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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알레포, 함락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시리아 알레포가 함락 직전에 놓였습니다. 아니 이 글이 게재될 때는 이미 함락 뒤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달 15일부터 알레포 탈환작전을 개시했습니다. 도시를 포위해 보급로를 끊고 정수시설과 병원을 폭격해 반군지역을 폐허로 만든 뒤 손쉽게 진격하고 있습니다. 오늘 12월 12일 기준으로는 정부군이 반군이 장악해온 알레포 동부의 98%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함락은 시간 문제인 셈입니다.

● 알레포 : 저항과 비극의 아이콘

시리아 알레포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이은 제 2의 도시로 경제 수도로 불려왔습니다. 2012년 반군이 점령한 뒤 줄곧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곳입니다. 저항의 중심답게 그 동안 시리아 정부군의 통폭탄은 대부분 알레포에 떨어졌습니다. 셀 수도 없는 폭탄이 알레포 하늘에서 투하됐고, 그로 인해 수만 명의 민간인이 반군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학살됐습니다. 그래서 알레포는 지구촌에 시리아 내전의 참상과 정부군의 학살 만행을 알리는 매개체였습니다. 피와 흙먼지로 범벅이 된 채 겁먹은 듯 울지도 않던 ‘옴란’, 폭격받은 건물에서 구한 갓난아기를 안고 구급차 안에서 펑펑 울던 ‘하얀헬멧’ 대원, “세계는 이 소리가 지금 들리나요?” “제발 폭격을 멈춰달라”며 7살의 눈으로 본 내전의 참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온 ‘바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인공과 이야기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고 극악한 학살극에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피범벅 된 채 울지 않는 옴란
● 알레포의 반군은 누구?

알레포의 반군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1월 26일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은 민주화 시위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시리아에선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파의 아사드 가문의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40년 넘게 독재를 휘두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랍의 봄이 스쳐간 튀니지와 리비아, 이집트, 예멘까지 다 독재 정권 타도가 시민혁명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시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은 협상이나 하야 대신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학살하는 걸 택하죠. 그러면서 시위대도 총을 들고 무력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독재에 반대하는 일부 장교와 군인도 시위대편에 서게 되고 조직적으로 대항하면서 이른바 ‘반군’이라는 주체를 형성합니다. 독가스까지 써가며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유엔은 물론 미국과 서방은 강력하게 비난하고 축출대상으로 삼아왔고 은밀하게 ‘반군’을 지원하게 됩니다. 지난해 중반만 해도 알 아사드 정권은 서방의 지원을 받던 반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었습니다. 아사드 대통령이 군인이 부족해 싸우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 그러던 시리아에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바로 러시아입니다. 지난해 9월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전격적인 군사개입을 단행합니다. 러시아의 막강한 군사지원에 힘입어 알 아사드 정권은 쉽게 내전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이러면서 시리아 내전은 서방(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형식을 띄게 됩니다.

서방과 러시아는 IS 격퇴가 최우선이라며 휴전 협약도 체결했었습니다. IS와 테러리즘을 제외한 반군지역에 폭격을 중단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알레포는 빠졌습니다. 알레포엔 소위 ‘온건반군’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리아 반군은 수십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알 카에다 지부였던 알 누스라 전선도 그 중 하나인데 알레포 반군의 한 축을 형성합니다. 이들은 후에 알 카에다와 결별을 선언하고 이름도 ‘자바트 파테알샴’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테러리즘으로 지정돼 휴전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시리아와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알레포에 대한 무차별 공습과 학살을 벌여왔습니다. 

