하다고 결론 내리고 다른 쟁점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신속한 결론과 결정문 작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 헌재소장의 부재, 재판관 변수…7명만 서명한 결정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또 다른 변수는 9명 재판관의 임기다. 2017년에 임기 만료가 되는 재판관은 박한철 소장(1월 31일)과 이정미 재판관(3월 13일) 두 명이다. 탄핵 심판 결론이 2017년 2월 이후에 내려진다면, 박한철 소장을 제외한 8명의 재판관이, 내년 3월 중순 이후라면 7명의 재판관이 결정하게 된다. 헌법에 따라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된다. 3월 중순 이후에는 7명의 재판관 중 2명만 반대해도 기각 결정이 내려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 '역사적 사건' 재판관 완전체 결론…이르면 1월말 늦어도 3월 중순 이전 선고
헌재소장은 헌재의 사무를 총괄하는 역할 외에도,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재판관 평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 처리에 있어선 주심 재판관보다 소장의 영향력이 크다”며 “소장이 어떤 식으로 평의를 진행하는 지에 따라 심리 방식, 선고 시기,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기관으로, 재판관 9명이 대한민국의 다양한 철학과 사상, 이념을 각각 대변하고 있어 재판관 1명의 역할이 중요하다. 임지봉 교수는 “재판관이 한 명이라도 공석인 상태에서 결론이 나올 경우 결과에 반대하는 세력은 불완전한 결정이라며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며 “헌재 입장에선 결정의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재판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각에선 대통령 탄핵 사건은 역사적으로도 중대한 사건이라 박한철 소장이 임기 중에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헌재소장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이번 탄핵 사건으로 삼고 1월 이내 선고를 목표로 삼고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박 소장 성격상 이런 큰 사건을 권한대행이 서명하도록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며 "박 소장은 검사장 시절에도 밤을 새서 사건 기록을 볼 만큼 일 중독이었는데, 이번 탄핵 사건도 매일 밤을 새워 기록을 검토한 뒤 결론을 내고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법조계는 헌재가 이르면 2017년 1월 말, 늦어도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전인 3월 중순엔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압축된 5개의 쟁점…창과 방패의 싸움
법조계에선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을 볼 때 헌재가 신속한 처리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은 없다. 헌재가 세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에서 쟁점을 다섯 개로 압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회는 8개의 위헌적 행위와 8개의 범죄행위 (상세 기사/ 한 장으로 보는 탄핵소추의결서)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는데, 헌재는 이를 '최순실 등 비선조직에 의한 국민주권주의 법치국가원칙 위반' 등 5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여러 사안을 유형별로 압축해 각 묶음별로 동시에 판단을 내려 속도감 있게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선 “결론은 사실상 정해져 있고, 절차만 남았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사실관계 다툼을 지켜봐야 하는 만큼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고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양측 모두가 동의하는 건 헌재의 탄핵 심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임지봉 교수는 “국정 공백이 장기화 되는 건 국가적 손실이자 국민 전체의 불이익”이라며 “이런 당위적 측면에서도 헌재가 소송 지휘권을 현명하게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