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무성-추미애, '여의도 호텔 추격전' 뒷이야기

12월 첫날 아침 댓바람의 해프닝과 '촛불 민심'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6.12.05 10: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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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김무성-추미애, 여의도 호텔 추격전 뒷이야기
먼저 낚시성 제목을 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보시면 이보다 더 적절하고 건조한(dry) 제목은 없겠구나, 분명히 양해해주시리라 믿고 글을 시작한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12월 첫날인 지난주 목요일(1일) 아침,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점심을 먹는다고 한 신문이 보도했다. 지난주 목요일은 야당이 당초 합의했던 2일 탄핵안 처리 하루 전날. 대통령 담화로 새누리당 비주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제 1야당 대표와 비박(非朴)계 맹주가 만난다? 국회에 출입하는 정치부, 정확히는 말진 기자들 전부 비상이 걸렸다. 아침 7시부터 전화통에 불이 났다.

(선배) “점심이 아니라 아침이란다.”

더 바빠졌다. 부렸던 가방을 주섬주섬 다시 들쳐 메고 확인된 장소로 향했다. 시간과 장소는 ‘표면적으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김무성 전 대표 쪽에서 철저히 비공개 회동을 요청했다고 했다. 취재는 기자의 몫이다. 서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정보를 공유했다. 특종 경쟁을 하는 기자들도 이런 상황에는 운명공동체다.

1차로 확인된 장소는 여의도 국회 건너편의 조그만 호텔. 아침 8시 전부터 삼삼오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2층 식당에 올라가봤다. 점심부터 영업하는 줄 알았는데, 장사 준비를 한다? 여기가 맞구나, 주저앉는 찰나에 또 다른 정보가 돈다. 여기가 아니란다.

이제부터는 추격전이다. 아는 기자들과 짝을 맞춰 택시를 잡아탔다. 여의도공원 근처의 특급 호텔 체인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방송 카메라가 늘어서고 추 대표의 비서실장인 민주당 신창현 의원, 당 사무총장 안규백 의원 등이 속속 도착했다. 추 대표를 항상 따라다니는 수행비서와 당직자들도 여럿 보인다. 여기가 맞구나.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 전열을 가다듬는 찰나,

(누군가) “여기가 아니라 K호텔(가칭)로 장소 바꿨대”

아까 그 호텔 근처, 국회 앞 또 다른 5성급 호텔이다. 이건 뭔가. 불평은 일단 나중에, 일단 가야만 한다. 다시 주섬주섬 거리다가, 나는 듣고 말았다. 추 대표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민주당 관계자들의 대화를.

“왜 이렇게 하는 거야?”
“나도 몰라...”


그렇다. 그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우리 선배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다. 각자 차를 잡아타고 다시 국회 앞으로 향했다.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킨다. 차에 함께 탄 영상기자 선배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아니면 어떻게 하죠?”
“취재 안해야지 뭐.”


다행히(?) 취재는 하게 됐다. 이번엔 맞다. 호텔 로비가 무척 좁다. 몰려든 기자에게 호텔 지배인이 “나가달라”고 말했지만 이내 수십 명이 된 기자들에게 묻혔다. (해당 호텔에는 민주당 공보실에서 절차를 거쳐 취재 양해를 구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에겐 정치인이 가는 곳이 곧 회사이자 출입처다. 식당 입구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앉았다. 레스토랑 이름이 무척 화려하다. ‘뉴욕, 뉴욕’.  

아침도 못 먹고 누군가 아침을 다 먹고 나오길 기다리고 서 있자니 잡생각이 올라온다. 세 군데를 옮겨 다녔으니, 적어도 기사 세 꼭지는 나와야 한다, 이를 간다. 그러나 곧바로, 세 꼭지는커녕 기사 세 줄도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퍼뜩 몰려온다. 그리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추미애-김무성 회동. 그래도 기자는 사진 한 장 건졌다. 추미애 대표 뒤에 뒤에가 접니다;  (사진출처: 조선일보, 남경훈 기자)50분에 걸친 회동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추미애 대표는 새누리당 비박계의 탄핵 동참을 촉구하는 한편 “대통령의 사퇴가 늦어도 1월 말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4월 말 대통령의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으로 가지 않고 그것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평행선 같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대통령 임기 단축과 관련해 일단 협상을 해보자는 김 전 대표의 제안은 추 대표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회동은 빈  손으로 끝났다. 기자들도 빈속을 달래며 하나 둘 국회로 향했다.