● 함락되면 평화로울까?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이 심해지고 시가전이 치열해지면서 알레포 동부를 떠나는 주민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알레포 동부엔 20만~25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의 파상공세가 시작된 지난달 15일 이후 지금까지 13만 명 정도가 반군지역을 떠났습니다. 아직도 10만 명 정도가 알레포 동부에 남아 있습니다. 주민들은 정부군의 폭격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을 때는 아사드 정권을 저주했습니다. 알레포를 탈출하는 지금은 반군이 떠나는 주민을 사살하고 위협한다고 비난합니다. 이렇듯 주민에겐 사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지금 거의 전쟁이 끝나갑니다. 그러면 모두 행복할까요?
피란민들
보복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승자의 이름에선 ‘청산’이라고 합니다. 반군은 차지하고서라도 민간구조대 ‘하얀헬멧’은 어떻게 될까요? 하얀헬멧의 영웅적인 활동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의 폭격에서 지금까지 6만 명을 구해낸 이들입니다. 하지만, 하얀헬멧의 구조 활동은 시리아 정부의 무차별 학살 행위의 증거와 다름없습니다. 처참한 폭격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구조하는 모습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되고 이는 세계인들로 하여금 알 아사드 정권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지난 9월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인터뷰는 하얀 헬멧에 대한 증오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AP통신 기자가 “하얀 헬멧이 노벨평화상을 타길 바라느냐?” 고 묻자 알 아사드는 대뜸 “하얀 헬멧이 시리아를 위해 한 일이 뭐냐?”고 되묻습니다. 이어서 “하얀헬멧은 인도주의의 가면을 쓴 정치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립니다. 시리아 정부의 눈에는 하얀헬멧이 반군의 비호세력, 선전도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알레포가 함락 위기에 놓이면서 당장 하얀 헬멧과 구호활동가, 심지어 의료진조차 정부군에 보복을 당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얀 헬멧은 ”정부군의 수용소에 끌려가 고문과 처형을 당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구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레포의 참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온 7살 소녀 바나 알라메드의 경우를 보죠. 바나는 얼마 전 정부군의 포탄에 집을 잃었습니다. 이후 자신이 어디서 지내고 있는 지를 일체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부군이 자신의 가족을 반군 동조자로 여기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트위터에는 “군인에 곧 붙잡혀 갈거예요.” 처럼 불안감 가득한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바나 뿐이 아닙니다. 소셜미디어에는 폭격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고 오열하면서 알 아사드 정권을 비난하고 저주한 주민의 영상이 아주 많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잔혹함을 말한 것이지만 정부군의 눈에는 ‘반군 동조자’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최근 정부군에 투항한 알레포 주민 가운데 수백 명이 실종됐다는 유엔의 보고가 있습니다. 모두 30~40대의 남성입니다. 또 유엔은 알레포 동부에 어린이 11명을 포함해 82명의 주민이 사살된 채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모두 정부군이 탈환한 지역입니다. 희생자들은 길에서 정부군이나 친정부세력을 보고 집으로 도망치려다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시리아 내전의 운명은?

러시아와 미국은 알레포에 남은 반군과 주민의 안전한 철수 문제는 논의중입니다. 일부 외신은 미국이 알레포의 반군에게 안전한 퇴로를 보장하겠다며 48시간 안에 알레포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알레포가 함락되면 반군은 이들리브를 중심으로 북서부 지역과 시리아 남부 데이에라 지역만 남게 됩니다. IS보다는 자신의 존폐를 위협하는 반군 처치가 우선인 알 아사드 정권의 칼은 바로 이들리브를 향할 게 뻔합니다. 이들리브 지역은 알레포가 함락되면서 정부군에 둘러 쌓인 형국이 됩니다. 아마 알레포와 똑같은 작전이 반복될 겁니다. 도시 주변을 포위해 보급을 끊어 고사직전까지 몰고간 뒤 손쉽게 밀고 들어가 최후의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입니다. 이미 이들리브에 대해선 러시아가 연일 공습을 퍼붓고 있습니다. 남부 데이에라 지역의 반군은 세력이 미비합니다. 내전의 주도권은 완벽히 시리아 정부로 넘어간 상태에서 반군의 회생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다만, 이들리브 전투도 알레포처럼 또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게 뻔하다는 게 걱정입니다.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중동의 역학구도는?

