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반복되는 흑역사…회장님들 정말, 안녕하신가요?

[취재파일] 반복되는 흑역사…회장님들 정말, 안녕하신가요?
회장님들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 때 '회장님 전상서'로 인사드렸던 '경제 신생아' 기자입니다. 아직 기업 기자실이나 홍보실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초짜 경제 기자' 생활중입니다. 기사는 타이밍인데, 청문회로 인사드릴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두번째  '회장님 전상서' 써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회장님들 출국금지' 기사가 나오더군요. 출국금지, 소환조사 같은 수사용어들과 회장님 존함이 같이 나오는 기사를 보니, 또 과거 회장님들과 '구면'인 일들이 생각나서 몇 마디 적어보겠습니다. (관련 기사 ▶ [취재파일] 회장님들 안녕하십니까…'경제 신생아'의 회장님 전상서)
 
● 최태원 SK 회장…억세게 운이 좋은 회장님, 이번엔?

외람되지만 저에게는 이래저래  '애증의 회장님'이신 최태원 회장님도 청문회 때 또 뵈었습니다. 처음 뵈었던게 벌써 5년전 일이네요. 지난 2011년 12월 19일, 초겨울 그날 서울중앙지검 앞마당에는 눈발이 살짝 날렸습니다. 방송기자들이 중계차 타기에는 꽤 쌀쌀했습니다. 방송사마다 뉴스가 중계차로 하루종일 실시간 중계되고, 신문 종합 1면에도 '도배'될 만한 큰 사건이 생기면 기자들은 "장이 섰다"고 합니다. 서초동 법조기자들에게는 '장이 선' 날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그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소환됐습니다. 회장님 개인적으로는 그날이 검찰 조사 네번째였고, 2003년 2월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뒤로는 8년 만에 검찰청에 출석하신 거였죠. 하루 종일 시시각각 회장님 소식이 모든 방송 뉴스의 톱뉴스가 될만한 날이었습니다. 낮 12시 정오뉴스 시작 때까지만 해도 회장님 소환 뉴스가 톱이었습니다. 후배기자가 "네, 최태원 SK 회장은 오늘 오전 9시반쯤에 이곳 검찰청에 나와..."라고 중계차 연결로 방송하는 중에, 갑자기 휴대전화통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타사 중계차는 방송도 안하고 갑자기 철수하더군요.

그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습니다. 온 나라 뉴스가 하루종일 북한 뉴스로 채워졌고, 회장님 검찰 소환 소식은 그렇게 묻혔습니다. 12시 뉴스를 끝내고 SBS 중계차도 철수했습니다. 때늦은 점심 먹으러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회장님 억세게 운이 좋으시네."

회장님의 억세게 좋은 '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죠? 당시 사건은 회장님께서 4백억원대 SK 계열사 자금을 빼내 개인 선물투자에 사용했다는 회장님 개인 범죄 혐의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동생 최재원 부회장만 구속되고 사실상 '주범'인 회장님은 오히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1년 가까이 걸린 1심 재판에서 검찰이 구형할 때 회장님의 '운'은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2012년 11월 22일, 법원에 들어온 젊은 검사 한분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평소 취재과정에서 알던 분이라 그렇게 굳은 얼굴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화를 억누르며 살작 떨리는 강한 톤으로 재벌 총수의 부도덕함을 질타하는 그의 목소리는 100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법조 기자 생활하면서 본 수많은 검찰 구형 중에 그렇게 길었던 건 이례적이어서 기억이 또렷합니다.

당시 구형 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 회장은 SK글로벌 사건에서 이미 조직적 증거인멸을 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사면됐다. 이를 통해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를 방해하고 증거인멸을 해도 된다는,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재벌의 모습, ‘리바이어던’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 검찰 “법 위의 재벌” 질타하면서도…최저형량 구형 (한겨레))

법정에 앉아 있던 2시간 동안, 검찰 수사팀에 대한 무언의 '동지애' 같은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당시 제 수첩에도 "법 위에 군림... 리바이어던... 재벌..." 이런 글자들이 쓰여졌던 것 같습니다. 구형하는 검사의 말이 마치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 같았다랄까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인이나 참고인에 대한 SK측과 회장님이 선임한 변호인단의 도를 넘는 진술 조작과 증거인멸, 이런 점을 취재하던 기자들에 대한 전방위 압박... 법정 앞에 계셨던 '애증의 회장님' 등뒤로, 쓰고 싶었던 기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최태원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강하게 회장님을 질타하던 검찰이, 갑자기 법정에서 회장님이 받을 수 있는 형량의 '최저'를 구형했습니다.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습니다. 당시 대법원 양형기준으로  횡령 배임액이 3백억을 넘으면 기본으로 징역 5년에서 8년, 정상참작이 이뤄져도 징역 4년에서 7년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질타하던 검찰이, 최저 형량을 구형했던 겁니다.

그 유명한 한상대 검찰총장의 '봐주기 형량'이었습니다. 회장님과 '테니스 친구'인 당시 한상대 총장이 최고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특수1부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최저형량인 징역 4년을 주문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당시에는 "운도 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회장님의 '억세게 좋은 운'  사태가 이른바 '검란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고, 한상대 총장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특수부 검사들의 정점에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검란 사태'로 결국 한상대 총장은 불명예 퇴진했고, 이후 대검 중수부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관련 기사 ▶ 밤새 검찰총장 비난 글…사퇴 목소리 확산 )

'억세게 좋은 운'은 그런데 법원에서 제동이 걸립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회장님에 대해 법원이 '징역 4년'을 그대로 인정해 법정구속한 겁니다. 회장님 측에서는 아마 검찰 단계에서 징역 4년 구형은 '선방'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보통 검찰 구형보다 법원에서 좀 더 낮게 나오기도 하니까,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노렸을텐데 말입니다. 

회장님이 역술인의 조언대로 천억원대 주식투자를 했다가 원금도 못 건졌던 일, 과거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SK와의 불행한 인연이 이때 쯤부터 싹을 피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회장님의 '징역 4년 법정구속'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됩니다. 범죄 혐의가 워낙 명확했어서일텐데요. 그래서 SK는 '사면'이라는 또다른 길을 찾아 헤맸던 건 아닐까요?
최태원
지난해 8월 회장님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사실상 원포인트 8.15 특사로 구치소를 나오시게 됩니다. 출소 사흘만에 첫 대외 방문지도 박근혜 정권의 핵심 사업이었던 창조경제혁신센터였고요. 최순실 일당이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돈을 달라고 접촉했던 기업 중에 하나가 SK이기도 하지요. (관련 기사 ▶ 총수들 "靑 요청, 거절 어려웠다"…대가성 부인)

며칠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님, 최태원 SK 회장님, 신동빈 롯데 회장님 세 분이 특검의 '출국금지 3인방'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지난번 인사드린 정몽구 회장님처럼, 최 회장님께서도 특검 수사팀장인 윤석열 부장검사와는 구면이시죠? '징역 4년 구형'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당시 특수1부를 이끌었던 부장검사가 윤석열 검사였습니다.

오늘 조간 신문을 보니, 지난 2003년 SK 주식 부당거래 사건 당시 회장님을 구속했던 한동훈 부장검사도 이번 특검팀 기업수사를 전담한다고 하네요. 모두들 '검란 사태' 이후 해체된 대검 중수부가 배출한 대표적인 '특수통'이시지요. 최순실 사건의 파장으로 봤을 때 이재용 부회장 이야기를 먼저 했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과거 기억 때문에 회장님께 먼저 인사드리게 되었음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특검 출석하실 때 또 뵙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