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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부 핵심실세 김기춘, 특검 '자택 압수수색' 수모

박 정부 핵심실세 김기춘, 특검 '자택 압수수색' 수모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26일 이른 아침,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자택에 박영수 특별검사팀 소속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위 의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특검팀이 김 전 실장에 대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 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광범위하게 수사하는 특검팀이 '왕실장'으로 불리며 현 정부 핵심실세로 통했던 김 전 실장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했던 검찰 특별수사본부도 김 전 실장이 2014년 김희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문체부 1급 실·국장 6명의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장 재임 기간 최 씨의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했을 가능성을 포함한 비위 의혹을 폭넓게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최 씨의 국정농단에 김 전 실장이 연루됐을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은 이미 드러난 것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다.

지난달 말에는 김 전 실장이 2014년 6월 무렵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최 씨의 측근으로 구속기소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을 만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차 씨가 최 씨의 힘을 등에 업고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는 과정에 김 전 실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는 대목이다.

김 종 전 차관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의 소개로 최 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최 씨 소유의 강남구 신사동 빌딩 사무실을 이용하며 조각을 비롯한 정부 운영의 틀을 짰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최 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달 7일 열린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쏟아지는 질의에 최 씨를 모른다며 완강히 부인하다가 자신에게 보고됐던 '정윤회 문건'에 최 씨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드러나자 '이름은 들었지만 접촉은 하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여기에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김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김 전 수석이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와대 비서관 회의 내용을 빼곡히 적은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추정되는 내용이 무수하게 기록돼 있다.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세월호 참사에 관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의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막은 정황 등이 적혀 있어 박근혜 정부의 문화·언론·법조계 개입을 김 전 실장이 주도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문화예술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근거로 김 전 실장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특검에 잇달아 제출했다.

김 전 실장은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대해 "누가 작성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다",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도 가미돼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방어막을 쳤다.

고도의 법률지식을 갖추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률 미꾸라지'라는 비판을 야당 의원들로 부터 받는 김 전 실장은 자택 압수수색을 계기로 특검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 서게 됐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자택에서 획득한 물증을 토대로 그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오랜 세월 최고의 권세를 누려온 김 전 실장은 특검의 자택 압수수색으로 씻을 수 없는 수모를 겪게 됐다.

김 전 실장은 검사 시절이던 1972년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가하는 등 1970년대부터 권부의 핵심에 진출했다.

이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올라 법조인 경력에 정점을 찍은 그는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법사위원장이던 2004년 4월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한 김 전 실장에게는 '공작정치'의 달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는 2013년 8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돼 작년 2월까지 현 정부의 핵심실세로 군림했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재임 기간 '불통'의 국정운영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 특검은 취임초기 "(특검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김 전 실장이다. 그분의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고 평가한바 있다.

이에 따라 이날 압수수색은 김 전 실장을 옭아맬 방안을 특검팀이 나름대로 마련한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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