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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에볼라바이러스 백신 개발 성공…안 만들었나? 못 만들었나?

지난 2013년 말, 에볼라바이러스가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기니 등 서아프리카를 습격했습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무려 2만 8,600명이 감염됐으며, 최소 1만 천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 치사율은 6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니에서 에볼라 백신 접종하는 여성/사진출처:연합뉴스

이처럼 에볼라바이러스의 치사율이 높은 건, 바이러스 입장에선 인간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도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더는 생존할 수 없기에,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숙주의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이러스도 새로운 숙주 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오랜 시간 박쥐와 설치류, 유인원의 몸에만 있었던 에볼라바이러스에게 사람의 몸은 충분한 접촉이 없었기에 매우 낯선 환경입니다.
 
결국, 에볼라바이러스는 인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하고, 숙주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감기 바이러스가 오랜 시간 인체에 잘 적응해, 숙주인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잘 공존(?)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 동물 몸에 있던 에볼라바이러스를 불러낸 것도 ‘인간’
 
그럼, 동물 몸에 있던 에볼라바이러스는 어떻게 해서 우리 사람에게 넘어왔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바이러스가 넘어온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불러낸 겁니다. 사람들은 박쥐나 영장류들이 서식하는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동물이 갖고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까지 넘어온 겁니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미국 툴레인대학 대니얼 바우슈 교수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박쥐 등의 동물은 사람과 접촉할 가능성이 낮은 깊은 숲 속에 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이나 자원을 구하려고 숲 속 깊이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에볼라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에볼라바이러스는 우리 인간이 자초한 재앙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우리가 불러낸 에볼라바이러스는 거칠고 공격적이었으며, 또 치명적이었습니다. 반면, 이에 맞선 우리의 대응은 극히 소극적이고 수세적이며, 안이했습니다. 바이러스 존재가 처음 확인된 1974년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백신을 개발하지 못해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겁니다.
 
● 세계보건기구,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 성공 선언
 
그러던 차에, 어제(23일) 낭보가 들려왔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한 겁니다. 'rVSV-ZEBOV'로 이름 붙여진 이 백신은 최근 기니와 시에라리온에서 인체실험을 거친 결과, 100%에 가까운 예방 효과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백신 접종하는 남성/사진출처:연합뉴스

WHO 마리-폴 키니 박사팀이 의학학술지 ‘랜싯(Lancet)’에 기고한 논문을 보면, 인체 실험에서 백신접종이 이뤄진 뒤 10일 안에, 실험 대상자 중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접종 며칠 뒤 에볼라 감염 증세를 보인 사람은 소수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백신 접종 전에 감염됐던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공동연구자인 런던위생·열대 의학과대학 존 에드먼즈 교수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역사적인 실험이 진행됐으며, 개발한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에볼라가 다시 발생할 경우, 훨씬 더 나은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다.“라고 성과를 자평했습니다. 에볼라 백신은 유럽연합의 신속한 승인을 거쳐 머크샤프앤드돔(MSD)이 생산에 들어갔고, 이미 3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신종 전염병 치료제가 안 나오는 건 기술이 아닌 돈 때문”
 
하지만, 1974년 처음 확인된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이 오늘에서야 완성된 건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는 국제사회가 지난 40년 간 에볼라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희생자가 신음하며 쓰러져갔지만, 우리는 백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거대한 ‘자본주의 그늘’ 숨겨져 있습니다.

공중보건의학계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전염성 질병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건 기술력이 아닌 돈 때문이다.” 세계적 제약회사들은 이익 추구에 눈이 멀어, 경제성이 없는 백신은 연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이를 규제해야 할 각국 정부 기관들도 이들 거대 제약회사들에 끌려다니며 수익성이 보장되는 의약품에만 개발비를 지원한다는 겁니다.
 
영국 퀸메리대학 엘리슨 폴록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등 주요 강대국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WHO의 ‘예방의학’이나 ‘공공보건 분야’에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병하는 신종 전염병은 갈수록 종류가 다양해지고 피해 정도도 심해지고 있지만, WHO 예산은 오히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폭 줄었습니다.
 
WHO 연간 예산은 40억 달러(약 4조 8천억 원)가량인데, 이는 13조 6천억 원에 이르는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예산의 1/3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에볼라나 메르스 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성 질병 부서에 배당된 예산도 2,500억 원 이상 깎였습니다.
 
폴록 교수 특히 WHO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C형간염과 같이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다시 말해 시장성이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엔 집중하면서 정작 아프리카나 개도국에 필요한 백신 개발엔 소홀하다고 비판합니다.
 
● 국적 제약사, '돈이 안 돼서' 에볼라 백신 개발 미뤄
 
이런 비판은 에볼라 백신 개발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캐나다 연구팀이 이미 2004년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이는 에볼라 백신을 개발했지만, 각국 정부와 대형 제약회사들은 시장성이 없다며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연구진은 2년 안에 인체를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늦어도 2011년쯤엔 최종 백신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에볼라가 발생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백신을 구매할 경제력이 없을 것으로 보고 개발을 미뤘단 겁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대 토머스 게이스버트 박사(미생물·면역학교수)는 "에볼라 백신시장이 컸던 적이 없다. 대형 제약사로선 어디에다 백신을 팔 수 있었겠느냐?"라며, 백신 개발이 지연된 건 제약회사 이윤 논리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마디로, 백신을 만들어도 제 돈을 받고 팔기 어려워 백신 생산에 나서지 않았단 겁니다.
 
결국, 이번 에볼라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두고도 위대한 성과란 찬사와 동시에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했다가 대유행을 거치며 선진국에서도 환자가 발생하자 뒤늦게 연구에 나섰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정신병자란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열쇠가 문제라고 생각해 열쇠를 바꾸러 간다면? TV가 켜지지 않을 때, 손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정형외과로 달려간다면? 적어도, 정상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자동차가 고장 났기 때문이고, 텔레비전이 켜지지 않는 것 역시 내부에 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고쳐야 하며 또한, 앞서 했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에볼라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좀 더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이번 백신 개발이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앞선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라는 ‘반성과 다짐’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류인플루엔자(AI), 메르스, 지카, 웨스트나일, 신종 플루, 사스 등 새롭고 낯설며 위협적인 전염성 질병들이 ‘제2, 제3의 에볼라 사태’를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병자란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하지만 치명적인 병원체들과 마주한 지금, 우리 다시 곱씹어봐야 할 충고입니다.
 
<참고 논문>
Effi cacy and eff ectiveness of an rVSV-vectored vaccine expressing Ebola surface glycoprotein: interim results from the Guinea ring vaccination cluster-randomised trial (Lancet 2015; 386: 857–66)
 
※ 취재과정에서 송대섭 교수(고려대 약학대학), 정규식·박진규 교수(경북대 수의과대학), 서상희 교수(충남대 수의과대학), 김우주 교수(고려대 구로병원) 최성균 박사(DIGIST)의 자문과 연구자료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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