소득 없는 만남에 당장 “왜 만났냐”는 말이 나왔다. 기자들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나온 말이다. 요새 추 대표에 부쩍 감정이 안 좋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냈다. 박 비대위원장은 “내가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을 만나자고 하면 ‘탄핵 대상과는 못 만난다’고 하면서 왜 자기는 혼자 이러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야당 공조를 일방적으로 깬 것”이라고도 했다. 여파는 오후에 이뤄진 야 3당 대표 회동으로 이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야권 공조로 흔들림없는 탄핵을 추진’하기로 했던 야 3당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 합의에 실패했고 2일 탄핵안 본회의 처리도 결국 무산됐다.

● 그 남자의 쇼맨십, 그 여자의 불통(不通)

회동이 무산된 게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애초부터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만 기자가 주목하고 싶은 건 아침 댓바람 여의도 호텔 추격전에서 드러난, 현 시점에서 한국 정치를 이끈다고 할 수 있는 두 지도자의 정치 방식이다.

새누리당을 취재하는 선배 기자의 말에 따르면 김무성 전 대표는 ‘정치를 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참모들이 얘기하면 눈 딱 감고 듣다가 혼자 판단해서 전격 발표하는 식이란다. 모두들 ‘오른쪽으로 갈 것이다’라고 예상할 때 입 딱 다물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왼쪽으로 간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을 때 모두가 탈당을 예상했지만 김무성은 “백의종군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도 지난 4.13 총선 선거운동 기간 한 달 동안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대표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과연 그랬다. ‘옥새 파동’이 대표적이었다. 공천장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고 부산 영도다리에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찍은 사진은 다음날 모든 조간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영도다리 위 김무성. 이 사진은 좀 멋졌다. 인정.이 뿐만이 아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기자가 본 장면만 해도 여럿이다. 공천 파동의 진앙이었던 대구 방문 당시 김무성 전 대표에게 항의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백 명 가까이 몰려들었을 때도, 김 전 대표는 거친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는 그날 대구 욕설의 진수를 체험했다) 대구시당 당사로 들어갔다.

당사 안에서는 자신을 비난하던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에게 “원진이 어디있노!”하고 부른 뒤 꽉 끌어안았다. (기자도 바로 옆에 있었다) 항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 입구가 꽉 막히자 바로 옆 은행 출구를 통해 쏙 빠져나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너무 여유로워서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비치기까지 했다. 이런 식의 이른바 ‘옛날 정치’에 능하다보니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김무성에게는 확실히, 분위기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12월 첫날의 ‘호텔 추격전’에도 김무성 전 대표의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게 기자들의 평가다. 만남 제안은 물론 추미애 대표가 먼저 했다. 김 전 대표 측은 수차례 장소를 바꾸면서까지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청했다지만, 정작 그날 언제 만나는지, 어디서 만나는지, 바뀐 장소가 어딘지 하는 정보는 대부분 김 전 대표 쪽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흘렸는지,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여당 출입기자들이 더 취재를 잘 하는 걸 수도.김무성, 추미애 회동 메모결정적인 장면은 조찬 회동을 마치고 나온 김무성이 들고 있던 한 장의 메모지에서 나왔다. A4 용지를 3등분해서 접은 종이에는 탄핵과 대통령 퇴암과 관련한 민감한 단어들이 적여 있었고 그대로 카메라에 노출됐다. 종이 윗부분에는 ‘탄핵합의’, ‘총리 추천’, ‘국정공백X’, ‘1월말 헌재판결’, ‘행상책임(형사X)’, ‘1월말 사퇴’가, 아랫부분에는 大(대통령 의미) 퇴임 4월 30일, 총리추천 내각구성, 大 2선, 6월 30일 대선이란 내용이 각각 써 있었다. 맥락상 윗 부분은 추 대표, 아랫부분은 김 대표의 주장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장 논란과 파장을 떠나, 의도가 다분한 ‘소품’으로 해석됐다.

