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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뇌물죄 적용의 가장 높은 벽 '박근혜 대통령'

검찰은 지난 11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 국정농단 세력에게 뇌물죄 대신 직권남용과 강요죄를 적용하는 것으로 수사의 종지부를 찍은 채 특별검찰에 자료 일체를 이첩했다. 검찰 수사 결과는 미르-K스포츠 재단 등에 기금을 납부한 16개 재벌은 박근혜 대통령 등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기금을 냈다는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갑을 관계' 구도 속에 기업들은 '을', 한마디로 피해자라는 말이다. 검찰은 "뇌물죄 부분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여지를 뒀지만, 이를 두고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론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도 이런 시각이 반영돼 있다. 탄핵소추안은 박 대통령을 포함해 국정농단 세력과 기업이 주고받은 건 뇌물로 명시하고 있다. 전형적인 수뢰 사건이란 주장이다. 검찰의 공소장과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한 셈이다.

●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었다"…대통령 독대 뒤 해결된 기업 현안 

정치권을 비롯해 법조계 일각에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상식에 입각해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재단 설립 전인 지난해 7월 24~25일 양일 간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16개 대기업 총수와의 단독 면담은 양측은 서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충분한 교감을 나눈 자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기업들은 독대 전 '당면 현안 자료'를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기업이 원하는 바를 밝혔다. 이때 제출된 자료에는 '오너 총수의 부재로 인해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 전략 수립이 어렵다'(SK, CJ), '노사 문제로 경영 환경이 불확실하다'(현대차)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업들이 제출한 당면 현안은 대통령 독대 뒤, 해결됐거나 해결 시도가 있었다. 총수 부재의 어려움을 호소한 SK와 CJ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그룹 총수인 SK 최태원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 됐다. 또 박근혜 정부는 지난 1월,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양대 지침을 발표하는 등  친기업적 노동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대가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검찰은 "대통령의 합법적 통치행위로 금품과 연관성은 없다"며 "대가 관계를 입증할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삼성에 뇌물죄 적용할 수 있을까…정부와 '주거니 받거니'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죄가 성립하고, 대통령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 여부는 범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기업들의 기금 납부를 곧장 뇌물죄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포괄적 뇌물죄'다. '대통령은 광범위한 직무 범위를 가진다'는 특수성을 감안한 판례다. '기업의 명시적 청탁'과 '청탁에 대한 대통령 보답'이 특정 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경우, 금품이 전달된 사실 만으로도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 판례에 근거하면 16개 기업 모두에게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판례에 더해 구체적인 대가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과 증거나 드러난 기업들이 있다. 삼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26일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겠다고 발표했다. 합병비율은 '1(제일모직):0.35(삼성물산)'로 산정됐다. 시장에선 이 비율이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조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였고, 삼성물산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주식을 4% 넘게 가지고 있었다. 합병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형태로 이뤄지면 이재용 부회장은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때문에 이번 합병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작업"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헤지펀드인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은 삼성 측이 추진하려는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며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삼성은 애초 비율대로 합병을 성사 시키기 위해 주주들과 개별적 접촉을 하며 전방위적으로 뛰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찬성과 반대의 대립 속에 합병의 성패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냐에 달려 있었다.

키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은 결론적으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공단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수장, 당시 문형표 장관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에게 "삼성이 원하는 방식대로 합병에 찬성해 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공단의 투자 자산을 실제로 운용하는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 이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행사위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위원장을 겸했던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투자위원회가 결정한 유일한 사례였다. 이를 두고 서울고법은 지난 5월 "합병 비율이 잘못 산정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 판단 대로라면, 공단은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합병에 찬성한 것이 된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공단은 왜 이렇게 무리하게 합병에 찬성했을까. 특별검찰은 삼성과 최순실 씨 측과의 금전 거래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은 합병 즈음부터 최순실 측에게 280만 유로, 우리돈 37억 원을 송금하는 등 모두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기금(204억 원)과 별도의 금액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이뤄졌고, 특검은 이 돈을 최순실씨가 정부를 움직여 합병에 도움을 준 대가로 의심하고 있다.

