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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말(馬)로 얽힌 '삼성-최순실' 검은 커넥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선수는 2014년 9월 20일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메달을 딴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정유라는 자신을 둘러싼 '공주 승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SBS 취재진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공주라는 데 기분 좋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공주 승마' 논란은 5개월 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정유라 승마 특혜 의혹을 일컫는 것이었다.

정유라의 금메달 획득 이전, 승마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승마협회 회장사는 한화그룹이 맡고 있었는데, 아시안게임 직전 내홍을 겪으며 퇴진이 거론됐던 상황이었다. 2014년 4월 8일, 안민석 의원은 정유라 관련 의혹을 국회에서 처음으로 제기했다. 바로 다음날인 4월 9일, 최순실 씨 측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살생부'에 자신의 이름이 올랐던 강원, 전북, 전남 승마협회 회장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이들의 기자회견에서 승마계 내부 사태와 관련해 '(정유라의 아버지) 정윤회 씨가 개입된, 사적 채널에 의한 비정상적인 통치 행위'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단순한 승마계 내부의 알력 다툼이 아니란 주장이었다. 그러자 같은 날 오후, 야당 의원의 폭로 하루 만에 당시 승마협회 회장사였던 한화그룹은 회장사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4월 23일, 한화그룹은 인천아시안게임까지는 책임 지겠다며 회장사에 복귀했다. 이 논란의 보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각에선 이 시기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날도 공교롭게 그즈음이다. 김종 당시 문체부 차관은 YTN 기자에게 "대통령으로부터 세월호 이튿날(4월 17일)도 체육 개혁 오더가 내려왔다"며 이에 대한 취재 협조를 요청했던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체육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른바 '박원호 살생부'는 결국 정유라를 돕기 위해 승마협회 등에 칼을 대려한 최순실 씨 측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뒤엔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승마계는 다음 회장사를 누가 맡을 지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때 한화그룹 입장에선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바로 '삼성그룹'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과 한화가 방산-석유화학 빅딜 협상을 할 때, 승마협회를 삼성이 가져가 달라고 한화 측이 얘기한 적이 있다"며 "한화는 삼성에게 승마협회를 넘기기 전까지 매우 골치 아파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골칫덩이' 승마협회를 맡았을까.

승마협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열린, 2014년 10월 전국체전에서 이미 최순실 씨는 승마 선수 등에게 다음 회장사로 '삼성'이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한 삼성의 공식 해명은 "2014년 11월에 있었던 한화와의 계열사 빅딜 과정에서 한화 측 요청으로 승마협회를 떠맡았다"는 것이다. 삼성의 해명대로 라면 최순실 씨는 '삼성-한화' 간 승마협회 논의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최순실 씨는 또 당시 승마 선수들에게 "재단을 만들어서 승마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복수의 승마협회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당시 소문으로만 떠돌던 재단은 2016년 1월 'K스포츠재단'이란 이름으로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K스포츠재단의 법인 등기부등본은 재단의 목적으로 '인재 발굴 국가대표 선수로 양성 및 지원 사업', '한국 체육 인재의 국제대회 참가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다.

● 꼬리를 무는 의혹…삼성의 정유라씨 지원

"'삼성이 회장사로 들어올 예정'이라던 최순실 씨의 말은 이듬해 현실이 됐다"고 승마협회 관계자들은 말했다 . 삼성이 2015년 3월 승마협회 회장사로 공식 취임한 것이다. 2010년 승마협회 회장사를 그만 둔 지 5년 만의 복귀였다. 그리고 이후 삼성과 최순실 씨 측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11월 8일, 국정농단 사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을 압수수색했다. 삼성 본사가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8년 만으로 압수수색 대상에는 그룹의 콘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차장인 장충기 사장,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이자 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사장, 승마협회 부회장인 삼성전자 황성수 전무 사무실이 포함됐다. 삼성이 정유라 씨의 해외 훈련 비용을 지원하는 등 삼성과 최순실 씨 간의 커넥션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2월 10일, 스페인 스포츠신문 ‘톱이베리안(topiberian)’은 스페인의 그랑프리 기수인 모르간 바르반콘이 자신의 명마인 '비타나 V(five)'를 삼성 승마팀에 팔았다는 기사를 처음 실었다. 삼성이 도쿄 올림픽 준비를 위해 말을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5일 뒤인 2월 15일에는 유럽의 승마 전문매체인 ‘유로드레사지(Eurodressage)’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됐다. "삼성이 구입한 비타나 V를 정유라가 탈 것이며, 삼성이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독일에 승마장을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말과 승마장을 구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외신의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삼성이 최순실 씨가 소유한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를 송금하고, 그 돈 가운데 상당액이 비타나 V를 구입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의 해명은 거짓말이 됐다. 특히, 삼성은 모두 280만 유로(37억 원 상당)를 4차례에 걸쳐 송금했는데, 이 4차례 가운데 첫 송금의 시점이 코레스포츠나 전신 마인제959조차 설립되기 전인 '2015년 6월'이란 의혹도 보도됐다. 이는 결국 최순실 씨에게 직접 송금한 것이라는 의혹인 셈이다. 하지만 삼성은 국회에 낸 답변 자료에서 '2015년 9월 14일, 81만 유로를 시작으로 모두 282만 유로를 독일 코레스포츠에 송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승마장을 직접 구입한 모나미 측이 승마장 구입 전후 삼성 측과 90억 원 대 사무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이 모나미를 앞세워 승마장을 우회 구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황이다.

이후 삼성은 줄곧 정유라 씨와 관련해 지원한 돈은 280만 유로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319만 유로가 삼성전자 독일 법인 계좌로 추가로 송금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 돈이 정유라 씨의 독일 승마 훈련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은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 삼성의 정유라 씨 지원…‘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로비 자금이었나?

삼성은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로서 역할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승마협회 실무진은 삼성이 지원한 280만 유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삼성이 최순실 씨 측에게 전달한 돈은 승마협회 회장사 자격이 아니라 ‘삼성’이 직접 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박영수 특별검찰은 삼성이 최순실 씨 측에게 전달한 금품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뇌물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삼성의 최순실 씨 측에 대한 첫 자금 지원은 합병이 성사된 2015년 7월 즈음에 이뤄졌다.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재용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한 삼성 그룹의 중대 이슈였다는 게 정설이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원활한 그룹 승계를 위해선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비율(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3500885, 즉,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삼성물산보다 3배 정도 크다는 의미)로 합병이 성사돼야 했다. 그래야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된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통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합병 이전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은 42.19%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1.41%에 불과했다.)

그런데 변수가 있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지니먼트(이하 ‘엘리엇’)였다.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제일모직에 약 3배 정도로 유리하게 된 합병 비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합병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합병의 키맨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는 청와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 상당수의 시각인데, 국민연금은 수상쩍은 흔적을 남기며 삼성 총수 일가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당시 국제적인 의결자문기구인 ISS는 삼성이 추진하려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국민연금 측에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ISS는 적정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83으로 분석했다. 실제 합병 비율보다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더 높게 본 것이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도 마찬가지로 반대 의견을 내면서 국민연금 측은 삼성 측에 합병 비율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론은 삼성 측이 제시한 합병 안에 대한 찬성이었다. 올해 서울고법은 "국민연금이 찬성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비율이 잘못 산정됐다"고 결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수백억 원 대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합병에 찬성한 것이 된다.

국민연금-삼성-최순실의 '대가성 3각 고리' 의혹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삼성은 국민연금의 동의를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측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4년 7월 17일,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주주총회가 끝난 뒤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했다. 현재 특검은 국민연금의 결정의 배경에 최순실 씨,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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