프로다웠다. 김무성 전 대표는 조찬을 마치고 나와서도 “아니 어떻게 알고 왔어”하는 아마추어 같은 리액션은 하지 않았다. 글자가 다 보이게 종이를 접어들고는 묻는 말에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유유히 다시 밴을 타고 사라졌다.

김무성 전 대표의 ‘쇼맨십’이 주 연출이었다면 추미애 대표 또한 보조 연출 정도는 했다. 애초에 기획자는 추 대표였다. 손발이 맞지 않아 빛이 바랬지만, 수행비서와 비서실장까지 철저히 따돌린 보안의식(?)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그러나 이 ‘철통보안’이란 말은 한편으로 ‘불통’(不通)이라는 단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 단어가, 요즘 들어 추 대표에게 너무 자주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추 대표는 전날 밤 먼저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에게 회동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김무성 전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당내 조율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경우가 이번만은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난다고 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었고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에 도로 집어넣기도 했다. 그때마다 과정은 비슷했고 결과도 비슷했다. 칭찬보다는 불만과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남는 건 없었고, 두 사람의 스타일만 재확인시켜준 자리였다.

● ‘뉴욕, 뉴욕’과 ‘촛불 민심’의 간극

또 하나 생각해 볼 부분은 만남의 방식과 장소다. 두 지도자가 두 번이나 장소를 바꿔 만난 곳은 결국 5성급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이른 아침,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이 많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비공개로 긴밀한 이야기를 할 의도였다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도 있지 않았을까.5성급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 뉴욕 뉴욕. 좋은 곳이다.뉴욕뉴욕 메뉴판. 기자가 친절히 메뉴판도 찍었다.요즘 정치권이 ‘절대적인 가치’처럼 인용하고 중시하는 판단기준이 바로 ‘촛불 민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건 아니야” 하는 심정으로 촛불을 들고 주말마다 광장으로 몰려든 평범한 민심과,이 조찬 회동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나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평범한 시민들이 한창 일터로 향할 출근시간이었다.

국밥집 가서 만나면 진실한 만남이고, 레스토랑에서 보면 거짓된 만남이란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민심을 이야기하며 협상을 하고자 했다면 보여주기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민심, 민심 외치지만 여전히 그들의 시각에는 철저히 대상화된 채 머무는 게 민심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시국에, 이렇게 둔감할 수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 지나친 쇼맨십과 불통은 '정치불신'을 부른다.

그러니까, 12월 첫날 아침 러시아워에 펼쳐진 ‘여의도 호텔 추격전’은 김무성 전 대표의 ‘쇼맨십’과 추미애 대표의 ‘불통’이 빚어낸 한바탕 촌극에 가까웠다. 동시에 여전히 변함없는 여의도 정치의 한 단면이었다.

정치에 ‘보여주기’가 중요할 때도 분명히 있다. 때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리더 혼자 조용히 결단을 내리는 정치도 필요하다. 장막 뒤에서 이뤄지는 물밑 협상도, 허를 찌르는 전격적인 행위도 역시 정치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본질과 내실보다, 형식에만 골몰하고 자기 생각에만 갇힌 정치는 오늘날 대중이 원하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비롯된 작금의 현상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대중의 여전한 정치 혐오와 불신이다. 사건 발생 이후 야당 지지도는 분명히 올랐지만, 여당 지지도가 반토막난 걸 감안하면 그 절반도 가져오지 못했다. 역시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역시 소폭 올랐을 뿐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정치인을 잘못 뽑아 나라가 이 지경이 됐지만 사람들은 아직 ‘정치가 답’이라고 외치길 주저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결국 보여주기에만 신경쓰는 정치, 독단의 정치는 대중을 돌아서게 만든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외침의 대상에 정치가 예외일 수 없다. 예외는커녕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는 최소한 그만 들어야하지 않겠나.

너도 나도 말하는 ‘운명의 한 주’가 밝았다. 그 운명이 박근혜 대통령만의 운명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보여주기만 하는 정치, 서로 믿음없이 삐걱대는 정치에는 지난 주말 국민이 촛불로 분명한 경고를 내렸다. 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그 새로운 정치와, 12월 첫날 아침의 해프닝은 분명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