● 수사 도중에 주고받은 70억 원…롯데와 정부

뇌물죄 처벌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또 다른 기업은 롯데그룹이다. 정권 초부터 롯데그룹은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사정기관을 중심으로 나왔다. 실제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인지 부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승승장구한 롯데에 대해 로비 첩보를 생산하며 수사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나서기 전, 롯데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지난해 초부터 롯데그룹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급기야 형제 간 고소 고발 전을 이어갔다. 검찰은 양측이 쏟아내는 정보를 기민하게 취득했고, 분쟁이 마무리되는 대로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해가 바뀌면서 형제 간 분쟁은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지난 3월 6일, 신동빈 회장은 일본 주총에서 형을 상대로 한 경영권 분쟁에서 사실상 승리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3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독대했다. 독대 후 박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 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돈 외에 추가로 롯데그룹이 돈을 내놓기로 했다는 의미였다.

이후 롯데그룹은 지난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6개 계열사를 통해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 송금했다. 당시 검찰은 롯데그룹의 비리 혐의를 포착해 내사를 벌이고 있었던 시기로, 언론을 통해서도 이런 사실이 수 차례 보도된 뒤였다. 최 씨와 롯데 모두 수사가 진행되던 시기 수십억 원대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돈이 전달되고 며칠 뒤인 지난 6월 2일 검찰은 롯데호텔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했다. 1주일 뒤인 9일, K스포츠 재단은 롯데그룹에 70억 원을 반환하겠다는 연락을 했고, 다음날(10일),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건넸다가 무위로 그치자 돌려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금품 반환 다음날 전격적인 본사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수사 기밀이 롯데에 넘겨진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70억 원의 성격을 두고 또 다른 대가 관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롯데는 지난해 11월, 롯데 월드타워의 면세점 사업권을 박탈당했다. 롯데는 사업권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지만, 면세점 사업자는 이미 포화상태로 재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관세청은 지난 4월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 면세점 4개소를 추가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롯데 월드타워도 신청했다.

● "기업인 사면 반대" 약속 어긴 박 대통령…SK 총수 사면 뒤 101억 원 출연

SK그룹도 향후 뇌물죄 적용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지난해 11월, 롯데와 함께 워커힐 면세점 사업권을 상실한 SK그룹도 사업권을 다시 따내기 위해 재단에 기금을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워커힐은 관세청의 면세점 4개소 추가 선정 계획 발표 이후 면세 사업자 신청을 한 상태다.면세점 특혜 대가 외에도 대가성이 드러나는 유력한 정황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최태원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이다.

지난해 7월 24일, 김창근 SK 이노베이션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기업 범죄로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상태였다. SK의 최대 현안은 최 회장의 사면이었다. 당시 재계에서도 최 회장의 사면을 위해 다각도로 정부에 민원을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과거 같은 범죄로 처벌된 뒤, 한 차례 특별 사면을 받은 전례가 있었고, 게다가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업인 사면에 대한 반대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독대 2주일 뒤인 지난해 8월 13일, 자신의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최태원 회장을 특별 사면했다. 이후 SK그룹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101억 원을 출연했다.
SK의 경우엔 다른 기업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된 사건이기에 특검은 더욱 주목하고 있다. 사면의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에 다른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아무리 무리한 사면이었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자신의 고유 권한을 행사했다고 진술하면, 이를 반박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뇌물죄 입증의 최대 고비는 결국 '대통령'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 자료는 특검에 인계했고, 뇌물죄 적용 여부는 특검의 몫"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검찰이 소극적인 법해석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뇌물죄 적용을 위해선 박 대통령 조사가 필수적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하면서 검찰은 보수적인 법해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 뿐이었다. 안종범 전 수석 등 고위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비록 특검은 검찰과 달리 뇌물죄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방어 논리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나라 경제를 위한 결정,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방어했을 때 특검은 이를 반박할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뇌물 수사의 최대 난관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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