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국민은 매주 토요일 술잔이 아닌 촛불을 들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모두 회식을 자제하자는 분위기지만, 아쉬운 마음에 일부 사람들은 지인들과 조촐하게 모여 ‘촌철살인 건배사’로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랩니다.
이렇게 건배사는 우리 일상의 고단함을 덜어내는 기능을 합니다. 모임의 참석자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감정을 동화시키죠. 재치 있는 건배사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국민은 추악한 ‘국정농단 사태’를 배꼽 잡는 ‘국정농담 사태’로 승화시켰습니다. 건배사에 국민의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건배사가 고품격일 땐 이렇게 분위기를 띄우지만, 그렇지 못할 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
빗발치는 여론에 결국 사임했습니다.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길'이라는 뜻의 '오바마'가 식상하다면, 지금 시국에 맞춰 ‘오직, 바라건대, 마음에 드는 대통령으로’라고 외치는 것이 더 재치있는 건배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를 뜻하는 ‘거시기’는 아슬아슬한 유머이기는커녕 불쾌할 수도 있죠.
‘성공을 기원하며, 발전을 기원하며’,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같은 건배사는 줄여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농담은 철저히 권력이나 위계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팀장이나 부장이 여성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남녀를 떠나, 우리나라 조직 구조상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농담을 던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농담이라며 특정 집단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건배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는 사람은 고민이죠. 식상한 건배사를 외쳤다가는 분위기를 망칠 수 있고, 센스 없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건배사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ABC로 정리해봤습니다.
굳이 건배사에서 감사의 말로 시작하는 것이 식상하고 구태의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격식 있고 겸손해 보이는 이미지는 남길 수 있습니다. 자기를 소개한 후 감사의 말, 한두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한번 적용해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ㅇㅇ부서의 ㅇㅇㅇ입니다. 우선 제게 건배 제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산 넘어 산이었죠. 그래도 올 한 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우리 부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또 내년에는 더욱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의미로 '해피뉴여(이어)'로 건배하겠습니다.
해가 지고 동틀 때까지,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한 당신은
뉴규? (바로)
여러분입니다!
'해피'하면 '뉴여'라고 외쳐주세요!
해피, 뉴여!"
(기획·구성: 홍지영, 송희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