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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해외 순방용'이라는 마약류…순방 더 간 MB 정부엔 없었다

1991년 수면제 복용한 미국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그래픽
지난 1988년, 한 미국 여성변호사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범행 전 수면제를 복용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이 여성이 수면제 과다복용에서 비롯된 정신착란 상태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해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수면제 성분이 들어간 제조업체들은 반발했습니다. 각종 임상자료를 제시하며 수면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주장했고, 해당 약품에 대한 제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수면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습니다. 제조사들은 0.5mg 용량 수면제는 전 세계적으로 퇴출 시켰습니다.

그런데 용량을 줄여도 역행성 건망과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며 안정성 논란은 다시 크게 일었습니다. 영국은 해당 약품의 허가를 아예 취소했고, 핀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용 허가가 난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꼭 10일 이내의 단기적 치료에만 쓰도록 사용 기간을 제한했습니다.

그렇게 첫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09년. 이 수면제의 이름이 우리나라 국정감사장에서 언급됐습니다. 문제의 수면제가 국내에서 열흘 이상 장기 처방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2009년 곽정숙 의원 국정감사 그래픽
당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니 처방된 문제의 수면제 60% 가량은 열흘 이상의 장기 처방이었다고 폭로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열흘 미만만 처방되도록 규제했지만 무려 17만여 건의 장기 처방이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듬해인 2010년 국정감사장에서 곽 의원은 또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010년 상반기에만 장기 처방된 건수가 14만 6천 건, 여전히 크게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곽 의원은 이대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허가 사항 이외의 처방에 대해 영업정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불면증 치료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통해 허가를 취소하고 퇴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런 논란의 역사를 가진 수면제가 바로 트리아졸람이라는 성분이 들어간 '할시온'입니다.
국회에서 퇴출 논란까지 일었던 수면제의 이름이 다시 6년이 지난 2016년 지금, 청와대와 함께 거론됐습니다.
청와대가 구매한 마약류 의약품 중 할시온이 들어있는 것을 설명하는 그래픽
청와대에 '할시온' 300정이 들어갔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지난 2013년 청와대가 마약류 지정 의약품을 1110정 구매해 836정을 소비했다"고 밝혔는데, 이 가운데 할시온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할시온 뿐 아닙니다.

자낙스와 스틸록스라는 마약류 지정 의약품도 있었습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자낙스는 최순실 씨가 차움의원에서 처방받은 약물로,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데 약물 의존성이 높아질 수 있어 마약류로 지정된 의약품입니다.

스틸록스는 방송인 에이미 씨가 과다복용혐의로 처벌받기도 했던 약물로 주성분은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졸피뎀입니다.

왜 이런 마약류 지정 의약품이 청와대로 흘러들어 가게 된 걸까요? 청와대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해외 순방 때 수행원의 빠른 시차 적응을 위해서 사용됐다" "수행원들이 시차에 적응할 여유가 없이 바로 일정에 참여하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시차 적응이 어려운 수행원을 대상으로 단기간 제한적으로 처방했다"는 겁니다.

해외순방 횟수와 수행원 수를 고려할 때 많은 양이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덧붙였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해외 순방 건수가 적지 않고, 항상 옆에서 맑은 정신으로 보좌해야 하는 수행원들도 시차 적응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약품들이 전임 정부인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쓰였을까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이명박 정부 후기의 구매 의약품 목록에 따르면, 지난 2011년에서 2012년까지 청와대에서 구매한 약품 가운데 '자낙스'나 '스틸록스', '할시온'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와 이명박 해외 순방 그래픽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의 해외 순방 건수가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편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각각 11차례, 7차례의 해외 순방에 나섰습니다.하지만 청와대에서 논란의 약품들을 구입한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5차례의 해외 순방에 나섰습니다.

더 많이 해외순방을 나간 정부에서도 사지 않았던 마약류 지정 의약품을, 왜 이번 정부에서는 샀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쏟아지고 있는 '의료계'나 '의약품'과 관련된 의혹들, 청와대는 언제쯤 국민의 의구심을 속 시원하게 해소해 줄 수 있을까요?

(기획, 구성 : 김도균 / 디자인 :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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