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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아이의 제대혈, VIP들이 맞았다

[취재파일] 내 아이의 제대혈, VIP들이 맞았다
● 일생 딱 한 번뿐인 제대혈 보관

갓 태어난 생명, 우리 아이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을 '제대혈'이라고 부릅니다. 제대혈에는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뇌성마비 등 각종 난치병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생에서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제대혈 채혈, 산모들은 2백에서 3백만 원가량의 비용을 내고 보관을 결정합니다. 내 아이, 내 가족이 만에 하나 난치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하는 겁니다.
 
기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아이의 혈액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혹은 난치병 연구에 보탬이 되길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보관을 했건, 기증을 했건 현행법상 제대혈은 딱 두 가지 경우에만 쓰일 수 있습니다. 치료 목적과 연구 목적이 아니면 불법입니다.

● 내 아이의 제대혈, VIP들이 맞았다
차병원 기증 제대혈은행
국내에는 기증 제대혈 은행 5곳이 있는데, 차병원 제대혈 은행은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입니다. 2014년 2월 국가 기증 제대혈 은행으로 지정돼 정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제대혈 은행이 위치한 차 바이오 콤플렉스는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업무보고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차병원 그룹을 총괄하는 차광렬 회장 일가가 제대혈 주사를 미용과 건강증진 목적으로 맞았다는 내부 제보자의 폭로가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 [단독] 차병원, VIP에 '태아 탯줄 혈액' 불법주사…최순득도?

분당 차병원 3층에는 세포치료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이들이 지난해 1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제대혈 주사를 맞았다는 겁니다.

이들은 이름 대신 서류에 VIP 번호를 썼다고 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VIP 1: 차 회장 VIP 2: 차 회장 아내 VIP3: 차 회장 아내의 친언니>

*차병원 관계자 녹취 : "미용이나 건강증진이죠. 아무런 예약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와서 딱 맞고 가는데, 용돈 한 2,30만원 놓고 가는 건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제대혈 문제를 다룬 이후, VIP 관련 서류를 급하게 폐기하고 말맞추기를 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차병원 관계자 녹취(12/12): "자기네들은 다 임상실험 단계이기 때문에 내가 내 몸으로 그거 실험해봤다, 이렇게 얘기할 거라고. 뭐 말조심해라 이렇게 지시 나왔거든요. 이미 한 달 전에."

● 회장님, 누구 허락 맡고 제대혈 쓰셨나요?

다음날 찾아간 차병원의 해명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 회장이 '노화 방지를 위한 제대혈 임상 연구'의 목적으로 주사를 맞았다는 겁니다.

연구 대상자로 주사를 맞으려면,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에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차 회장은 등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백번 양보해 실수로 누락했다 쳐도 정식 대상자들과 똑같은 기간, 똑같은 내용의 연구 기록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요, 그것마저 없었습니다.

* 기증 제대혈 은행장 녹취(12/13) : "처음에 공식적으로 인롤(등록)된 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기록지를 남겨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연구목적으로 주사를 맞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는 겁니다. 게다가 정식 연구 대상자들은 1차례 주사를 맞고, 경과를 추적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차 회장만 1월에 두 차례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유는 역시 모르겠답니다.

* 기증 제대혈 은행장 녹취 : "회장님은 하여튼 그때 2번 맞으셨어요. 왜 그러셨는지 정확히 기억 못 하는데…."

● 임상시험연구센터에 사모님은 왜 자주 가셨나
분당 차병원 3층 줄기세포 임상시험연구센터
차 회장의 아내, 그리고 딸이 왔다는 사실에 대해선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최순득이 왔다는 제보에 대해선, 차병원은 병원의 명예를 걸고 절대 아니라는 입장인데요, 이 과정에서 회장의 아내, 사모님이 친언니랑 몇 번 왔었는데, 친언니를 최순득 씨로 오해한 거 아니냐는 해명입니다. 그동안 회장 아내가 맞은 사실에 대해서도 부인하다가 임상시험센터에 방문한 사실은 결국 인정한 건데요. 연구와 치료에 관계된 사람만 지문 인식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연구 대상자도 아닌 회장 아내는 그럼 왜 자주 갔었던 걸까요. ‘가족들이 제대혈 주사를 맞은 걸 인정하느냐’라는 물음에, 병원 측은 마지막엔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 임상시험이랍시고 친인척들까지 동원

연구 윤리에는 '이해충돌'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연구와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이 연구에 참여하면 결과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연구에 대해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 대상자들은 연구진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이뤄지는 게 상식적입니다.
 
그렇다면 병원을 총괄하는 회장은 어떨까요. 당연히 이해관계가 가장 컸으면 컸지 없다고는 말 못하겠죠. 그러니까 차병원은 최소한의 연구 윤리조차 어긴 겁니다. 이 부분은 본인들도 인정했습니다.

* 기증 제대혈 은행장 녹취: "회장님 같은 경우에는 기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니까 원칙적으로 하는 연구 윤리상으로는 안 되는 거긴 하죠."

병원 측에 따르면, 이번 임상실험에는 차 회장과 관련된 여러 사람이 포함됐습니다. 차 회장 아내의 언니, 그리고 친인척들 몇 명은 정식 연구 대상자로 등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분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연구에 참여해줄 수 있을까요?



● '이러려고 제대혈 기증했나'…철저히 조사해야

어제 보도를 접한 어머니들은 대부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내 아이의 피가 엉뚱한 곳에 쓰일 줄 몰랐다, 알았다면 기증도, 보관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입니다. 현행 제대혈법에는 제대혈이 올바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리 감독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제라도 철저한 조사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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