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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계속 되는 '미인도 위작 논란'…미술계 위작 스캔들 멈추려면

[리포트+] 계속 되는 '미인도 위작 논란'…미술계 위작 스캔들 멈추려면
19일, 검찰의 한 수사결과 발표가 큰 이슈가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25년 동안 위작 논란을 겪어 온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수사결과였습니다. 검찰은 미인도가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작가 본인도 자기 것이 아니라던, 저명한 프랑스 감정단도 위작이라던 이 '미인도'는 왜 진품이 된 걸까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미인도'를 둘러싼 25년의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 위작 논란의 시작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사업의 하나로 미인도를 순회 전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술관 측은 미인도의 아트포스터 형태로 만들어 판매했고, 다음 해인 1991년 4월 천 화백의 지인이 한 대중목욕탕에서 이 포스터를 보고 천 화백에게 알렸습니다.

이 포스터와 원작을 본 천 화백의 주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천 화백은 "내가 낳은 자식을 모를 리가 있나"라며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고 천경자 화백이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에 대해 "내가 낳은 자식을 모를 리가 있나. 내 그림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양측의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이 주장에 놀란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X-ray, 적외선, 자외선 촬영 등 과학적 기술까지 동원해 감정에 나섰습니다. 결국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천 화백의 진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묵살당했다고 느낀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렇게 위작 논란은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내가 미인도를 그렸다

8년여가 지난 1999년, 위작 논란은 다시 불거지게 됩니다. 동양화 위조범으로 알려진 권춘식 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겁니다.
권춘식씨는 1999년 검찰의 수사를 받을 당시 "화랑을 운영하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내가 직접 미인도를 그렸다"고 말해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형법상 적용할 수 있는 사서명위조 혐의의 공소시효(3년)가 만료됐다는 이유와 작품입수 시점과 위조 시점이 불일치 하는 등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해 천 화백이 별세했고, 지난 5월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가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가 6명을 고소·고발하면서 문제는 또다시 불거졌습니다. '미인도가 위작임에도 천경자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유였습니다.

■ 검찰은 왜 진품이라고 할까

검찰이 진품으로 판단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검찰이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미인도의 소장 이력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1977년 천 화백은 대공 대구 분실장 오 모 씨에게 미인도를 포함한 그림 2점을 제공했고, 이 중 미인도는 다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이 그림은 국가에 기부됐고, 검찰은 미인도가 재무부·문화공보부를 거쳐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입고된 이력이 명백히 파악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천 화백의 독특한 기법이 발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천 화백이 다른 작품에서도 사용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발견됐고, 독특한 채색 기법도 발견됐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위조했다고 주장했던 권춘식 씨가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검찰이 천 화백의 '미인도'를 보여주자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작품 수준"이라며 위작 사실을 부인했다는 겁니다.

"미인도의 진품 가능성은 0.00002%"라는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단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천 화백의 다른 진품을 분석하자 "진품 확률이 4%대"라는 결과가 나와 신뢰하기 어려웠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위와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미인도가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끝나지 않는 논란

25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천경배 화백 유족 측이 검찰의 판단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유족 측 공동변호인단은 중앙정보부 대구 분실장에게 선물했다는 말 자체를 천 화백이 먼저 꺼낸 얘기였고, 오 씨가 가져간 그림은 '미인도'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였다고 밝혔습니다. 또 김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유라고 해도 그의 몰수 재산 가운데 가짜 골동품이나 그림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사실이 진품의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압인선이 확인됐다는 등의 부분도 "송곳 같은 도구로 본을 뜨는 것은 동양화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변호인단은 또 진품조차 진품 확률이 4%대로 낮게 나왔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검찰 측 측정자가 임의로 계산해 만들어낸 자료"라면서 "(검찰은) 누가 이런 수치를 도출했는지 정확한 방법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단의 분석 결과 미인도는 '장미와 여인'을 보고 제작한 위작"이라며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위작 스캔들' 마침표 찍으려면

이처럼 위작 논란이 한 번 불거지면 그 진위를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25년이 흘렀지만 이렇게 모두 인정할만한 결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끊이지 않는 위작 논란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월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 대책'을 대응책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방안에는 미술품 위작을 전문으로 판별하는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 신설과 유통업자의 미술품 이력 관리 및 작품 보증서 발급 의무 등이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미술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입으로 위작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위작에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처럼 우리도 한 작가의 생애, 전시이력, 소장이력, 자료목록 등 모든 작품 내역을 담고 있는 '전작도록(카탈로그 레조네)'을 발간한다면 위작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그나마 올해 박수근, 이중섭의 전작 도록을 제작하기로 한 상탭니다.
해외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 내역을 담은 전작도록을 활발히 출간하고 있습니다.
연간 4천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미술품 유통 시장. 이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 보입니다. 

(기획·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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