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017년 4월의 봄을 기다리며

류란, 조을선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6.12.06 07:50 수정 2016.12.06 11:13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2017년 4월의 봄을 기다리며
2017년 4월의 봄을 기다리며
                                    
  조을선 기자 sunshine5@sbs.co.kr

●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4월

겨울의 잔상마저 사라진, 봄의 한 가운데. 4월은 어느 때보다 햇살과 바람이 가장 싱그러운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내게 4월은, 한 조각의 햇살과 바람마저도 피하고 싶었던, 그저 안으로 숨어들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매년 4월이 오면 괴로움 속에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날들도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로부터 시간이 멀어질수록 세월호 사태는 나의 일상에서 조금씩 잊혀갔다. 시시각각 침몰하며 변하던 세월호의 모습, 실종자와 유족들의 이름과 얼굴, 침몰 7시간 만에 노란 점퍼를 입고 나타난 대통령의 모습까지, 너무나도 선명했던 그날들의 모습은 조금씩 희미해져갔다. 어디선가 "세월호의 '세'만 들어도 지겹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조용히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 그게 어쩌면 모두에게 마음 편한 일일 거라는 착각 속에서 자위하면서.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아득해질수록 거꾸로 괴로움은 납덩이처럼 더 무거워졌다. 4월이 오면, 화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세월호처럼 괴로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기자로서의 무기력감이 갖는 무게였을까. 양심의 가책이 주는 무게였을까.

팽목항_640● 일말의 것이라도 답하기 위해, 다시

2017년에도 잔인한 4월은 어김없이 다가올 거다. 세월호 사태 3주기를 또다시 그렇게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4월 16일, 위로하는 기사 몇 편 나간 것으로 그날을 기념하고 싶지 않았다. 기자이기 전에, 그날의 사태를 함께 목도한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그렇게 무기력하게 숨어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유족들, 남겨진 사람들이 전하지 못한 말을 해야만 했다. 진실을 바라는 시민들을 위해 일말의 것이라도 답해야 했다. 혼자 용기와 주저 사이를 오갈 때 같은 고민을 하는 류란 선배를 만났다. 함께 취재파일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다하지 못했던 책임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해보기로 약속했다.

고백하자면, 뚜렷하게 새로운 진실을 찾았기 때문에 시작하는 연재는 아니다. 지금은 취재부서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한계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용기를 미룰 수는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선체 인양과 실종자 문제, 침몰 진상 규명 문제, 이른바 세월호 7시간으로 일컬어지는 대통령의 초기 대응 문제, 민간 잠수사들에 대한 보상 거부 문제, 유족들의 트라우마, 특조위 조사 중단 문제 등 아직 남아있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소소한 팩트든, 감상이든 머뭇거리지 않고 기록해나가려고 한다. 이 작업이 그저 자위에 그치지 않았으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함께 희망을 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2017년 4월엔, 봄 햇살과 바람을 그대로 마주하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몇 번 세월호에 대한 연재물과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어느 것은 시청자에게 무사히 전달됐고, 어느 것은 노트북 바탕화면에 한참을 머물다 사라졌다. 삭제된 기사들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났다. 누가 압력을 넣은 것도, 핀잔을 준 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내 판단이었다. 홀로 작아진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흔히들 말하는 ‘피로감’이었다.

‘시청자는 이제 세월호 기사를 피로하게 느껴’ ‘달라질 게 없는데 계속 언급하는 게 유족들에게 무슨 실익이 있을까?’ 같은 말을 들을 때면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위축됐다. 세월호 기사는 어떻게 써도 ‘감성적인 접근’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고백컨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물리치지 못한 데엔 나 역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이유가 크다. 이미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재구성한 기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어지는 재판과 특조위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매일매일 주어진 업무에 시달리는 내가, 이제는 다른 출입처에 나가고 있는 非사회부 기자인 내가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세월호가 잊히지 않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 세월호 추모욕심 내지 않기로 했다. 당장 2년 6개월 전 그날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뀐 유족들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까지 천천히 들으려 한다. 그동안 틈틈이 취재하고 있던 걸 기사로 만들고,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유족의 안부도 전하려 한다. 

이번 만큼은 기사가 바탕화면에서 흔적도 없이 ‘침몰’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예 조을선 기자와 이름을 걸고 시작했다. 매주 1~2차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쓰기로 했다. 수차례 고민하고 상의했던 만큼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일 없도록 서로 감시하는 역할을 잘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화낸 시간이라면...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