반군의 패배, 정부군의 승리는 중동 역학구도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합니다. 미국과 수니파 중심의 구도가 러시아와 시아파 중심으로 이동할 겁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체제전복 시도를 중단할 것이며 정권과 사람을 전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IS와 같은 이슬람 급진 테러세력을 퇴치하는 노력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어떤 국가와도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즉,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축출에 더 이상 관여를 하지 않겠다. 고로 반군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 IS 격퇴라는 목표를 위해선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손을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시리아 알 아사드뿐 아니라 러시아도 의미합니다. 미국의 외교를 책임지는 국무장관에 친(親) 러시아 성향의 석유 거물인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를 낙점한 것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렉스 틸러슨은 러시아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미국이 중동 분쟁에서 발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러시아의 입지는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시리아 말고는 중동의 거점이 없었던 터라 시리아의 시아파 세력을 발판으로 새로운 러시아 벨트를 형성하려고 할 겁니다. 지중해와 맞닿은 시리아와 역시 시아파인 이라크를 거쳐 반미성향이 뚜렷한 이란까지 중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친러벨트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진 터키까지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터키는 수니파지만 사우디와 이집트 등 주요 이슬람권에서 배척당하는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수니와는 좀 다른 길을 가는 터키까지 동맹을 맺게 되면 러시아는 사실상 중동의 절반을 영향권 안에 두게 됩니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 대항할 든든한 동력을 확보하는 겁니다.
패러디 사진
● 전쟁범죄의 단죄는?

미국과 서방이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축출을 요구한 것은 비난 독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알 아사드는 학살자입니다. 하야 요구 시위대에 탱크를 앞세워 발포를 했고, 반군을 소탕한다는 빌미로 반군 장악 지역에 재래식 대량살상무기인 통폭탄을 마구잡이로 투하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염소가스를 이용한 화학무기까지 사용했습니다. 시리아에선 IS보다 정부군에 학살된 민간인이 세 배나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무고한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전쟁범죄입니다. 오죽하면 시리아 난민들은 알 아사드만 쫓아내주면 IS는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할 정도로 아사드정권을 증오합니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의 그림엔 IS보다 헬기와 탱크를 앞세운 정부군의 모습이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이런 알 아사드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였고, 시리아를 무조건 감싸고 돈 러시아의 보호도 문제였습니다.

이제 시리아 내전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군의 패전은 학살자 알 아사드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합니다. 국제사회는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자국민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원흉이자 학살의 주범에 어떤 단죄도 내리지 못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민주화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희생에도 시리아의 시계는 6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장작 줍는 아이들
● 폐허된 시리아, 누가 복구해야 하나?

시리아 정부로 내전의 향방이 기울면서 폐허가 된 알레포와 시리아 곳곳의 복구 문제가 대두됩니다. 세계은행 추산 시리아 재건비용은 1조 8천억 달러, 우리 돈 200조 원이 넘습니다.(내년 대한민국 예산이 400조 원입니다.) 그것도 지난해 4월 발표된 내용이니 1년 반이나 지나 더 황폐화된 상황을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트럼프가 중동분쟁에 달러를 헛되이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터라 시리아 재건을 감당할 능력을 가진 곳은 유럽연합이 유일해 보입니다. 하지만, 유럽 연합은 학살자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안이 ‘파괴자 복구비용 부담 원칙’ 입니다.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 편에 서서 융단폭격을 했으니 너희가 파괴한 건 너희가 알아서 책임지라는 겁니다. 특히, 러시아가 가장 많이 부숴놓은 알레포의 복구는 더욱 러시아가 알아서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러시아가 무기는 넘치겠지만 돈이 넘치는 나라는 아닙니다. 각종 경제제재로 자기집 곳간도 비어가는 상황입니다. 그런 러시아가 시리아 복구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합니다. 러시아는 EU와 이란, 중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끌어들여 복구계획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과연 EU와 사우디 아라비아가 러시아의 말을 들어줄 지는 미지숩니다. 학살자의 인과응보입니다. 내전이 끝나고 IS가 섬멸되더라도 폐허로 변한 시리아의 회복은 아주 아주 더디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내전이 종식된다 하더라도 시리아인이 행복을 되찾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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